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85 |
---|---|
한자 | 吳龍洙 |
영어공식명칭 | Oh Yong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재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오용수(吳龍洙)[1922~2003]는 1922년 11월 18일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광평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연구회를 결성하고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오용수는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졸업을 앞둔 1941년 1월 23일 오후 8시경 장세파(張世播)·김영복(金榮宓)·최낙철(崔洛哲)·윤덕섭(尹德燮)·이태길(李泰吉)·이무영(李茂榮)·강두안(姜斗安)·안진강(安津江)·임굉(林宏)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대구사범학교 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연구회는 대구사범학교 교과목을 중심으로 교육부를 비롯한 9개 부서를 두었는데, 오용수는 정치경제부 책임을 맡았다. 연구회 성원들은 2월 1일경부터 3월 17일까지 6회에 걸쳐 강두안의 하숙집과 소나무숲에서 모여 국제 정세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고, 각자 가장 좋아하는 학문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어 독립을 위하여 협력·매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졸업 후 국민학교 훈도로 봉직하게 되면 우수한 제자들에게 수재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위하여 수재 교육의 경과 상황을 매월 1회 사무원에 보고할 것 등을 협의하였다. 오용수는 1941년 4월 1일 충청북도 영동에 있던 남성국민학교 훈도로 부임하여 학생과 학부형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연구회의 결의에 따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7월 말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윤독회(輪讀會)[문예부의 전신]가 발간한 항일 문예지 『반딧불』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 드러났다. 그 결과 경찰의 수사가 확대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백의단·윤독회·문예부·연구회·다혁당에서 활동한 교직원·학생·동문·학부형 등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오용수도 이때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오용수는 2003년 3월 2일 사망하였다.
[묘소]
오용수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58-6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오용수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