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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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水地理 |
영어공식명칭 | The Theory of Divination Based on Topography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창준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음양오행설로 자연지리의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수의 어원은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은 피하고, 물은 얻는다]에서 나왔다. 사세(四勢)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우현무(後玄武), 전주작(前朱雀) 중 어느 하나가 없는 곳을 택하여 살아 있는 자가 생활하는 양택 풍수인 터[주택지,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와 죽은 자의 안식처 음택 풍수인 묘지로 구분한다.
풍수지리학은 천문 지리학에서 하나의 유파로 갈라져 하늘을 보고 길흉화복을 예견할 수 있는 천문학에 반해, 인간이 자연 친화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땅의 이치를 인간 중심으로 이해하고 분석하여 과학적으로 자연의 현상을 체계화하고 이를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연구, 발전, 계승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풍수지리학에서 우선 중요시되는 것은 산(山)과 수(水)의 흐름에 따른 길흉과 그 길흉에 따른 동기 감응론에 입각하여 산천의 기운 중 청기[맑고 좋은 기]가 머무르고 있는 곳을 택하여 음택지나 양택지로 선정한다. 그리고 그곳에 정착함으로써 살아서 또는 죽어서[후손]까지 좋은 현상이 이어진다는 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 풍수지리학에서 풍수는 바람과 물의 관계로, 물은 반드시 바람을 만들기 때문에 물[수]를 중요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산과 수의 흐름인데 "산이 가면 수도 따라간다."는 말이 있어 불가분의 관계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산은 인물을 주관하고 수는 재물을 주관하기 때문에, 산만 좋고 수가 없다면 인물은 나오지만 재물이 적고, 물은 좋은데 산이 흉하면 재물은 있으되 자손 중 인물이 없으므로 산수가 수려한 곳에 터를 잡고 이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풍수지리학에서는 두 가지 이론이 형성되는데 하나는 형기론으로 눈으로 확인 가능한 산이나 물의 형태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물형론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풍수지리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또 하나는 이기론인데 이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지기로 통계학을 바탕으로 나경(羅經)[일명, 윤도, 나침판, 쇠, 패철]과 같은 것을 이용하여 방위별로 기를 측정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기론과 형기론을 병행하는 풍수지리학이 바람직하다.
고대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생활의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생활의 터전을 찾는데 원시 사회에서부터 자신과 자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땅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에 풍수지리의 기원을 두고 있다.
당진의 진산을 풍수지리학의 한 이론인 형기론으로 살피는 작업은 당진의 중심 요소이자 공간 구성 지표로 삼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충청남도 당진시 관내에 있었던 조선 시대 군현은 면천군, 당진현, 합덕현 등이다.
[자연환경]
충청남도 당진시는 곤륜산에서 발원한 산맥이 중국 중원을 지나 우리 영산 백두산을 세우고 그곳을 시발점으로 1개의 백두 대간과 1개의 장백 정간을 기준으로 13개 정맥을 형성하였다. 그중에서 백두 대간을 타고 내려오던 맥이 속리산에서 한남·금북 정맥으로 시작되었다. 한남 정맥과 금북 정맥이 한줄기 맥으로 내려오다 한남 정맥은 칠장산[92m]에서 갈라져 서북쪽 안성의 백운산으로 돌아 들어간 맥은 용인의 보개산, 안양의 수리산, 인천의 소래산을 거처 김포의 북성산을 통해 문수산에서 멈추었다. 내포 지역으로 들어온 금북 정맥은 칠장산에서 갈라저 칠현산[516m]을 지나 안성의 청룡산, 천안의 성거산[579m]과 흑성산[519m], 공주의 쌍령산, 온양의 광덕산[699m], 청양의 금자산, 홍성의 오서산[791m]과 백월산[394m], 덕산의 가야산, 당진의 아미산[349.5m], 태안의 안흥진에 이어지는 금강 북쪽의 산줄기로 아산만과 천수만 사이에 아산, 당진, 예산, 홍성, 보령, 청양 일부 지역으로, 삽교호로 물이 흘러가는 내포 지역을 형성하였다. 그 형상이 국자 모양인 북두칠성 모양으로 산을 형상하며, 이러한 형상을 자미원국(紫微垣局)이라 한다.
당진시는 충청남도의 북부에 위치하는 시로, 동쪽은 삽교천을 경계로 아산시, 서쪽은 예산군과 접하고, 북쪽은 아산만을 경계로 경기도 평택시와 접하고 있다. 내륙인 동쪽으로 홍성군 장곡면 오서산[791m]에서 발원하는 삽교천이 북류하여 아미산에 유입되고 있다. 삽교천이 주변의 우강면과 합덕읍의 동쪽으로 당진시 최대의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면천면에서 동북쪽으로 흘러 순성면과 신평면을 거쳐 아산만에 유입되는 남원천도 하류에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곡창 지대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남쪽으로는 금정 산맥에서 뻗어 내린 가야산지의 분수령인 아미산과 다불산을 주봉으로 해발 300~400m 내외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어 지형이 험한 편이다. 서쪽으로는 대호지만과 남서쪽 외곽의 은봉산을 기준으로 서산시와 경계를 이룬다. 특히 은봉산은 서쪽의 양대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끝나는 지점이 당진시 정미면에서 서산시 음암면 주장리 유적에 이르는 저지대이고, 동쪽으로는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적이 조사된 지점이다.
