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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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斗錫 |
영어공식명칭 | Lee Duseok |
이칭/별칭 | 인제(仁濟)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 시기/일시 | 1912년 5월 19일 - 이두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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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이두석 청년동지회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2월 19일 - 이두석 일제 경찰에게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3월 23일 - 이두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이두석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두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매원리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
학교|수학지 | 중동학교 - 서울특별시 |
학교|수학지 | 츄오대학 - 일본 도쿄시 |
활동지 | 왜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청년동지회 회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두석(李斗錫)[1912~1938]은 1912년 5월 19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고향 왜관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이두석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호는 인제(仁濟)이다. 아버지는 이수목(李壽穆)이다.
[활동 사항]
이두석은 왜관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동학교에 입학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서울에서 동조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퇴학당한 후 왜관으로 귀향하였다. 1932년 4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에서 친일 교유(敎諭) 배척 동맹휴학을 주도한 이창기(李暢基)·정행돈(鄭行敦)도 왜관으로 내려오자 이두석은 이창기·정행돈·박몽득(朴夢得)과 함께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였다. 청년동지회는 주로 농촌 계몽운동과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야학을 열어 한글을 강습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후 이두석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주오대학[中央大學] 법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에는 독서회인 성진회(惺進會)에 참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두석은 1938년 2월 19일 ‘왜관 청년동지회 사건’으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대구경찰서로 이송되었고, 모진 고문 끝에 3월 2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두석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의 애국동산에 ‘독립유공자이두석선생추모비(獨立有功者李斗錫先生追慕碑)’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