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
조선 후기 가산산성에 설치되었던 지역 방위제도. 가산진관은 가산산성에 설치되었던 지역 방위체제이다. 가산산성은 지금의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동명면 남원리에 걸쳐 있으며, 험준한 한 산지에 위치하고, 남북으로 대로와 접해 있어 내륙 방어의 요충지였다. 1640년(인조18) 내성을 쌓고, 1700년(숙종 26) 외성을 쌓았으며, 1741년(영조 17)에 중성을 쌓았다...
-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 위치한 조선시대 봉수대 터. 조선시대 선산과 칠곡 사이에 위치한 인동 지역에 건대산 봉수대가 있었다. 산명(山名)이 『비국등록(備局謄錄)』에는 건대산(件岱山),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건대산(件臺山) 등으로 다르게 등재되어 있다. 일명 봉화산(烽火山)이라고도 한다. 인동(仁同) 지역은 조선시대에 선산과 칠곡 사이의 작은 현이었다...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실. 본관이 인동(仁同)인 심곡(深谷) 장제원(張悌元)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에 위치하고 있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 구성은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다. 전면에는 반칸 규...
-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율리에 있는 서당. 경양 서당은 본관이 인동인 기산 장압 선생의 위패를 모신 경양서원으로 창건되었으나 1871년(고종 8)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후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1903년에 경양 서당으로 중건했으며 중건기문은 1907년에 완성되었다. 당호는 경수양지(鏡水陽地)에 자리 잡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현재 내부에는 ‘경양...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성곡리에 있는 재실. 본관이 인동(仁同)인 장원(張原)을 추모하기 위해 인동 장씨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로서 옥산 남쪽의 낙동강 동편의 성곡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계산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은 홑처마집이다. 평면 구성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
경상북도 칠곡 지역의 고려시대 역사. 고려시대 초에 수동현(壽同縣)이 인동현(仁同縣)으로, 계자현(谿子縣)이 약목현(若木縣)으로, 팔리현(八里縣)이 팔거현[八居縣이 후에 八莒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인동현은 940년(고려 태조 23)에 주군현(州郡縣) 개편 때 수동현(壽同縣)이 인동현(仁同縣)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생겨났다.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현재 경...
-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교육 진흥과 실업(實業) 발달을 목표로 민족의식의 고취와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구국(救國) 교육을 이념으로 삼았던 교육 형태. 경상북도의 경우에는 유교적 전통과 유림(儒林)의 성격이 강고했으므로 신교육기관의 설립에 대해서는 비교적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선각적인 개화 인사들의 노력으로 근대적인 교육의 필요성이 인지됨으로써 학교 설립은...
-
경상북도 구미시와 김천시,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에 걸쳐있는 금오산에 세워진 고려 말기의 산성.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
6·25 전쟁 때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일원에서 벌어진 전투. 다부동은 다부원(多富院)이라고도 한다. 곧 조선시대 출장 관원을 위한 국영 숙박 시설인 원이 있었으며, 다부원은 칠곡 고평역(高平驛), 선산 연향역(延香驛), 인동 양원역(楊原驛)과 통했다. 다부동은 대구 북쪽으로부터 22㎞, 남북으로 ‘대구-안동’ 국도, ‘대구-상주’ 국도가 지나고 있고...
-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칠곡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신라 시대에는 칠촌(七村) 혹은 대목현(大木縣), 남북국 시대에는 계자현(谿子縣), 고려 시대에는 약목현(若木縣)으로 바뀌면서 존재하였으나, 1390년(공양왕 2)에는 인동현(仁同縣)에 소속되었다. 1914년에 칠곡군으로 편입되어 약목면이 되었다. 목(木)은 ‘그루’, ‘그루터기’의 표기로 성(城)을 뜻하는 고어...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영리에 있는 재실. 본관이 인동(仁同)인 장경달(張慶達)을 추모하기 위해 인동장씨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장경달의 자는 태정(泰亭)이며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장내량(張乃亮)의 아들로 1613년(광해군 5)에 태어났고 1699년(숙종 23)에 사망했다.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영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송재는 정면 4칸,...