이와 같이 당진시의 지형은 북쪽의 아산만과 동쪽의 무한천, 서쪽의 대호지만에서 알 수 있듯이 삼면이 하천과 바다로 인하여 지형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남쪽으로는 해발 400m 내외의 높은 산지가 발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지형이 연결되는 입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지명의 역사]
일제 강점기인 1929년 5월에 조선 총독부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당진은 연화 부수형(蓮花浮水形), 비룡형(飛龍形)으로 길지로 조사되었다. 연꽃은 꽃과 열매가 구비된 원만한 꽃으로 물 밖이나 물속에서는 피지 않는다. 수면에 뜰 때에 향기를 낸다. 즉, 강물이 빙빙 돌아서 혈을 만들고 혈처를 돌아서 지나가는 것으로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연꽃을 연상하게 하여 물형론에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이 형은 자손이 모두 원만하고 또한 고귀하고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길지를 나타낸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비룡지는 입신양명의 출세를 나타낸다.
대호지면 적서리(赤鼠里)는 일대의 토색이 유난히도 붉은 땅이다. 붉은 쥐를 한자로 적서(赤鼠)라 하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 하전형(老鼠下田形)이라 ‘적서리’라 칭했다 한다. 노서 하전형은 혈 앞에 조 또는 고품(庫稟)형의 사(砂)가 있어야 한다. 만일 사가 없으면 쥐가 숨을 장소가 없어서 솔개에 잡히든가 또는 굶어 죽게 된다. 이것이 있으면 그 본성을 발휘해서 자손이 번성하는 길지가 된다.
대호지면 장정리(長井里) 맷골 마을은 원래 부락 지명이 매화 낙지형(梅花落地形)으로 매화곡(梅花谷)으로 불리기도 한다. 매화는 고결한 꽃으로 이 꽃이 떨어지면 향기가 사방에 퍼지기 때문에 자손의 발복이 크게 되는 길지이다.
송악읍 기지시리도 마을 형상이 옥녀 직금형(玉女織錦形)으로 옥녀가 베를 짜는 형상이라 ‘기지시’라고 했다 한다. 즉 베틀 기(機)와 베를 담그는 데 물이 필요하기에 못 지(池)를 써서 기지(機池)가 되었다. 옥녀 직금형은 옥녀가 비단을 짜듯이 자손이 끊임없이 귀한 인물을 배출한다는 길지이다.
송악읍 반촌리는 가마못[釜山]이라는 큰 연못이 있는 데서 유래한 가마못 마을이 있다. 1930년 10월에 조사된 조선 총독부 자료에서는 반촌리 구한서(具翰書)의 주택지가 금반형(金盤形)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금제(金製)의 밥상으로 식사할 정도로 부귀를 누릴 수 있는 길지이다. 1928년에 구씨가 주택을 신축했는데 구씨는 군내의 굴지의 자산가였다 한다.
[이의무 음택지 ]
이의무는 1449년(세종 31)에 태어나 1507년(중종 2)에 세상을 떠났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덕수(德水) 이씨며 자는 형지(馨之), 호는 연헌(蓮軒)이다. 아버지는 온양 군수 추(抽)이며 어머니는 예문관 대제학 윤회(尹淮)의 딸이다. 연헌은 기상과 굳은 절개의 성품과 도량이 크고 활달하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조정에 출사한 지 30여 년에 동안 법률이나 규칙 따위에 위반되거나 거슬림 없이 집안이 늘 청빈하였다.
묘지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 능안 산79번지에 있는데 이곳은 덕수 이씨의 고분군이 있는 곳으로 당진 시내에서 송산면 소재지를 지나 삼월리와 무수리를 거처 십여 리 가다 보면 우측에 ‘이의무 신도비’ 이정표가 있다. 이의무 신도비는 1540년(중종 25)에 건립되었다. 중종이 비문을 내렸으며 원래의 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운 것이다. 원래 비를 받치고 있던 비희(贔屭)라는 받침석이 세월을 알려 주고 있다. 이 묘역은 왕릉과 견줄 만한 방대한 크기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혈은 물형상(物形相) 취적형(吹笛形)으로 일명 퉁소혈이라고도 한다.
