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동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창동의 유래」는 조선 시대 이곳에 양곡 창고(糧穀倉庫)가 있었다는 데에서 창동(倉洞)이라는 동명(洞名)이 생겨났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99년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간행한 『도봉 구지』에 창동의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채록되어 있다. 창동 동명의 유래는 조선 시대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
일제 강점기 오치 다다시치가 저술한 1914년 도봉 지역을 포함한 군면동리(郡面洞里)의 통폐합 이전과 이후의 지명을 대조한 책. 오치 다다시치[越智唯七]는 일본 간사이 대학[關西大學] 출신이라는 점만 밝혀졌을 뿐, 신분 및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서문에서 여러 관청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고, 조선 총독부 직원록이나 관보 등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
-
일제 강점기 현재의 도봉구 창동 등에 소재한 토지에서의 수확물에 대한 도조를 기록한 책. 『양주 노해면 두산리 추수기(楊州蘆海面斗山里秋收記)』[奎 27666]는 1916년 당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두산리, 즉 현재의 도봉구 창동 등에 소재한 전답의 추수기로서 토지에서의 수확물에 대한 도조(賭租)를 기록한 책이다. 양주군 노해면은 조선 시대의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蘆原面)과 해등촌...
-
일제 강점기 현재의 도봉구 창동 등에 소재한 토지에서의 수확물에 대한 도조를 기록한 책. 양주군 노해면은 조선 시대의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蘆原面)과 해등촌면(海等村面)이 통합되어 1914년에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마산리(馬山里)는 현재의 도봉구 창동에 해당한다. 창동의 옛 지명은 말미인데, 옛날 산에다 말을 많이 먹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마산리라고 썼다. 『양주 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1517년에 일어난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에 따라 출범한 분파다. 개신교는 보통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3대 분파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 가톨릭에 저항(protest)해서 독립되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라 불리기도 한다. 개신교의 교리는 대부분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삶과 그 가르침, 또한 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국회 의원을 지낸 정치인. 고흥문(高興門)은 1921년 8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나 1941년 경기 상업 학교를 졸업하고 고려 대학교 경영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42년 도매상인 협신 상사의 지배인으로 시작, 1947년 흥한 무역 공사 사장을 지내는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 당시 조병옥(趙炳玉)의 선거 참모로 활동하면서 정...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소재한 국가 혹은 지방 자치 단체의 감독 아래 법령에 정해진 공공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기관은 정부의 투자와 출자, 혹은 정부의 재정 지원 등으로 설립, 운영되는 기관이다. 「공공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 각호의 요건에 의거, 기획 재정부 장관이 지정한다. 일반적으로 기관이나 단체 중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공공 서비스와 공공 재화를...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시민들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설치한 시설이나 공공녹지. 공원은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자연 공원법」과 「도시 공원법」에 따라 자연 경관을 보호하고 주민의 휴양을 돕기 위하여 마련한 사회 시설이다. 자연 공원은 관리 주체에 따라 국립 공원·도립 공원·군립 공원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도시 공원은 기능에 따라 근린공원·어린이 공원·도시 자연 공원·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예부터 지리상으로 추가령 지구대의 남단에 위치하여 교통·통신의 요충지가 되어 왔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전역과 경기도 지역을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주요 간선 도로로는 구 도심을 남북을 관통하는 폭 40m의 도봉로를 비롯하여 상계 대교와 우이동 교통광장을 잇는...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넓은 의미로는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의 집단·집회소를 일컫지만, 일반적으로 교회라는 명칭은 그리스도교 신자로 구성된 단체를 말한다. 각 언어권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말들은 그리스어의 키리아케(Kyriake)[주님에게 속한다]에서 파생되었다고 본다. 20세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개신교 교회는 13개 교파와 75개의 분파로 분열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는 미술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위한 작업실. 국립 현대 미술관 창동 레지던시는 젊고 유망한 미술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정된 작업 공간과 편리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고, 나아가 작가들이 창작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자 건립되었다. 불타버린 하나로 마트 건물을 국립현대미술관이 매입하여 2002년 5월 14일...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국민 연금 업무를 담당하는 국민연금공단 소속의 도봉노원지사. 국민 연금 관리 공단은 국민 연금 제도[1986년 12월 31일 공포]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하여 1987년 9월 18일에 설립되었다. 1988년에 10인 이상 사업장, 1992년에 5인 이상 사업장, 1995년에 농어촌 지역 주민, 1999년에 도시 지역 주민으로 점차 가입 대상을 확대해 왔고...
-
개항기인 1876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역사. 1. 행정 구역의 변천 조선 시대 초부터 1895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 제도를 본격적으로 개혁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를 발포하여 종래의 8도제(道制)를 23부제(府制...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시인 김수영의 본가 터. 시인 김수영은 1921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생가 터 표석이 있음]에서 태어나 어의동 공립 보통학교[지금의 효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후 김수영의 집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가로 옮겼다가 해방 이전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는 만주 지린 성[吉林省]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김수영의 가족은 종로 6...
