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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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登畫巖 |
영어공식명칭 | A Poem Sung On The Hwa-arm Cliff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32년 - 「등화암」 저자 이익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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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94년 - 「등화암」 저자 이익룡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49년 - 『요산당집』 간행 |
배경 지역 |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성격 | 한시|오언율시 |
작가 | 이익룡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 문인 학자인 이익룡이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화암에 올라 연경서원을 바라보고 지은 한시.
[개설]
「등화암(登畫巖)」의 저자 이익룡(李翼龍)[1732~1794]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이오(而五)이고, 호는 요산당(樂山堂)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대암리(臺巖里)에서 태어났다. 이익룡은 만년에 요산당(樂山堂)을 지어 학문 연마에 매진하며, 이황(李滉)[1501~1570]의 시를 선별하여 『속아송(續雅誦)』을 만들었다. 저서로 『요산당집(樂山堂集)』이 있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인데, 이황·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구성]
「등화암」은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내용]
화암춘여화(畫巖春如畫)[화암의 봄은 그림과 같아]
인재화도중(人在畫圖中)[그림 가운데 사람을 두는구나]
수유용면수(雖有龍眠手)[비록 용면의 솜씨 있더라도]
차암화난동(此巖畫難同)[이 화암과 똑같기는 어렵다네]
경앙노종사(景仰老宗師)[노종사의 덕을 우러러 사모하니]
오도벽해동(吾道闢海東)[유학의 도를 해동에 열어 주시었네]
매야천정로(梅爺踐正路)[매화 어른께서 바른길 실천하시어]
건원은팔공(建院隱八公)[서원 세워져 팔공산 자락에 숨기었구나]
[특징]
「등화암」은 ‘동(東)’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오언율시이다.
[의의와 평가]
「등화암」은 화암의 봄 경치를 노래하고 이황의 덕을 기린 한시이다. 같은 글자를 중복하여 사용하였지만 평측의 배열은 엄격하게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