-
이존술을 시조로 하고 이운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덕산 이씨(德山李氏) 시조(始祖) 이존술(李存述)은 고려 명종 때 덕풍(德豊: 또는 덕산)호장을 지냈다. 아들 이언후(李彦厚), 손자 이극보(李克甫)는 모두 검교(檢校)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덕풍호장을 충남 예산군 덕산에서 지낸 연유로 덕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繼承...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여급(汝及), 호는 여남(旅南). 칠곡군 석적읍[인동] 장곡의 입향조로서 선교랑(宣敎郞) 밀양(密陽) 교수(敎授) 도응룡(都應龍)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에 태어나 문학과 행실로 당세에 추중(推重)되었으며, 1636년(인조 14)에 37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진사가 되었다. 홍주(洪州)에서 인동 장곡...
-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조선 후기 국권회복 운동으로 전개된 의병전쟁과 계몽운동, 그리고 구국운동은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리하여 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국내외의 무장투쟁으로 발전하여 근대적인 국민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민족운동으로 승화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물품의 시간적 가치와 공간적 가치를 창출하는 제반 활동인 물류의 현황과 발전. 칠곡을 물류 중심도시라고 한다. 이런 별칭을 얻은 이유는 무엇이고 과연 물류 중심도시라는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최근 많은 기업들이 물류비 절감이 경영혁신의 최고 과제로 삼으면서 칠곡군이 각광을 받고 있다. 전국 제일의 물류 중심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5월 9일 칠곡군 약목면 평복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평복리 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와 함께 기산(岐山) 지역의 동지들...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11월 22일에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리 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사건이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와 함께 기산(岐山) 지역의...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무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터. 약목면 무림리에서 배석골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배석재 못 미쳐서 북쪽으로 능선 정부를 따라 올라가면 해발 347.7m의 박집산이 나오고 봉수대는 산의 정상에 위치하였다. 봉수대 터는 장방형에 가까운 타원형인데 석심토축(石芯土築)을 바탕으로 하여, 위쪽에는 토축으로 만들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석축의 범위...
-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칠곡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제도. 사동화현(斯同火縣)은 삼국시대 및 남북국시대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에 있었던 지방 행정제도이다. 757년(경덕왕 16) 이후부터 940년(태조 23)까지는 수동현으로, 고려시대에는 인동현, 조선시대에는 인동현 또는 인동도호부로 불렸다. 1895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 때 인동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78년...
-
조선시대 칠곡 지역의 각 면(面)에 설치하여 빈민을 구휼하던 곡물 대여 창고 및 제도. 칠곡 지역 사창 설치의 경위 및 목적은 1696년 신익황이 작성한 ‘약목현사창계약속서’를 통하여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약목은 인주(仁州)의 속현으로 지리적인 이점이 있어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으나, 생산이 줄고, 좋은 풍습이 없어져서 스스로 보존하고 서로 도울 수 없게 되었다. 이...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에 전해 오는 효행과 관련된 이야기.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의 삭제동(朔祭洞)은 조선시대에는 인동부(仁同府)의 문양면(文良面) 반저촌(潘渚村)에 딸린 마을이었는데, ‘삭제동’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연유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또한 효(孝) 사상을 잘 알 수 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에 전...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에 있는 재실. 본관이 인동(仁同)인 장맹저(張孟儲)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삭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 구성은 중앙에 1칸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으로 반칸 규모의 툇간마루를 설치하였다....
-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었던 사설 교육기관. 서당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에 경당(扃堂)이라는 마을 단위의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각처에서 성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의 서당은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더욱 발전된 민중 교육 기관으로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존속해온 가장 보편화된 교육기관이...
-
경상북도 칠곡군에 동일한 인물을 시조(始祖)로 하면서 집성 세거한 성씨(姓氏). 성(姓)은 혈족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이것이 언제부터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인류 사회가 시작되는 원시 시대부터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원시 사회(原始社會)는 혈연을 기초로 하여 모여 사는 집단체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 모계(母系)...