-
1914년부터 1963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은 1914년 이전 양주군 노원면(蘆原面)의 ‘노(蘆)’ 자와 해등촌면(海等村面)의 ‘해(海)’ 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까지 면(面)은 면적과 인구에서 편차가 컸는데, 근대적인 행정 지배를 위해 면제를 추진하고자 하였던 일제는 우선 면의 구역을 평균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성북구 일대를 관할하던 행정 구역. 노해출장소(蘆海出張所)는 1914년에 신설되었던 경기도 양주군(楊洲郡) 노해면(蘆海面)이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됨에 따라 설치되었던 현재 도봉구 일대의 행정 구역 명칭이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 노원구 월계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이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토지나 임야 등 자연 환경을 이용하여 유용한 자원을 생산하는 활동.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고대 사회에서 군사적 요충지이며 농업 생산 활동을 위한 필수 조건인 배산임수의 지형이 잘 발달하여 각 국의 선점 노력이 치열했던 곳이기도 하다. 도봉구는 서울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은 북한산 국립 공원 및 개발 제한 구역이 입지하고, 동쪽의 중랑천과 남쪽의 우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문화. 대중문화는 인간의 정신과 정서에 호소하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사회적 기능을 광범위하게 수행할 수 있다. 대중문화는 경제력의 향상과 교육의 확대, 매스컴의 발달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이전 고급문화를 대중화시켜 대중도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하였고, 대중문화가 발달되어 누구나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문...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사람, 차 따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도로는 농업과 상업의 발달과 함께 보다 쉽고 편리한 이동을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경제·정치·문화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 왔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역로(驛路)가 전국을 포괄하고 역제(驛制)가 체계화되었고,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
서울특별시의 북부에 위치한 구.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1973년 7월 1일에 성북구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시의 열 번째 구가 되었다. 신설될 당시의 서울의 대표적인 명산이자 도봉구의 상징인 도봉산의 이름을 따서 도봉구라 하였다. 1988년에는 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리되어 나갔으며, 1995년에는 강북구가 분리되어 나갔다. 서울특별시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랑천 건너 노...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공립 및 사립 마을도서관. 2001년 도봉문화정보센터[현 도봉문화정보도서관]개원 이후 점차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도서관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면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내의 각 동에 공립 작은 도서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도서관의 운영을 서울특별시 도봉구 내에 위치한 학교들과도 연계하게 되면서 도봉구 도서관의 통합 운영이 필요하게 되었으...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육아 지원 센터. 도봉구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설치, 지원하고 덕성 학원[덕성 여자 대학교]이 위탁 운영하는 육아 지원 센터이다. 도봉구 육아종합지원센터는 보육 시설 종사자나 보호자에게 영유아 보육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6년 3월 도봉구 보육 정보 센터가 설립되었으며, 이정란이 초대 센터장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전역의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지방 행정 기관. 도봉구청은 ‘지방 자치 단체는 그 관할 구역의 자치 사무와 법령에 의하여 지방 자치 단체에 속하는 사무를 처리한다’는「지방 자치법」 제3절 9조[지방 자치 단체의 사무 범위]를 법적 근거로, 구체적으로 지방 자치 단체의 구역, 조직 및 행정 관리 등에 관한 사무, 주민의 복지 증진에 관한 사무, 도봉구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도봉 1동과 도봉 2동을 관할하고 있다. 도봉산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도봉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천면에 속하였는데, 1912년 편찬된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 경기도편에 나오는 상누원리(上樓院里)·무수동(無愁洞)·영국리(寧國里) 지역에 해당한다....
-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미아삼거리에서 도봉구청을 거쳐 도봉동에 이르는 주 간선 도로. 도봉로라는 명칭은 도로가 지나는 도봉구의 구명을 인용한 것이며, 도봉구의 구명은 도봉동 북쪽에 솟아 있는 도봉산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봉로라는 이름은 1972년 11월 26일에 붙여졌다. 이날 한양 천도 578주년 기념일을 맞은 서울시가 시내의 이름 없는 59개 가로에 대한 새 이름을 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지하철 1호선과 7호선의 환승역. 1986년 9월 2일 경원선 상에 창동~의정부 구간이 새로 개통되면서 누원역(樓院驛)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88년 1월 1일 국철 1호선 개통 때 인근에 도봉산이 있어 도봉산역(道峯山驛)으로 역명이 변경되었다. 1996년 10월 11일에 지하철 7호선 장암~건대입구 구간이 개통되면서 7호선과의 환승역이 되었다....
-
도봉산(道峰山)은 서울의 북동쪽 끝인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및 양주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우이령(牛耳嶺)을 경계로 북한산(北漢山)과 접하고 있어 북한산 국립 공원에 속한다.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 같은 암산으로 주봉인 자운봉(紫雲峰)에서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과 선인봉(仙人峰)이, 서쪽으로 오봉(五峰)이 있고 도봉 계곡, 송추 계곡, 망월사 계...
