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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충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60
한자 蔡忠順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009년 1월연표보기 - 채충순 대량원군 옹립 도모
몰년 시기/일시 1036년 4월연표보기 - 채충순 졸
성격 문신
성별
대표 관직 판서경유수사(判西京留守事)

[정의]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현종을 호종하고 도봉 지역에 머문 고려 전기의 문신.

[개설]

채충순(蔡忠順)은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목종(穆宗) 말년부터 현종(顯宗) 대까지 활동한 기록이 실려 있는 인물이다. 현종의 즉위 과정에도 깊이 개입이 되어 있었으며,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현종을 호종하여 도봉사(道峯寺)에 머물렀다. 이후 1031년(현종 22)에 병으로 사직할 때까지 요직을 맡으며 정계에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고려의 7대 국왕이었던 목종이 병이 들어 후계자를 물색할 당시, 채충순목종의 명령으로 태조(太祖)의 손자인 대량원군(大良院君) 왕순(王詢)을 옹립할 준비를 하였다. 당시 정국은 김치양(金致陽)이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에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다. 1009년 1월 채충순은 이러한 정황에서 비밀리에 소수의 뜻을 같이 하는 신하들과 함께 삼각산 신혈사(神穴寺)[현재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사]에 머물고 있던 대량원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1009년 2월 채충순은 직중대(直中臺)에 제수되었다.

대량원군현종으로 즉위하고, 거란이 전왕 목종의 폐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구실로 1010년(현종 원년) 12월 침략을 개시하자, 채충순현종을 모시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적성현(積城縣) 단조역(丹棗驛)을 거쳐 창화현(昌化縣)[현재의 의정부시]에 도달했는데 밤중에 적의 습격이 있자 시종하던 사람들이 도망해 채충순지채문 등 극소수만 남았다. 지채문이 왕의 말고삐를 잡고 지름길로 빠져 도봉사에 이르렀으며, 채충순도 뒤이어 도봉사에 도착하였다. 도봉사는 고려 광종 때 국사였던 혜거(惠居)가 창건한 사찰로서, 현종이 피난 시 머물기도 하고, 이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의 일부가 제작된 사찰이다.

1011년 1월 비서감(祕書監)에, 1011년 7월 중추사(中樞使)에, 1012년 2월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각각 제수되었다. 1013년 2월에는 거란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017년 12월 중추사(中樞使)에, 1018년 6월 이부 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에 제수되었다. 1022년 4월 내사시랑평장사 겸 서경 유수가 되고 1023년 1월 태자태사(太子太師) 벼슬을 더하였다. 1027년(현종 18) 1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었고, 1030년(현종 21) 판서경유수사(判西京留守事)가 되어 이듬해 치사하였다. 1036년(정종 2) 4월 세상을 떠났다.

채충순의 주요한 업적으로는 1020년 3월 나이든 부모가 있는 군사나 문무 관료들이 부모를 모실 수 있도록 국가에 건의한 점이다. 즉 80세 이상의 노부모가 있는 병사는 병역을 면제시켜 부모를 공양하게 하고, 문무 관원이 70세 이상의 부모가 있고 다른 형제가 없으면 지방관으로 임명하지 말며 부모가 병중에 있을 때는 200일간의 휴가를 주도록 하여 국왕의 허락을 받은 것이 『고려사』에 특기되어 있다. 또한 송(宋)의 학사인 주저(周佇)의 재간을 알아보고 고려의 조정에 기용하도록 국왕에게 건의한 점도 그의 안목을 보여 준다. 한편, 발해의 유민이 세운 나라인 흥요국(興遼國)이 거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고려에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채충순최사위(崔士威)와 더불어 원조를 자제하고 방어에 전념해야 한다는 실리적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채충순거란의 2차 침략 당시 현종의 피난을 호종한 공으로 1019년(현종 10) 12월 추충진절위사공신호(推忠盡節衛社功臣號)를 받고 제양현 개국남(濟陽縣開國男) 식읍(食邑) 300호(戶)에 봉해졌다. 1021년(현종 12) 검교태위(檢校太尉) 제양현 개국자(濟陽縣開國子)로 책봉되고 식읍이 500호(戶)로 늘어났으며, 보국공신호(輔國功臣號)가 더해졌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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