-
통일신라시대에 칠곡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제도. 수동현(壽同縣)은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부터 940년(고려 태조 23)까지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으로, 고려시대에는 인동현, 조선시대에는 인동현 또는 인동도호부로 불렸다. 1895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 때 인동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78년 선산군 구미읍[경상북도 구미출장소]과...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칠곡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제도. 신라시대에는 칠촌(七村) 혹은 대목현(大木縣)으로, 남북국시대에는 757년(신라 경덕왕 16) 계자현(谿子縣)으로, 고려시대에는 약목현(若木縣)으로 바뀌면서 존재하였으나, 1390년(고려 공양왕 2)에는 인동현(仁同縣)에 소속되었다. 1914년에는 칠곡군으로 편입되어 약목면이 되었다. 『고려사(高麗史)』 권 제57...
-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희창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시조(始祖)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追贈)되었으며, 또한 4세손으로서 중시조인 정열공(貞烈公) 송송례(宋松禮)는 고려 원종 때 벽상(壁上) 삼한삼중대광(三韓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여량(礪良)[현재 여산] 부원군(府院君...
-
장복추(張福樞)[1814~1900] 선생은 개화기 영남의 삼징사(三徵士)[장복추·김흥락·류주목]이자 삼학자[장복추·이진상·김흥락]의 한 분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사미헌(四未軒) 또는 녹리산인이다. 칠곡군 기산면 각산1리에서 태어난 사미헌은 여헌(旅軒) 장현광의 9세손이다. 여헌으로부터 내려오는 가학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미헌은 조부 각헌공에게 특별한...
-
경상북도 칠곡군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와 미래의 발전 전망.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어느 지역이나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전이나 기록물에 의하여 그 역사를 알 수 있고 한편으로는 선조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알 수도 있다. 그럼 칠곡군...
-
경상북도 칠곡군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백제 시대부터 유교가 전래되어 교육되어졌고, 고구려 소수림왕 때는 태학(太學)이 설립되어 본격적인 국민교양 교육이 형성되었다. 유교는 공자(孔子)의 인(仁) 사상을 근본으로 삼는다. 자사(子思)는 『중용(中庸)』에서 밝히기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고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는...
-
고려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고려 명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활동하였던 대표적인 관료로, 고려 고종(高宗)의 사부이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원순(元淳). 유승단은 최우(崔瑀)와 함께 강화에서 송도로 환도(還都)하는 데 공(功)을 세워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졌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고려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낸 유승석(兪承碩)을 중조(中祖)로 삼...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0년 1월 10일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1936년 왜관에서 동지구락부(同志俱樂部) 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주력하다가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6년 6월 비밀결사 동지구락부 부원으로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펼쳤다. 동지구락부는 국내에 민족의식과 사회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조직된...
-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하는 자위군(自衛軍)이자 민군(民軍). 의병의 역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것은 임진·병자 양란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이다. 특히 조선 말기 의병은 항일 독립운동의 원류인데, 칠곡·인동 지역에서는 산남의진에 참여한 장준호·장성우·손기찬(孫基瓚) 등이 있다. 조선 말기 의병은 1895~1896년의 제1...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에 전해 오는 이몽룡과 관련된 이야기.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 칠곡향토사학회가 채록하여 2005년에 발행된 『칠곡향지』5집에 수록되어 있다. 칠곡군 가산면 송학에 살고 있었던 인동(仁同) 출신의 절충장군(折衝將軍) 장천락(張天洛)이 하루는 낮잠을 청하여 자고 있는데, 꿈에서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영...
-
조선 후기 칠곡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제도.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북삼읍, 약목면, 기산면 일대 및 가산면 일부와 구미시 일부[인동동, 진미동, 양포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후기 정3품 도호부사가 파견된 고을. 인동도호부는 삼국시대 신라의 사동화현(斯同火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에 수동현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초에 인동현으로 개칭되었다. 1018...
-
장금용(張金用)과 장계를 시조로 하고 장금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성씨.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한다. 『여헌수록(旅軒手錄)』에 의하면, “상장군(上將軍) 금용(金用)을 인동장씨의 시조로 삼은 것은 단지(單只) 소급(遡及)해 올라가 아는 최상의 선조이므로 시조라 하는 것이며, 그 위의 조상...
-
경상북도 칠곡군에 세거해 온 인동장씨 문중에서 지내는 불천위 제사. 인동장씨 문중에서는 고려 말 충신인 장안세(張安世)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장현광(張顯光)에 대한 불천위제사를 지내고 있다. 불천위 제사는 평생의례인 관혼상제의 제례에 해당되는 의례이다. 제례에는 기제사, 명절에 지내는 차례 그리고 음력 시월에 지내는 묘제가 있으며, 불천위제사는 기제사에 해당...