-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강북구의 국세 부과와 징수를 담당하는 세무 행정 기관. 도봉세무서는 24개소[강남, 강동, 강서, 구로, 금천, 남대문, 노원, 도봉, 동대문, 동작, 마포, 반포, 삼성, 서대문, 서초, 성동, 성북, 송파, 양천, 역삼, 영등포, 용산, 종로, 중부]로 이루어진 서울 지방 국세청에 소속되어, 서울특별시 강북구와 도봉구에 관계하는 내국세 부과·감면·징수 등과...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 1동에 있는 도봉구 관할 소방 행정 기관. 도봉소방서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화재를 예방, 경계, 진압하기 위하여 행정 자치부 장관 소속 하의 서울 소방 재난 본부 산하에 설치된 행정 기관으로, 1989년 5월 4일에 설치되었다. 도봉구 주민의 생명과 신체, 그리고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도봉구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지역 사회 복지에 증진하고자 설립되었다. ‘...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2동에 있는 지하철 1호선 역. 도봉역(道峯驛)은 1986년 9월 2일 경원선 상에 창동~의정부 구간이 새로 개통되면서 함께 영업을 개시하였다. 도봉역은 주위에 도봉산이 있어 지어진 동명(洞名)을 따서 국철 1호선 개통 때에 역 이름으로 붙여졌다. 도봉역의 출구는 총 3개이며, 플랫폼은 양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장 사무소는 따로 없고, 화장실과 장애인 편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도서, 문서, 출판물 등의 다양한 자료를 모아 두고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한 시설. 도서관은 도서(圖書)·회화(繪畵) 및 기타 자료를 수집·정리·보관하여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을 말한다. 도봉구의 도서관은 현행 「도서관법」에 따라 도봉구, 나아가 서울 시민에게 자료를 수집·정리·분석·보존하여 제공함으...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에서 도봉구를 거쳐 송파구 장지동을 잇는 주요 간선 도로. 동부간선도로는 서울 동쪽의 간선 도로라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1993년 7월 23일 처음 동부 간선 도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부간선도로의 길이는 3만 3000m이고, 폭은 26m이다. 4~8차선으로 이루어진 자동차 전용 도로이다. 동부간선도로는 서울특별시도 남북 측 간선 도로 중에서 6번째...
-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모여 생활을 이루는 취락 지역을 이르는 순 우리말. 한자로는 동(洞)·리(里)·촌(村)으로 불리는데, 동(洞)이 행정 구역명으로 사용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부터였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속하는 마을로는 현재 도봉동·쌍문동·창동·방학동이 있으며 이는 선사 이래로 형성되어온 자연 마을이 국가의 행정 구역 설정에 의해 신설·통합·편입되면서 지금의 마을로 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과 노원구 월계동의 경계에 있던 자연 마을. 모랫마을은 창 1동과 월계동 경계 지역에 모래가 많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모랫마을은 창골·유만(流滿)·말미 등의 자연 마을과 합쳐 창동을 형성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거주하였던 오윤(吳潤)[1946~1986]은 1980년대 한국 민중 미술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특히 목판화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오윤은 신분, 부귀, 성별,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평등과 상생으로 활력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미술이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복제가 가능한 판화를 매체로 선택하...
-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족 독립 운동.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각지에서 국가의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다. 도봉 지역 출신으로서 의병 활동을 전개한 자로는 윤희섭(尹喜燮)이 있는데, 1881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농민 출신이었다. 윤희섭은 1907년 군대 해산...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창동에는 말미, 모랫마을, 유만리, 창골 등 여러 자연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 위치한 한천[중랑천] 변 서쪽의 아래정잣들 위에 방죽이 있어 방줏굴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방줏굴이 있던 창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방학동 사이 방학천에 놓인 다리. 방학천 위에 건설되어 방학교라 불렀다. 방학교의 폭은 42m이고, 길이는 15m이다. 도봉구 창동과 방학동 사이에는 방학천이 흐르고 있는데, 방학천은 도봉구의 방학동·쌍문동·창동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하며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1970년 이전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746번지와 방학동 678번지를 잇는 교량이 필요함에...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방학 1동, 방학 2동, 방학 3동을 관할하고 있다. 방학동(放鶴洞)의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한다. 하나는 조선 시대 어느 임금이 도봉 서원 터를 정하려고 도봉산 중턱에 앉아 있다가 학이 노는 모습을 보고 ‘방학’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방학...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 3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 대교구 소속 성당. 1980년대 방학동 일대에 대단위 아파트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신자수가 급증하여 1989년 2월, 도봉동 성당이 노원 본당을 분리시켰으나 여전히 입주하는 인구가 많아 방학동에 다시 본당을 분리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1990년 7월 8일, 도봉동 성당과 창동 성당 신자 6명이 주축이 되어 방학동성당 설립 준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 1동에 있는 지하철 1호선 역. 방학역(放鶴驛)은 학이 평화스럽게 놀고 있다고 하여 ‘방학골’ 혹은 방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방앗골’이라고 한 데서 붙여진 방학동 동명(洞名)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부역명은 도봉구청역이다. 1986년 9월 2일에 지하철 1호선 창동~의정부 구간의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하였다. 방학역의 승강장 구조는 2면 2선으로 되어...
