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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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廉想涉墓所 |
분야 | 역사/근현대,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찬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897년 8월 30일 - 염상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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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963년 3월 14일 - 염상섭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963년 3월 - 염상섭 묘 조성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4년 6월 10일 - 염상섭 묘비 건립 |
현 소재지 |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방학 3동 산69-1](북위 37°39’57.894”, 동경 127°1’6.774”) |
성격 | 묘 |
관련 인물 | 염상섭(廉想涉)[1897~1963] |
관리자 |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소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 있는 현대 소설가 염상섭의 묘.
[개설]
염상섭(廉想涉)[1897~1963]은 서울 적선동에서 태어나 65세에 지병으로 작고할 때까지 다양한 사회 활동과 소설 창작 활동으로 우리 근대 문화의 초석을 닦은 사람이다. 특히 1920년대 초반부터 활약한 문학예술 분야에서의 업적은 눈부신 바가 있다. 염상섭의 소설은 흔히 사실주의 정신을 이 땅에 뿌리 내리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고 평가된다. 말년에 성북동에 살았던 염상섭은 가톨릭에 귀의하여 천주교 혜화동 교회에 적을 두고 있었던 연고로, 사후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 안장되었다.
[위치]
염상섭 묘(廉想涉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번지[방학 3동 산69-1]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경내에 있다. 묘원 관리소 앞 비탈길을 올라 직진으로 약 300m 진행한 뒤, 묘소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을 바라보고 조그만 개울을 건너 양지바른 터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봉분은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조금 크게 사방을 화강암으로 쌓은 위에 조성하였지만, 그다지 위압적이지 않다. 봉분 앞에는 역시 화강암으로 조성한 기단 위에 2단의 몸돌을 가진 묘비가 조성되어 있다.
[금석문]
화강암을 잘 다듬어 만든 하단의 앞면에는 염상섭의 생년[1897년 8월 30일 생]과 몰년[1963년 3월 14일 몰]이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1964년 6월 10일 비석을 만든 시기, 문단인과 현대 문학사가 공동 주관하여 세운 일, 비면의 글씨를 쓴 서예가 배길기에 대한 내용이 음각되어 있다.
오석(烏石)으로 된 상단 몸돌의 앞면에는 십자가와 함께 ‘작가(作家) 횡보(橫步) 염상섭 지묘(廉想涉之墓)’라는 글씨가 단정한 예서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는 천주교명 바오로와 본명 상섭(尙燮)을 적은 한편, 뒷면에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제야」·「암야」·「만세전」·「금반지」·「전화」·「이심」·「삼대」·「모란꽃 필 때」·「효풍」·「두 파산」·「일대의 유업」·「취우」·「미망인」·「부부」·「어머니」 등 주요 작품을 언급하여 놓았다.
[현황]
넓지 않은 염상섭의 묘소는 비교적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염상섭은 한국 근대 소설사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동안 그를 기려 묘소에 참배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묘소 위치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참배가 쉽지 않았다.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는 염상섭의 묘 외에도 이무영·홍성유 등 문인의 묘소가 어울려 있으므로, 그 가치를 잘 알려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