-
인동장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여헌 장현광(張顯光) 선생의 증손 4형제, 곧 만중(萬重)을 비롯한 만취, 만익, 만성이 인동 남산에서 양촌(陽忖)으로 옮겨 살다가 각산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 장세완 씨에 따르면, 장세완 씨의 11대조인 소매당 장벽의 묘소를 시작으로 1700년대부터 마을에 인동장씨가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동장씨가 각산1리에 거...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칠곡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1592년 9월 20일부터 11월까지 칠곡군 인동 부근에서 일본군과 의병장 장사진 사이에 일어난 전투이다. 명나라 내부의 혼란과 일본의 국내 통일 과정상 상공업자의 성장 과정에서 토지 소유에서 제외된 하급 무사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또한 삼포왜란(三浦倭亂), 영파(寧波)의 난(亂) 등으로 일본의 명·조선과의 무역이...
-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칠곡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인동현(仁同縣)은 940년(고려 태조 23) 주군현 개편 때 수동현(壽同縣)을 인동현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생겨났다. 고려 시대에는 인동현, 조선 시대에는 인동현 또는 인동 도호부로 불렸다. 1895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 때 인동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78년 선산군, 칠곡군, 인동군, 구미읍을 합...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칠곡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일본은 전쟁에 육군 15만, 수군 9천여 명을 투입하여 7년간 조선을 유린하였다. 일본의 침략은 1592년 4월 14일 부산성 침략에서 출발하였다. 일본군의 선봉대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청천당 장응일(張應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야성송씨, 부인은 은진송씨이다. 1652년(효종 3)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지평을 거처 통정대부 진주목사를 지냈다.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은리에 묘소가 있으며...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태래(泰來), 호는 만회당(晩悔堂).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고려 충신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이고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한산이씨, 부인은 광산이씨이다. 인조반정 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27년(인조 5)에...
-
조선 후기 및 말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순집(舜執), 호는 해산(海山).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장여헌(張旅軒)의 후손으로 오하(梧下) 장석봉(張錫鳳)의 아들이다. 고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은 영원군수(寧遠郡守)를 지냈으며,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가 있다...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오(敬五), 호는 긍재(兢齋).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진사 장원표(張源杓)의 아들이다. 조모가 등창을 앓고 어머니가 병을 얻자 환부(患部)를 빨아서 낫게 하였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투병하는 11년 동안 치료를 위해서 수레에 모시고...
-
조선 중기의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입보(立甫), 호는 검곡(儉谷).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장령 장수(張脩)의 후손이며 통정대부 장사영(張士瑛)의 차자이다. 어머니는 한산이씨, 부인은 풍천임씨이다. 1573년(선조 6)에 태어나 여헌(旅軒) 장현광의 문인으로 품성이 깊고...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정보(正甫), 호는 극명당(克明堂).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장령 장수(張脩)의 후손이며 통정대부 장사영(張士瑛)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문화유씨, 부인은 한산이씨이다. 1563년(명종 18)에 태어나 한강 정구(鄭逑)와 여헌 장현광(張顯光)...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유신(惟信).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통덕랑 장언국(張彦國)의 아들로 숙부 장언극(張彦極)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代)를 이었다. 어머니는 여산송씨, 부인은 창녕조씨이다. 순조(純祖) 때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와 전라도 순영...
-
조선 전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호는 송설헌(松雪軒), 시호는 안양(安襄). 1305년(충열왕 31)에 등과하여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르고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인동장씨 장계(張桂)의 후손이다. 장계는 인동현의 남쪽 발영전(拔英田)에 터를 잡아 인동을 본관으로 정했다. 1459년(세조 5)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463년(세조...