-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 방학천이라는 지명은 이 일대의 지명인 방학동에서 유래하였다. 방학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또는 조선 시대의 자연 마을 가운데 하나였던 방학골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중천(中川), 복개내, 복개천이라고도 부른다. 지방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는 방학천은 방학동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을 이룬 자연 마을 유만리 앞에 있던 들. 배라깃들은 수원(水源)이 적어 날씨가 가물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유만·말미·모랫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형성된 창동리는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농업 협동조합. 농업 협동조합은 농업인이 협동을 통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만든 농업 생산자 단체로서 약칭하여 농협이라고도 한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최대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농업 및 생활 자재 구입, 생산 농산물 판매, 필요 자금 조달 등 가입 조합원의 경제 활동과 관련된...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사찰들의 연합회. 불교사암연합회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불교 발전과 포교 활동 및 사회봉사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1996년부터 비공식적인 모임이 시작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져 불교사암연합회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각 사찰을 돌아가면서 매월 음력 24일 오후에 모임을 갖기 때문에 지정된 주소는 없다. 불교사암연합회는 매월 음력...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복지 증진을 위해 사회 복지 사업을 수행하는 시설. 사회 복지 사업이란 법률에 의한 보호·선도 또는 복지에 관한 사업과 사회 복지 상담, 부랑인 및 노숙자 보호, 직업 보도, 무료 숙박, 지역 사회 복지, 의료 복지, 재가 복지, 사회 복지관, 정신 질환자 사회 복귀에 관한 사업 등을 운영·지원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사회복지시설의 종류는 다양한데, 크게 유...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못. 현재의 창동에는 조선 시대 자연 마을인 창골, 유만, 말미, 모랫마을 등이 있었다. 삼봉못은 이 가운데 유만리(流滿里) 근방에 있던 못이다. 유만리는 큰 늪이 있어 물이 가득하였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삼봉못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이 못에 비쳤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삼봉못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었으나, 정확한...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샘표식품의 생산 공장. 샘표식품은 1946년에 창업주 박규회(朴奎會) 사장이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대한 극장 맞은편에 공장을 세우면서 장류 전문 제조업체로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1959년에 도봉구 창동에 제2 공장을 건설한 이후 국내 장류 업계의 선두주자로 부상하였으며, 당시까지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던 간장을 대량 생산·유통시킴으로써...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생활 협동조합. 서울동북민우회 생협은 1992년부터 서울특별시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 여성 운동을 펼쳐오던 서울 동북 여성 민우회의 중요 활동인 생활 협동조합 운동을 분리·독립시켜 2005년 12월 13일 창립한 생협 법인이다. 서울동북민우회 생협은 현재 4,000여 명의 조합원이 생활재 협동 소비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5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소중한 꿈을 키우며 날마다 행복한 어린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실력을 쌓으며 꿈을 키우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나라를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착한 일에 앞장서자’이다. 1930년 4월 1일에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에서 창동 보통학교로 개교하였...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대를 이어 집단으로 거주해 오고 있는 성씨.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대체로 양주(楊州)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한다. 따라서 도봉구의 세거 성씨는 해등촌면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과거에는 해등촌면에 거주하는 성씨들을 따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봉구만의 세거 성씨를 파악하기는 힘들며, 양주(楊洲) 지역의 성씨 정도를 참고할 수 있다. 그 외에 도봉...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서 도봉 구민 화합을 위하여 매년 개최되는 가요제. 1995년부터 5월 1일을 지정된 도봉 구민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1996년 제1회 솔바람 가요제가 열렸다. 도봉구청에서 주관하여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호흡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하도록 개최하였다. 솔바람 가요제는 1996년 이래 매년 열리고 있다. 도봉 구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이자 정치인. 본관은 신평(新平)[충청남도 당진시]. 호는 고하(古下). 어릴 때 이름은 옥윤(玉潤)이다. 조선 태종(太宗) 때 문신으로 전라남도 담양군에 은거한 송희경(宋希璟)의 19세손이다. 아버지는 송훈(宋壎)이고, 어머니는 남원 양씨이다. 9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3명의 형과 1명의 누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쇠죽골은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마을로 주막과 민가 약 20호가 있었다. 쇠죽골은 양주에서 동대문 시장에 소를 매매하러 가기 위해 올라온 소 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쑤어 먹였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여물골이라고도 하였다. 쇠죽골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으며, 해등천·계성동 등 자연 마을과 합쳐져 뒤에 쌍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있는 조선 후기 내시 승극철 부부의 묘. 승극철(承克哲)은 내관을 지낸 연양군파(延陽君派)의 시조 김계한(金繼韓)의 손자로 내시부 상세(尙洗)[내시부 종6품직]를 지냈다. 내관들은 양자로 대를 잇기 때문에 손자의 성이 다르기도 하다. 승극철의 출생 및 사망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묘표의 건립 연대가 1643년(인조 12)인 점으로...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1961년 제정된 「시장법」에서 시장이란 “가격 형성력이 작용하고, 거래되는 재화의 실제적 이동에 의해 소유권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어떤 범위”를 말하며,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나누고 있다. 상설 시장이란 일정 요건을 갖추고 하나의 건물 안에서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이나 기타 이를 지원하는 용역을 제공하는 영업장을 말하며, 정...