물형상 취적형은 피리 형상으로 저와 비슷하나 옆으로 부는 것이 특징이다. 그 맥이 길고 혈장은 좁으며 뭉클뭉클 맥을 끌고 내려가야 진혈(眞血)이며 그래야 여러 기의 묘지를 조성할 수 있다. 이곳은 또한 아들 영의정 이기와 우의정 이행의 묘소를 비롯하여 맨 아래 말 무덤까지 피리의 구멍처럼 여러 기의 묘지를 조성하여 놓았다. 산이 높지 않아 위엄은 없으나 온화하고 이의무의 명성이 주변의 소나무와 화화나무가 함께 잘 어울려 포근함을 자아낸다.
[기지시 줄다리기 풍수]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이다.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는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이며, 줄다리기를 통한 농촌 사회의 협동 의식과 민족 생활의 변화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지형에 따른 풍수지리설에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조선 시대 선조 초에 당진 지방은 한나루[牙山灣]가 터져 하룻밤 사이에 17개 면 가운데 5개의 면이 바다에 매몰되고, 남은 지역에는 전염병이 퍼지는 등 재난이 겹쳐 민심이 흉흉하였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풍수지리가가 이곳의 지형은 옥녀가 베틀을 놓고 베를 짜는 형상이기 때문에 윤년마다 지역 주민들이 극진한 정성으로 줄을 당겨야 모든 재난이 물러가고 또 예방되며, 안정된다고 하였다. 즉, 베를 짜서 마전[피륙을 바래는 일]을 하는 데는, 짠 베를 양쪽에서 마주잡고 잡아당겨서 하므로, 줄을 당기는 것은 그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처음에는 부녀자들이 줄을 당겼다가 이후 남자들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진의 형국론 관련 지명]
당진에 풍수의 형국론과 관련된 마을 지명이 있다. 형국론은 형기론의 분류로 눈으로 확인 가능한 산이나 물의 형태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물형론이다. 즉 자연의 형태 또는 모양을 근거로 지명이 유래한 경우를 말한다. 당진읍 시곡리에 가면 윗귀밀, 윗귀물 등으로 불리는 자연 부락이 있다. 한자 지명으로는 상공(上公), 상공정(上公井), 상귀정(上龜井) 등으로 불린다. 이 마을은 옛날 당진군 동면 상공리 지역으로 거북이 우물로 들어가는 형국 혹은 귀퉁이에 우물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거북은 천지의 오행 상생상극을 잘 알고 있고 음향의 원기를 조화시켜 많이 가지고 있는 영물로 거북의 꼬리 즉, 귀미(龜尾)는 오행의 정기가 발로하는 곳이어서 부귀영화를 가져오는 길지이다. 따라서 이런 길지에 마을이 입지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당진 지역은 지명이 풍수지리에서 유래한 예가 많이 있다. 옥녀봉[신평면], 아미산[면천면], 문필봉[면천면], 둔군봉[합덕읍], 연화봉[면천면] 등이 한 예이다. 아미사안(蛾眉砂案)은 반달 모양을 이루고 빛이 아름답고 정교한 것, 문장, 장원, 신동, 비(妃)를 맡아서 주관한다는 의미다. 둔군(屯軍)은 작은 언덕, 토강(土岡), 돌 등의 잡다한 것과 큰 산 사이에 있어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절제와 대장을 나타낸다. 문필(文筆)은 여러 봉오리 가운데 우뚝한 것으로 문장, 과제(科第), 명예를 나타낸다. 옥녀(玉女)는 유예(遊藝)에 숙달한 여자로 거문고[琴]는 악기로 풍류 절미의 옥녀가 악기를 타면 모두 환희에 차서 춤추고 노래하기에 과거 급제, 부자, 옥녀를 낸다고 한다.
[의의]
풍수는 동양의 전통적인 유교의 사상인 효에 바탕을 두고 출발한 학문으로서 자신의 뿌리가 되는 조상을 편안히 모시기 위한 것이지 결코 발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인간 본연의 선성(善性)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효의 사상에 근본 한 조상 숭배, 보본반시(報本反始)에 입각한 것이며 더불어 조상의 선영을 좋은 땅에 잘 모셔 자손의 번영과 창달을 도모하는 데 있다. 풍수의 3요소인 산(山), 수(水), 방위(方位)를 조화롭게 결합하여 자연과의 상호 교감을 통한 순환 상생을 도모하여 좋은 기운의 향수와 더불어 대자연의 혜택을 더욱 높이려는 일종의 운명 개척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도 인류가 땅 위에 살면서 모든 사물 즉 사람, 땅, 마을, 물건 등에 이름이 생겨났고 후에 문자가 생기면서 이것들이 기록으로 남겨졌다. 이를 통해 풍수적 지명을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의 당진 지방 지명은 대부분 757년에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한자식으로 개편된 지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농촌에서는 그 이전의 순수 우리말로 된 지명을 사용하는 곳이 많이 있다.
따라서 그러한 순수한 우리말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한자식 지명으로 바뀌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또 지명 속에 그 지역의 자연환경, 풍수지리 등의 특성뿐 아니라 역사적, 민속학적으로 살아 있는 자료가 녹아 있어서 잘 활용하면 학문적으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