-
조선 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풍저창승(豊儲倉丞)을 역임한 장보(張俌)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 부인은 성산이씨이다. 벼슬은 선무랑(宣務郞) 통례원(通禮院) 통찬(通贊)을 지냈다. 아들 형제가 효자이며 묘비가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
-
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열녀. 본관을 평산(平山)으로 하는 사과(司果) 신상곤(申相坤)의 딸이고, 본관이 인동(仁同)인 장병덕(張炳悳)의 아내이다. 시집 온 지 5개월 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자 남편이 너무나 애통해 하다가 남편 또한 죽게 되었다. 남편이 죽을 때에 평산신씨가 입으로 애통한 소리를 내지 아니하고 입관 준비를 할 때 죽은 남편의 수의(壽衣)를 자기 손으로 만들었고, 입...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8대손이며, 사인(士人) 장굉(張浤)의 장자(長子)이나 백부(伯父) 장관에게 출계(出系)하여 후사(後嗣)가 되었다. 어머니는 동래정씨, 부인은 인천채씨이다....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학행 장압(張岋)의 후손이고 장건인(張建寅)의 아들이며, 백부(伯父) 장건추(張建樞)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代)를 이었다. 어머니는 영양남씨, 부인은 풍양조씨이다. 1826년(순조 26)에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로...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2월 20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평복동[현 기산면 평복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형을 받았다. 1919년 3·1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장상흠은 기산(岐山...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공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석규(錫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 사호(賜號)는 운전(雲田).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장여헌(張旅軒)의 8대손이며 장학추(張學樞)의 아들이나 장유행(張儒行)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어머니는 김해허씨, 부인은 진...
-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오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장석룡의 신도비. 장석룡(張錫龍)[1823~1908]은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으로 본관은 인동이다. 1846년(헌종 12) 과거에 장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1902년에 숭정대부에 승서되고, 규장각제학을 역임하였다. 비문은 대제학 김학진이 짓고 판서 윤용구가 글씨를...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백(省伯), 호는 신재(新齋).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통덕랑 장숙(張琡)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평산신씨이고 부인은 진성이씨이다. 1786년(정조 10)에 태어나 1813년(순조 13)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경릉[성종의 생부 묘] 참봉, 의금...
-
조선 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양중(揚仲), 호는 소정(小亭).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승지 장석유(張錫裕)의 동생이다. 사미헌 장복추(張福樞)의 문하로 1865년(고종 2)에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 성균관 전적을 거쳐 1871년(고종...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익재(益哉), 호는 일재(逸齋).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고려 초에 인동에 정착한 후 고려 중기에 분파를 시작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25개 파가 전국 각지로 분파되어 나가고 5개파가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을 지켜 장씨의 연원을 이루고 있다....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태린(太隣), 호는 거연재(居然齋).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贈 戶曹參判) 장한경(張漢經)이다. 어머니는 팔거도씨, 부인은 월성최씨이다. 정조(正祖) 때 무과에 급제하...
-
조선 중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앙(景仰), 호는 학거(鶴渠).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이며 장신손(張信孫)의 손자로 휴암(休巖) 장항(張沆)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울산박씨, 부인은 성산이씨이다. 1561년(명종 16)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
조선 전기 및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정필(張貞弼)을 도시조(都始祖)로 하고 대제학 장계(張桂)를 중시조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는 인동장씨로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와는 맥을 달리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문숙공 장순손이 영의정을 지낸 연유로 문숙공파의 파조가 되었으며,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장중지(張重智)이다. 칠곡군 석적읍...
-
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유(公裕), 호는 운정(雲庭).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아버지는 장석구(張錫龜)이나, 판서 장석룡(張錫龍)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어머니는 김해허씨, 부인은 풍양조씨이다. 1853년 칠곡군에서 태어나 1885년(고종 22)에 증광...
-
조선 후기 및 말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희백(羲伯), 호는 농산(農山).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후손이고 주부(主簿) 장유량(張有良)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밀양손씨, 부인은 여산송씨이다. 사미헌(四未軒)의 문인이자 당대의 유학자로 사...
-
조선 후기 순조 즉위년에 인동에서 일어난 역모 고변(告變) 사건. 순조 즉위년인 1800년에 정조 독살설의 영남 유포에 따른 인동의 장시경 형제가 서울로 진격, 노론 벽파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려고 했다는 역모 고변으로 인해 일어난 인동작변(仁同作變) 사건이다. 영조 이후 인동의 남인계 재지 사족들은 중앙 진출에 거듭 실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
-
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응칠(應七), 호는 운고(雲皐).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장여헌(張旅軒)의 후손이며, 장봉상(張鳳祥)의 둘째 아들이나, 증 이조참판 장빈(張濱)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어머니는 광주이씨, 부인은 청주정씨이다. 1849년(헌종 15)...