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요리해 먹었던 식품과 음식에 관한 모든 사항. 도봉 지역에서 식품 재료를 조리하여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생활과 풍습 일체를 일러 식생활이라고 한다. 오늘날 도봉 지역의 주식은 여타의 지역과 마찬가지로 쌀밥이다. 정보와 미디어의 발달, 식재료 유통의 광역화 등이 실현되면서 식생활에서의 지역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와 같은 규모로 도시화되기 전인 1970년대까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1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전한다. 첫째, 이 마을에 살던 계성(鷄聲)과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기거하다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아들의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운 데서 ‘쌍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둘째, 창동 우체국 부근에 열녀문이 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2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전한다. 첫째, 이 마을에 살던 계성(鷄聲)과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기거하다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아들의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운 데서 ‘쌍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둘째, 창동 우체국 부근에 열녀문이 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3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전한다. 첫째, 이 마을에 살던 계성(鷄聲)과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기거하다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아들의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운 데서 ‘쌍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둘째, 창동 우체국 부근에 열녀문이 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4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전한다. 첫째, 이 마을에 살던 계성(鷄聲)과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기거하다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아들의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운 데서 ‘쌍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둘째, 창동 우체국 부근에 열녀문이 두...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쌍문 1동, 쌍문 2동, 쌍문 3동, 쌍문 4동을 관할하고 있다. 쌍문동의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 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86번지 자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이곳에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계성과 그의 부인 사이에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5층 이상으로 된 공동 주택. 아파트는 한 채의 건물 안에 독립된 여러 세대가 살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공동 주택의 하나로, 건축법 시행령에서는 아파트를 5층 이상의 공동 주택으로 규정하고 있다. 도봉구에는 1970년대부터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는데, 1970년 4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4층의 다섯 동 규모로 도봉 시민 아파트가 건립된 것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약수가 솟아나는 샘. 광물성 물질을 비롯하여 방사성 물질 등이 함유되어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샘을 광천(鑛泉)이라 한다. 광천 중에서 인체에 유익한 물질이 녹아 있고 마셔서 좋은 물을 약수(藥水)라고 한다. 약수는 물의 온도와 무관하게 부르는 명칭이지만, 일반적으로 차가운 물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약수에 포함되어 있는 광물에는 칼슘·칼륨·라듐·황산염·나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소속 교회. 왕국회관은 여호와의증인 교단에 속한 교당이다. 흔히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은 세상의 권력이 사탄을 돕는 방법 중 하나라고 여겨 병역 의무를 거부하기도 한다. 또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은 집집마다 끈질기게 전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교단과의 교류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속적인 것과 분리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여호와의...
-
선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시대적 변동에 대한 내용. 선사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아직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도봉 지역은 한강 유역의 일부에 해당하므로, 한강 유역의 선사 문화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아직까지 도봉 일대에서 선사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서남쪽을 흐르는 하천. 우이천(牛耳川)이라는 지명은 도봉산 자락에 있는 소의 귀처럼 생긴 봉우리인 소귀봉 또는 우이봉 아래를 흐르는 하천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연결하는 고개인 소귀 고개[牛耳嶺]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라는 의미도 있다. 우이천에 인접해서 쌍문동과 창동을 지나는 간선 도로의 명칭은 우이천로이다. 지방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는...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유만리(流滿里) 앞에 7년 동안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모든 곡식의 종자를 얻을 수 있다는 ‘종자들’이 있었는데, 그 들에 큰 늪이 있어서 물이 늘 가득하였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유만이’라고도 하였고, 일명 한내·한천이라고도 불렀다. 자연 마을로 형성된 유만리는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합...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은 조선인의 힘만으로 달성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해방과 동시에 남한과 북한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해방 직후 조선인들 사이에서...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다양한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곳. 음식점은 일반적으로 식당이라고 불린다. 배달 전문점이나 테이크아웃 전문점도 식당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손님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음료수를 마시는 곳을 의미한다. 음식점의 종류는 「식품 위생법」에 따른 분류와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 대중음식점, 전문 음식점, 유흥 음식점으로 나뉜다. 대중음식점은 분식집과 같이...
