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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폭동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25
한자 十一暴動事件
영어의미역 10·1 Disturbance Event
이칭/별칭 10·1 사건,10월 폭동사건,10·1 폭동,영남 폭동,10·1소요,46년 가을 폭동,10월 폭동,추수 폭동,10월 항쟁,10월 인민 항쟁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정의]

1946년 가을 경상북도 대구에서 일어나 칠곡군 등 전국으로 번져 나간 시위 사건.

[개설]

사건은 ‘10·1사건’, ‘10월 폭동사건’, ‘10·1폭동’, ‘영남폭동’, ‘10·1소요’, ‘46년 가을 폭동’, ‘10월 폭동’, ‘추수 폭동’, ‘10월 항쟁’, ‘10월 인민항쟁’ 등에서 나타나듯 다양하게 불리고 있으며 역사적 평가와 성격의 편차가 크다.

[발단]

10·1 폭동 사건의 전개는 좌익의 ‘신전술’ 채택에 따른 9월총파업에서 비롯되었다. 1946년 9월 23일 부산 철도 파업으로부터 시작된 9월총파업은 다음날인 9월 24일에 대구의 철도 파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대구에서 철도노조와 전매노조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대구의 총파업은 이들 노조가 소속되어 있는 조선 노동조합 대구 평의회에 의해 주도되다가 9월 27일에는 남조선 총파업 대구시 투쟁 위원회가 지도하였다. 9월 30일에는 대구의 우편국 노조, 출판 노조, 섬유 산업 노조 등이 파업에 참여하였고, 경상북도에서도 파업이 줄을 이었다. 이에 30일 대구와 경북에는 30여개 업체와 4천여 명의 노동자가 총파업에 참여하였다.

[경과]

1946년 9월 30일부터 남조선 총파업 대구시 투쟁 위원회가 위치한 전평 경북 위원회 사무실[현 대구시민회관 주변] 앞에 노동자 및 시민들이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10월 1일에 대구역 앞에서 철도 노조가 주축이 된 노동자들의 총파업 시위가 벌어졌다. 그 날 저녁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시위 군중 1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10·1 폭동 사건의 서막이었다. 10월 2일 아침부터 대구역 주변의 공회당[현 대구 시민 회관]과 전평 경북 위원회 건물 사이 도로에 수많은 노동자와 부녀자들이 집결하여 거리를 가득 메었다. 또 대구 경찰서 주변에도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들어 대규모의 시위 군중을 형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구역 주변에 미리 배치되어 있던 경찰이 또다시 발포함으로써 양측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시위 군중들이 대구 경찰서를 접수했고, 소식이 대구 전역으로 번지면서 시위 군중이 경찰을 공격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경찰과 시위 군중 사이에 유혈 사태가 벌어지자 미군정 당국은 탱크를 동원해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는 동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통금령을 내렸다. 그런데 대구의 사태가 가라앉았으나 시위는 경상북도 각 지역으로 파급되었다.

칠곡군에서도 1945년 10월 3일 새벽에 군중 2백여 명이 삽·곡괭이·죽창을 들고 경찰서와 약목 지서를 점거하였다. 군중들은 무기고를 점거한 후 대피한 경찰과 공무원을 수색하였다. 또 주민을 선동하여 붉은 띠를 두르고 적기가(赤旗歌)를 부르며 시가 행진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이 희생되는가 하면 경찰과 공무원은 일시 대피해야 했다.

[결과]

10·1 폭동 사건이 발생한 대구에서는 10월 21일 밤에 이르러서야 계엄령이 해제되었는데,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지만 자료는 발표 기관마다 서로 다른 실정이다. 당시 경상북도를 담당했던 제5관구 경찰청은 경찰 피해만을 발표하였는데, 사망자 31명, 부상자 30명, 행방불명 36명이었다. 조병옥 경무부장의 발표에서는 경찰 사망자 45명, 검거자 수 2,700명이 제시되었다. 미군정 당국의 발표에서는 경찰 사망자 43명, 행방불명 13명, 부상 61명에, 시위대 체포자 수 3,153명이었다. 이처럼 각 기관의 발표 수치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시위대의 피해 규모가 아예 발표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정확한 피해의 규모를 파악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칠곡군의 경우는 10월 4일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군중 시위는 진정되었다. 10월 20일에 사건 대책 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칠곡군의 피해 상황을 보면, 사망자의 경우 관리 8명, 일반인 9명 등 17명이며, 부상자의 경우 관리 7명, 일반인 9명 등 16명이었다. 또 건물의 피해를 보면, 관청 65건, 일반 6건 등 71건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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