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할아버지는 동지중추원사·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좌의정에 추증된 신효창(申孝昌)으로, 신자근(申自謹)·신자경(申自敬)·신자수(申自守) 등 세 아들을 낳고 최승령(崔承寧)을 사위로 삼았다. 큰아들 신자근은 적처(嫡妻)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여 슬하에 첩자(妾子) 신개동(申介同)을 두었으며, 둘째 아들 신자경...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영춘군 이인의 묘.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1465~1507]은 세종의 아홉째 아들[신빈 김씨(愼嬪金氏) 소생]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윤동(申允童)의 딸이다. 자는 자정(子靜)으로 10세 때인 1474년(성종 5) 영춘군에 봉해지고, 이후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올랐다. 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아들인 영해군 이당의 묘.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1435~1477]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제지(題之)이며, 시호는 안도(安悼)이다. 어머니는 신빈 김씨(愼嬪金氏)이다. 원래 이름은 이장(李璋)이었으나 뒤에 이당으로 바꾸었다. 성격은 화목한 것을 좋아하여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7세 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옹지(顒之). 본래 이름은 이장(李璋)이나 이당(李瑭)으로 바꾸었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로 신빈 김씨(愼嬪金氏)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임천 군부인(林川郡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와 혼인하여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길안 도정(吉安都正) 이의(李義) 등 2남 1녀를 두었다. 이당은 1442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세종의 9남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으로, 신윤동(申允童)의 딸인 평산 신씨(平山申氏)와 혼인하여 영춘군(寧春君) 이인(李仁)과 길안 도정(吉安都正) 이의(李義)를 낳았다. 장남 영춘군 이인은 유양(柳壤)의 딸인 광양 현부인(光陽縣夫人) 진주 유씨(晋州柳氏)와 혼인하여 슬하에 4남을 두었...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세종의 9남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 증조할머니는 신윤동(申允童)의 딸인 임천 군부인(林川君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할아버지는 이당의 장남인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으로, 유양(柳壤)의 딸인 광양 현부인(光陽縣夫人) 진주 유씨(晋州柳氏)와 혼인하여 완천군(完川君) 이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세종의 9남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이며, 증조할머니는 신윤동(申允童)의 딸인 임천 군부인(林川君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할아버지인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은 이당의 장남으로, 유양(柳壤)의 딸인 광양 현부인(光陽縣夫人) 진주 유씨(晋州柳氏)와 혼인하여 완천군(完川君) 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이다. 이인은 세종과 신빈 김씨(愼嬪金氏) 사이에서 난 아홉째 서자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의 아들이다. 할머니는 신윤동(申允童)의 딸이며, 어머니는 중종 때 좌의정까지 지낸 유순정(柳順汀)의 누이동생이자 유양(柳壤)의 딸이다. 부인은 두 명이 있는데, 첫 번째...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시대 세종의 아들 영해군 이당 등 직계 후손이 묻힌 전주이씨의 영해군파 묘역.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全州李氏寧海君派墓域)은 크게 동쪽 능선과 서쪽 능선의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서쪽 능선에는 가장 상단에 영해군의 장남인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1465~1507]의 묘와 신도비가 있고, 그 아래로는 부원정(富原正) 이이(李㶊)와 유인...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노비. 김동(金同)은 강녕 부정(江寧副正) 이기(李祺)의 노비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 그 밖의 자세한 가계나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기는 세종의 아들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의 손자로서 작위를 물려받아 부정이 되었는데, 후에 당파에 붙어 정사를 관여했다 하여 관직을 삭탈당한 채 생애를 마쳤다. 이후 이기는 영조 때 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