-
6·25 전쟁 때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전투를 지휘한 군인. 이응준(李應俊)은 1890년 8월 12일 평안남도 안주(安州)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처는 이정희(李正熙)로 추정(秋汀) 이갑(李甲)의 딸이다. 맏사위 이형근(李亨根)은 일본 육군 사관 학교 56기로 해방 직전 일본군 소좌까지 진급하였고, 해방 후 미군정의 지원으로 설립된 조선 경비 사관 학교 초대 교장을 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인간의 활동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에 의해 땅에서 형성되는 가시적·비가시적 경관을 포함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인구 집단, 상호 작용, 토지 이용 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즉 인문지리는 공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표상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내용을 주로 포함한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에 있는 전태일이 생애 마지막으로 거주한 곳. 전태일(全泰壹)[1948~1970]은 1948년 대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가 되던 1964년 동대문 평화 시장에 ‘시다’, 즉 미싱사 보조로 취직하여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꼬박 3년을 보내고 재단사가 되었다. 전태일은 고단한 노동 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근로 기준법」에 대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던 정인보의 거주지. 1893년 서울 명동에서 명문가의 외아들로 출생한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1893~1950]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에 걸쳐 활동한 우리 근대사의 대표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강화도 출신의 저명한 양명학자인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을 사사(師事)하여 실학으로서의 양명학을 전파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민족주의 역사학·한문학·시조...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정치권력의 확보와 행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일련의 활동. 지역 정치는 특정한 공간적 지형이 확정된 이후 선거라는 기제를 통하여 권력이 배분되고 행사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도봉구의 정치는 1971년 7월 1일 도봉구가 신설된 이후 직접 선거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선거의 결과를 토대로 그 특성들을 이해할 수 있다. 1. 도봉구의 형...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 내에는 대상, 교리, 행사의 차이에 따라 크게 불교, 개신교, 천주교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관내 종교 기관 현황을 살펴보면 개신교, 불교, 천주교 순으로 나타나 서울의 다른 지역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도봉산이라는 명산이 있어 주로 상업이나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서...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들. 종자들은 마을 앞 늪에 물이 늘 가득하여 7년을 가물어도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들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종자들이 있던 창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시행되고 있는 공공시설이나 주택에 대한 개량을 통하여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 ‘주거환경개선사업’이란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고 주거 밀도가 높으며 공공시설의 정비가 극히 불량한 지역에 공공시설, 주택 개량을 실시하여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을 말한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1989년 「도시 저소득 주민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임시 조치법」이 발효되...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주거 형태와 일반적인 삶의 양식. 오늘날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거의 마찬가지로 도봉구의 주거 형태도 아파트, 연립 주택, 단독[일반] 주택, 다세대 주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주택 가운데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65%를 넘어서고 있다. 아파트를 비롯한 집단 거주지가 늘어 가는 관계로 전통적인 살림집의 형태인 단독 주택의 수는 빠른 속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주택재건축사업. 주택재건축사업은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주택 재개발 사업, 도시 환경 정비 사업과 더불어 4가지 정비 사업의 하나로서 도로·상하수도·가스 공급 시설·공원·공용 주차장 등과 같은 정비 기반 시설은 양호하지만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이다. 대상 지역은 정비 구역 내의 지역과 정비 구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역과 쌍문역을 거쳐 서울의 동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을 잇는 도시 철도.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당고개역에서 도봉구의 창동역, 쌍문역을 거쳐 서초구의 남태령역을 잇고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에, 남태령~금정 구간의 과천선, 금정~오이도 구간의 안산선을 모두 아울러 수도권 지하철 4호선으로 부른다. 서울특별시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역을 거쳐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의정부시를 잇는 도시 철도. 서울 지하철 7호선은 인천광역시 부평구의 부평구청역에서 도봉구의 도봉산역을 지나 경기도 의정부시의 장암역을 잇는 철도이다. 2016년 10월 현재, 총 연장은 57.1㎞, 역의 수는 51개이며 갈아탈 수 있는 역은 13개이다. 서울특별시의 제1기 지하철 건설 계획에...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나타나는 땅과 하천의 생김새. 지형은 지구 표면의 특징적인 모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지표의 높낮이나 기복을 나타내주는 하천, 평야, 산, 골짜기 등의 여러 지표 형태가 포함된다. 지형에는 지구 내부의 대규모 지각 운동에 의한 대지형과 지구 외부에서 발생하는 소지형이 있다. 산지가 적고 물이 풍부한 평야 지대에는 농업·공업·도로·취락 등이 형성되고, 산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1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초안산 북쪽 야산 밑의 3개 마을[품먹골, 가운데 마을, 건넛마을]이 말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조선 시대부터 마산리[말뫼]라고 불리다가 모음이 변화하여 ‘말미’라고 굳어졌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창동 주공 아파트 3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창1동 전 지역이다. 이 ‘말뫼’, ‘말미’가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2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창2동은 창동이 창 1동과 창2동으로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구의 창동은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였다가, 1963년 1월 1일에 법률 제1172호와 서울특별시 조례 제274호에 의해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3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창 2동은 창동이 창 1동과 창 2동으로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구의 창동은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였다가 1963년 1월 1일에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고, 1970년 5월 5일에 창동에서 쌍문동이 분리 신설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4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창 2동은 창동이 창 1동과 창 2동으로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구의 창동은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였다가 1963년 1월 1일에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고, 1970년 5월 5일에 창동에서 쌍문동이 분리 신설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5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다. ‘창동리’라고 음각된 석조 이정표가 창동 초등학교 옆 공터에 옛날부터 세워져 있었으나 오랜 풍화 작용으로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 서울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석조 이정표가 서울의 명소 600선 중 267번으...