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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동부금융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924
한자 達城東部金融組合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월연표보기 - 달성동부금융조합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56년 5월 1일 - 달성동부금융조합에서 농업은행으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958년 4월 1일 - 농업은행에서 농업은행 대구지점으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961년 8월 1일 - 농업은행 대구지점에서 중소기업은행으로 개편
성격 금융조합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금융 기관.

[개설]

1907년 5월 30일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관한 건」이 공포됨에 따라 지방 소농민의 금융 이용을 돕고 농업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금융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런 방침에 따라 1927년에 달성동부금융조합이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지방금융조합의 설립은 조선 경제가 식민지 경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위하여 대한제국 재정고문인 메가다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가 화폐정리사업과 재정 기구 개편에 착수하자 전통적인 조선 금융 기구가 붕괴하고 금융경색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지방금융조합은 농공은행을 보조하여 농촌의 금융경색을 완화하고, 당시 확산되고 있던 의병투쟁을 조선 농촌 및 농민으로부터 분리·차단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7년에 설립된 달성동부금융조합은 그 후 몇 차례 변신을 거듭한다. 1956년 5월 1일에 금융조합제도가 폐지되고 「농업은행법」에 의거하여 농업은행으로 개편되었으며, 1958년 4월 1일 「특수농업은행법」에 따라 농업은행 대구지점이 되었다. 1961년 8월 1일에는 「중소기업은행법」에 의거하여 중소기업은행이 되었다. 이처럼 금융조합은 농업협동조합과 통합하여 종합농업은행이 되었고, 일부는 중소기업은행으로 분리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달성금융조합은 농공은행의 보조기관으로 발족하였으며, 정부에 의한 무이자 또는 저리 자금의 교부를 통하여 자금을 조성하고 정부가 임명하는 일본인 파견 이사의 감독하에 직접 정부 사업을 맡기도 하였다.

[현황]

대구부에는 도시조합으로 대구금융조합, 대구서부금융조합, 촌락조합으로는 달성금융조합, 달성동부금융조합이 서민층을 위한 금융을 담당하고 있다. 1943년 기준 달성동부금융조합의 종류별 예금고를 살펴보면 예금 총액은 33만 6862원이며, 그중 저축예금이 11만 5448원[34.3%]으로 가장 높고, 정기예금 11만 1960원[33.2%], 관공예금 6만 7852원[20.1%], 당좌예금 2만 1670원[6.4%], 정기적금 1만 3894원[4.1%], 거치예금 6,038원[1.8%]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달성동부금융조합의 총대출금은 22만 1907원이며 용도별로 보면 농업 자금 19만 78원[88.8%]으로 가장 높고, 상업 자금이 1만 4109원[6.4%], 기타가 1만 720원[4.8%]으로 나타났다. 달성동부금융조합이 주로 농업 자금을 방출하게 되었던 것은 촌락조합이라는 데에서 얻어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달성동부금융조합은 1930년대에도 꾸준히 성장했다. 당시 대구부에는 대구금융조합, 대구서부금융조합, 달성금융조합, 그리고 달성동부금융조합 등 2개의 도시금융조합과 2개의 촌락 금융조합이 있었으며, 이 금융조합들의 예금액은 7개 은행 예금액의 약 30% 정도였으나 대출은 7%로 매우 낮았다. 당시 달성동부금융조합은 서민금융의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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