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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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驤鳳䎝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기석 |
건립 시기/일시 | 1791년 - 용양봉저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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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2년 5월 25일 - 용양봉저정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용양봉저정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32길 14-7[본동 10-30] |
성격 | 누정 |
정면 칸수 | 6칸 |
측면 칸수 | 2칸 |
관리자 | 서울특별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조가 세운 행궁이자 누정.
[개설]
용양봉저정은 조선의 제22대 국왕 정조가 생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원(陵園)이었던 현륭원(顯隆園)에 가는 원행 길에 한강을 건넌 이후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1791년(정조 15)에 건립하였다.
[위치]
용양봉저정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32길 14-7[본동 10-30]에 있고, 지하철 9호선 노들역 2번 출구 건너편, 한강대교 남쪽 언덕에 위치해 있다.
[변천]
용양봉저정의 자리에는 원래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의 집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망해정(望海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용양봉저정기(龍驤鳳翥亭記)」를 보면 정조가 현륭원 원행 중 주교(舟橋)[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이후 잠시 휴식을 위하여 노량진 언덕에 위치한 망해정을 매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망해정은 1789년(정조 13)부터 1791년(정조 15) 공사를 진행하여 행궁으로 증축하였는데, 이 때 정조가 정자에 올라서 북쪽으로는 산이 우뚝하고, 동쪽에서는 한강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용이 뛰놀고, 봉황이 나는 듯하다고 하여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으로 누정의 명칭을 지었다.
용양봉저정은 점심을 하며 머물던 곳이라 하여 주정소(晝停所)라고도 불렸으며, 이 곳에는 주교 가설을 담당하는 주교사(舟橋司)와 주교대장(舟橋大將)이 있었다. 고종 때 잠시 유길준에게 하사되었다가, 1930년 일본인 이케다 나가지로[池田長次朗]에게 매각되어 온천, 욕탕, 식당 등으로 구성된 오락 시설이 되었다. 1945년 8월 해방 이후에는 국유로 환원되어 오락 시설이 철거되고 지금의 모습으로 회복하였다.
[형태]
용양봉저정은 북향 건물이며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간으로 구성되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현황]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용양봉저정은 정조의 현륭원 원행 중 한강 이남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정조의 현륭원 원행 경로를 살펴보면 용양봉저정 완성 이전에는 동작진-남태령-과천으로 이어지는 과천길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양봉저정 완성 이후에는 시흥로와 시흥 행궁이 잇따라 조성되면서 1795년 을묘원행부터 주교를 이용하여 노량진으로 들어와 시흥을 거치는 이른바 시흥길을 원행 경로로 채택하였다. 이에 대해 과천길은 동작진이 아닌 노량진-사당동-남태령으로 이어진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