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과 창 3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창골은 조선 시대 마을에 창고가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이 있던 창 2동과 창 3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하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 도봉로에서 창 1동 초안산길에 이르는 보조 간선급 소로. 도로가 위치한 도봉구 창동의 옛 이름인 창골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2000년 7월 20일 처음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길이는 1,250m, 폭은 15~20m이며, 왕복 4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봉구 지역의 도로가 확장, 포장되기 시작하면서 개발되었다. 창골길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 650-...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창 1동, 창 2동, 창 3동, 창 4동, 창 5동을 관할하고 있다. 조선 시대 이 지역에 양곡 창고가 있어서 창동(倉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동 초등학교 옆 공터에 옛날부터 ‘창동리’라고 음각된 석조 이정표가 방치되어 있었는데, 풍화 작용이 심해 알아볼 수 없는 것을 서울 육백년 기념사업...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는 창동역 역사 민자 건설 사업. 민자역사사업은 철도 공사가 경영 개선 효과를 기대하여 도입한 사업 형태이다. 노후화된 역사(驛舍)를 현대화된 역사로 교체하기 위하여 민간 자본을 유치하여 역사를 건립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무상으로 귀속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상업 시설 등으로 일정 기간 점용하게 하는 것이다. 창동 민자역사사업 역시 민자역사사업...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상계동 사이 중랑천에 놓인 다리. 조선 시대 이 일대에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창동이라 하였는데, 다리 이름 역시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창동교의 폭은 36.5m, 길이는 111m이며, 면적은 4,051.5㎡이다. 왕복 8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동교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33번지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738...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5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마을 이름인 ‘창동리’를 돌에 새겨 만든 이정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266번지의 창동초등학교 동쪽에 있는 석조 이정표 안내문, 새로 만든 창동리 석조 이정표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가로 38㎝, 두께 19㎝, 높이 73㎝이다. 거친 화강암 표현에 ‘창동리(倉洞里)’라고...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에 있는 예수교 대한 성결 교회 소속 교회. 창동성결교회는 1972년 11월 23일 김봉업 목사가 설립한 것을 그 시작으로 한다. 1979년 11월 4일에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 623-13번지에 교회 건물을 세우고 입당 예배를 보았으며, 1997년 11월 2일에는 창 2동 629-2번지에 새 성전을 지어 이전하였다. 일요일 오전 7시 30분에 1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는 지하철 1호선·4호선 역. 창동역은 지하철 1호선·4호선 환승역으로 1호선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5동 135-1번지에 있고, 4호선은 도봉구 창 4동 135-51번지에 있다. 조선 후기에 양곡 창고가 있던 곳에서 유래된 창동이라는 동명(洞名)에 따라 지하철 1호선 개통 때 역 이름을 붙였다 창동역은 1911년 10월 15일에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영업...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는 공원. 도봉구청에서는 2016년 4월부터 일제 강점기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창동[당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김병로, 송진우, 정인보 세분의 뜻을 기리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일환으로 창동 3사자(獅子) 동상을 건립하고, 기존 도봉구민회관 소공원을 단장하여 창동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였다. 한편 2016년 노곡중학교...
-
창동의 세 마리 사자란 일제 강점기 말 부일 협력을 거부하고 감시와 탄압을 피해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은둔하였던 김병로(金炳魯), 정인보(鄭寅普), 송진우(宋鎭禹) 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1931년 9월에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7월에 중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점차 전면적인 전쟁으로 치달아갔다. 식민지 조선은 대륙 침략의...
-
1950년 6월 27일 한국군과 북한군이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벌인 전투.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은 조선인의 힘만으로 달성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해방과 동시에 남한과 북한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 되었다. 해방 직후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통일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남단 창동에 있는 산. 조선 시대의 무덤 1천여 기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편안한 안식처를 정한다는 의미에서 초안산(楚安山)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초안산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192번지 일대에서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있는 야산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한북 정맥에 도봉산과 북한산 등이 있는데, 초안산은 한북 정맥으로부터 벗어난 곳에 나지막하...
-
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친환경 농업의 참여와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사업. 도봉구 친환경 도시농업사업은 도시의 집중화로 발생하는 먹을거리에 대한 안정성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계획되었다. 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친환경 도시 농업을 구정에 도입하여, 구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체험을 통하여 건전한 여가 생활, 개인 정서의 함양 및 단절된 지역 공동체를...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넓은 벌판. 평야는 평지의 개념과 유사한 것으로, 낮고 평평한 넓은 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기복이 거의 없는 넓은 토지인 셈이다. 평야는 형성 원인에 따라 충적 평야와 침식 평야로 나뉘는데, 충적 평야는 대하천의 중하류에서 하천의 퇴적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침식 평야는 오랜 기간에 걸친 침식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륙에 형성되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에 있는 야간 학교. 사회·경제적 모순, 또는 개인의 사정으로 말미암아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과 서로 대화하고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교육 목표가 있다. 1970년 세종 근로 청소년 학교로 개교하였다. 1991년 ‘풀무 야간학교’로 개칭하여 도봉구 신창동에서 중등반을 운영하였다. 1997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일정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큰 물줄기. 도봉구를 흐르는 주요 하천으로는 국가 하천인 중랑천, 지방 하천인 우이천·방학천·도봉천 등이 있다. 국가 하천은 국토 보전상 또는 국민 경제상 중요한 하천으로 정의되며 국토 해양부 장관이 그 명칭과 구간을 지정한다. 지방 하천은 지방의 공공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하천으로 시도지사가 명칭과 구간을 지정한다. 국가 하천과...