-
고려시대 칠곡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송은(松隱).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장균(張均)의 아들이다. 고려 때 연경궁(延慶宮)의 제공(提控)·함흥부사를 거...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안(景安), 호는 기산(岐山).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송은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으로 진사 장신손(張信孫)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휴암 장항(張沆)이다. 북삼읍 율리의 입향조이며, 어머니는 울산박씨, 부인은 강릉최씨이다. 일찍이 학업을 폐하...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인(景仁), 호는 송와(松窩).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송은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으로 진사 장신손(張信孫)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휴암 장항(張沆)이다. 어머니는 울산박씨, 부인은 경주김씨이다. 송정(松亭) 최응룡(崔應龍)의 문인...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8년 7월 8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현 석적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석적면 중동의 선비였던 장영남은...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8월 19일에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장영옥은 장지희(張祉熙)·장영창(張永昌)·장영남(張永...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0년(고종 7) 8월 24일에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현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가운데, 4월 9일의 성곡동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2월 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성곡동·중동에서는 문중 일...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10월 10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번진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중동의 선비 장영창(張永昌)은 장지...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4년 5월 17일에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번진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중동의 청년선비 장영희(張永希)는 장지희(張祉...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견거(見擧), 호는 기촌(岐村).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고려 충신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이고 참의 장곤(張崑)의 아들이다. 문장이 뛰어나 15세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에게 시(詩)로서 인정을 받으니, “서수천년(西狩千年)에 도(道)가...
-
조선 말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응팔(應八), 호는 석은(石隱).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복재(復齋) 장걸(張杰)의 후손이며 장성학(張聲鶴)의 아...
-
조선 중기 및 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우환(張羽寰), 자는 보경(補卿), 호는 침류정(沈流亭).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의 손자이며 증 가선대부 장원(張厡)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포산곽씨, 부인은 흥양이씨이다. 1672년(현종 13)에 무과에...
-
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용견(龍見), 호는 석농(石儂).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의 후손이다.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후손이며 장유붕(張有鵬)의 아들이다. 1873년(고종 10)에 무과에 합격하여 의흥위(義興衛)의 좌부장(左部長), 주부, 언양현감 등을 거쳐 1890...
-
조선 말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구노(九老), 호는 해사(海史).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장봉상(張鳳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벽진이씨, 부인은 한...
-
조선 중기 칠곡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숙(經叔), 호는 청천당(聽天堂).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월포 장현도(張顯道)의 아들이나 출계(出系)하여 문강공 장현광(張顯光)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어머니는 성산이씨, 부인은 야성송씨이다. 한강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162...
-
조선 중기의 칠곡 지역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원(浩源), 호는 죽정(竹亭).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읍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충순위 장적손(張嫡孫)의 차남이고 어머니는 화순최씨,...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자장(子長). 송은(松隱)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으로 통찬(通贊) 장맹저(張孟儲)의 아들이다. 동생 장신손(張信孫)은 자는 사립(斯立), 호는 죽창(竹窓)이고 1507년(중종 2)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성종 때 어모장군(禦侮將軍) 충순위(忠順衛) 장적손(張嫡孫)은 부모상을 당해 동생 장신손(張信孫)과 함께...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중순(仲順), 호는 심곡(深谷).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학거(學渠) 장순(張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 부인은 전의이씨이다. 1591년(선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일찍이 한강 정구(鄭逑)와 여헌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성리학을...
-
조선 말기 칠곡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무중(武仲), 호는 만암(晩庵).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유일(遺逸) 장압(張岋)의 후손이다. 벼슬은 의릉참봉(懿...
-
고려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장안세(張安世)의 아들이다. 고려 말 관직은 가선대부(嘉善大夫)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지내고, 아버지...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1월 26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장지희(張祉熙)는 장영창(張永昌)·장영옥(張永鈺)...
