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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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년부터 1895년까지의 강릉 읍격. 1389년(공양왕 원년), 강원 영동 지방의 행정적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강원 영동의 거진(巨鎭)의 의미로 강릉대도호부로 읍격을 정하였다. 조선 개국 후 군현제 개편 시에도 강릉 대도호부의 읍격을 유지하였다. 특히 여말 선초의 전환기에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김광을(金光乙), 함전림(咸傳霖) 등의 출사와 고려 초에 왕씨 성을 사성받았던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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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호족 김순식(金順式)의 소장(小將). 김순식이 고려 태조에게 귀부함에 따라 928년(태조 11) 정월에 군사 600명을 거느리고 개성에 와서 숙위하였다. 뒤에 김순식이 무리를 거느리고 태조에게 조회하여 왕씨(王氏)의 성을 하사받을 때 관경도 함께 왕씨의 성을 하사받고 대승(大丞)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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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시대의 승려. 도의(道義)의 속성은 왕(王), 호는 원적(元寂), 법호는 명적(明寂)이다. 784년(선덕왕 5) 중국 당나라에 유학,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강서(江西) 홍주(洪州)의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지장(智藏)의 법맥을 이어받고 도의(道義)로 개명했다. 성은 왕씨(王氏), 북한군(北漢郡) 출생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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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명은 김장명(金長命). 명주장군(溟州將軍)·지명주군주사(知溟州軍州事)인 김순식(金順式)의 아들이며, 형은 왕수원(王守元)이다. 신라 말기에 명주장군 김순식은 강릉 지역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던 대표적인 호족이었다. 처음 궁예와 결합했던 김순식은 태조 왕건이 즉위한 후, 쉽사리 태조 왕건에게 귀부(歸附)하지 않고 정세를 관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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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초명(初名)은 여주(汝舟), 본성(本姓)은 김씨.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으로 왕씨는 사성(賜姓)이다.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숙왕(忠肅王) 초에 규정(糾正)을 지냈다. 1321년(충숙왕 8) 좌사보(左司補)로 있을 때, 임금의 총애를 받던 이인길(李仁吉)의 장인 최득화(崔得和)를 수주(隨州)의 수령으로 임명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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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 출신 장군. 본성은 김씨(金氏)라고도 알려졌지만 분명하지는 않고, 왕은 사성(賜姓)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호족 출신인 왕순식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 사람으로 신라 말에 스스로 명주장군이라 칭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궁예와 대치하면서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에도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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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래의 성(姓)은 김씨(金氏)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6세손이며, 진골 출신인 김선희(金善希)의 아들이다. 태조 왕건의 14비(妃)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이 왕예(王乂)의 딸이다. 명주군왕 김주원이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하고 강릉으로 퇴거한 이래, 그의 후손들은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 강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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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의 해발 840.6m의 제왕산 정상에 있는 고대 석축 산성. 제왕산성(帝王山城)은 고려말 우왕(禑王)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피난을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왕은 왕씨가 아닌 신돈(辛旽)의 아들 신우(辛隅)로 몰리어 쫓기는 신세였으며 강릉으로 옮긴 후 한 달도 못되어 공양왕(恭讓王)이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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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 강릉은 토성들의 재지적 기반이 강했던 지역이다. 토성은 대체로 고려시대의 향리출신으로서 여말선초에는 신흥사대부를 성장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조선 초기 강릉 지방 성씨에 대해 “토성이 여섯이니 김(金)·최(崔)·박(朴)·곽(郭)·함(咸)·왕(王)이요, 사성(賜姓)이 하나이니 옥(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