-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1970년대 전태일(全泰壹)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긴 인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 지역이다. 도봉구에는 1970년대 전태일, 1980년대 함석헌(咸錫憲), 1990년대 계훈제(桂勳梯) 등 한국 사회 민주화의 주역들이 거주하였다. 이들은 도봉구에 거주하며 지역 사회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였고, 도봉구는 이들에게 따뜻한...
-
1895년 5월부터 1896년 8월까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이 소속된 양주군의 상위 행정 기관.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전국을 23개의 부(府)로 개편하면서 한성과 인근 10개 군(郡)을 합쳐 한성부(漢城府)로 편성하였는데, 이때 양주군도 한성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1부 13도제(道制) 시행으로 경기도가 부활하면서 양주군은 다시...
-
남궁원청을 시조로 하고 남궁급을 입향조로 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세거 성씨. 남궁씨(南宮氏)의 유래는 중국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황족(皇族)인 희성(姬姓)이었는데, 은나라 때에 남쪽 궁인 남궁에 살았다 하여 남궁(南宮)으로 성씨를 정했다고 한다. 함열남궁씨의 시조 묘정비에 보면, 한반도에 기자(箕子)가 올 때 남궁수(南宮修)가 같이 와서 사도(司徒)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는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 대장군을 지낸 남궁원청(南宮元淸)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1970년대 남궁복(南宮墣)이 도봉 서원(道峯書院) 복설(復設)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이를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또 도봉구 경내에는 함열남궁씨 묘역 두 곳이 조성되어 있다. 함열(咸悅)은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해당하는 곳으로 백제 시대에는 감물아현(...
-
6·25 전쟁 때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 전투에서 사망한 군인. 함준호(咸俊鎬)는 1921년 11월 17일 서울 종로구에서 출생하였다. 경기 도립 상업 학교를 졸업하고, 경성 법학 전문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해방 후 미군정이 설립한 군사 영어 학교에 입교해 1946년 2월 18일에 졸업하였다. 졸업 직후 조선 국방 경비대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되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권력, 즉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인간 협동에 초점을 두고 모든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사행정(私行政)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일반 행정[general administration]에 비해, 좁은 의미에서 도봉구의 행정은 도봉구청이라는 공적 행정 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활동을 지칭하는 공행정(公行政)...
-
1945년 8·15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의 역사. 1963년 1월 서울특별시의 행정 구역 확장으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도봉, 쌍문, 월계, 공릉, 상계]이 서울특별시 성북구로 편입되면서 현 도봉구의 시초가 되었다. 1970년대 서울특별시의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과밀화로 택지 및 도로 수요가 증대하고 환경이 악화되는 등 많은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도...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거주한 학자이자 정치가. 홍기무(洪起武)[1910~?]의 가문은 풍산 홍씨 추만공파(秋巒公派)로서 노론계 명문 사대부가이다. 고조할아버지 홍우길(洪祐吉)은 평안 감사, 한성부 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증조할아버지 홍승목(洪承穆)은 병조참판을 거쳐 대한 제국 시기 중추원 찬의(贊議)를 지냈고, 할아버지 홍범식(洪範植)은 금산 군수로서 1...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은거한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 홍기문(洪起文)[1903~1992]의 호는 대산(袋山)이다. 가문은 풍산 홍씨 추만공파(秋巒公派)로서 노론계 명문 사대부가이다. 고조할아버지 홍우길(洪祐吉)은 평안 감사, 한성부 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증조할아버지 홍승목(洪承穆)은 병조참판을 거쳐 대한 제국 시기 중추원 찬의(贊議)를 지냈고, 할아버지 홍범...
-
일제 강점기 말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거주하였던 소설가. 홍명희(洪命熹)[1888~1968]는 1888년 7월 3일에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면 인산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순유(舜兪), 호는 가인(假人, 可人), 벽초(碧初)이다. 출생 이후부터 청년 시절까지 괴산에서 거주하였으며, 장년이 된 1921년에 상경한 이후에는 줄곧 서울에 살았다. 그러다가 1939년 말에 경기도 양주군...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에 있는 홍명희가 1939년 말 가족과 함께 5년여 살았던 곳.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는 충청북도 괴산 출신으로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과 함께 조선의 신문학을 일구어 낸 ‘삼재(三才)’로 불렸던 인물이다. 홍명희는 일제 강점기 최고의 역사 소설 『임꺽정』을 쓴 작가이자, 신간회 창립을 주도한 저명한...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는 계측기 제조 업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 측정 기기 산업의 발전과 아울러 첨단 계측기기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배전반용 계기를 비롯하여 휴대용 측정 기기, 계기용 변성기, 보호 계전기 및 시험 기기 등을 생산하여 송전에서 배선까지, 그리고 약전에서 강전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측정 솔루션을 제공해 산업체의 기술 개발과 품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