-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치우(致雨), 호는 창랑(滄浪)이다. 장택상은 판서 장석룡(張錫龍)의 손자이며 관찰사 장승원(張承遠)의 3남으로 1893년에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오태[현 구미시 오태동]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경성의 한성소학교에서 신학문을 수업한 장택상은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
조선 중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원(聖源), 호는 남파(南坡).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한다.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의 차자이고 어머니는 광산이씨,...
-
조선 중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거원(巨原), 호는 삼우당(三優堂).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한다.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의 아들이다. 여...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덕녕부윤(德寧府尹) 장안세(張安世)의 8세손이며, 증 이조판서 장열(張烈)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경산이씨, 부인은 청주정씨이다. 1595년(선조 28)에 학문과 덕행으로 천거되어 보은현감이...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덕우(德優), 호는 월포(月浦).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장희(張熙)의 아들이고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종제(從弟)이다. 어머니는 성산이씨, 부인도 성산이씨이다. 한강 정구(鄭逑)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문학과 올바른 행실로 일세에...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열녀. 본관이 벽진(碧珍)인 일휴정 이영세(李榮世)의 손녀이다. 본관이 인동(仁同)인 장압(張岋)의 현손부(玄孫婦)이고 장흥망(張興望)의 아내이다. 남편이 죽자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조선 영조 때 여자로서 어려운 경우를 당하여도 뜻을 굳혀 정절을 지키는 행위가 임금에게 알려져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다. 지금은 정문이 없어졌다. 관련 기록이...
-
경상북도 칠곡 지역의 조선시대 역사.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의 총병(摠兵) 유정(劉綎)이 1만여 병으로 팔거산성에 머무르며 진영을 설치하면서 “진영을 설치하여 승리할 수 있는 곳으로서는 천하에서 최고이다”라고 할 정도로 칠곡은 임진왜란 등의 전란기에 중요한 요충지 역할을 하였으며, 그러한 역할 때문에 도호부가 되었다. 지금의 칠곡군은 조선시대 칠곡도호부와 인...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중리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 석적읍 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선교를 목적으로 한다. 2001년 10월 1일에 인동 지역 및 석적읍 중리 지역의 인구 증가로 천주교 대구대교구 인동성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 초대 박병래[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여 중리성당이 시작되었다. 석적 지역은 칠곡군 구역에 속하지만...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9년 2월 10일에 칠곡군 약목면[현 기산면] 평복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마을 청년들을 선도하여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는 인근 마을 청년들에게...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있는 재실. 본관이 인동(仁同)인 장보의 묘 아래에 있는 재사(齋舍)로서 가산면 다부리 진목정마을에 있다. 원래 창건은 조선 중기이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1858년(철종 9) 중창했다. 근년에 건물이 퇴락하여 1991년에 크게 중수했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금화리와 다부리 중간 지점에 위치한 진목정마을 내에 있다....
-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수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성씨. 시조(始祖) 신숭겸(申崇謙)은 전라도 곡성에서 나서 태봉(泰封)[후고구려]의 기장(騎將)으로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더불어 궁예(弓裔)를 폐하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개국원훈대장군(開國元勳大將軍)이 되었다. 하루는 왕건이 제장(諸將)들과 평주(平山)에 사냥을 나가 삼탄(三灘)을 지날 때 마침 고...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남율리에 있는 재실. 장규석(張圭錫)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로 하산재(霞山齋)의 하자(霞者)는 아침·저녁때에 햇빛을 받아 선명비등(鮮明蜚騰)한 채색으로 혼탁함이 없다고 하였다. 본관이 인동(仁同)인 장규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남율리 샛터마을에 있다. 전면에 위치한 사...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중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경우가 세운 서당. 인동(仁同) 출신,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1581~1656]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태래(泰來)이다. 아버지는 장내범(張乃範)이며,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임진왜란 후인 1608년에는 학교를 부흥시키고자 『학교의식』을 지어서 학교 교육의...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남율리에 있는 재실. 옛날부터 석적읍은 전주이씨 집성촌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후손들이 선조인 이경천(李敬千)과 아들 이빈(李馪)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칠곡누정록』에 보면 “옛날 인동(仁同) 남쪽 십리쯤 되는 곳에 밤실이라는 마을에 흥의재(興義齋)라는 재실이 있으니, 이것이 곧 왕손(王孫) 전주이씨 선재(先齋)인데 관장(管長)을 주관(主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