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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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六二五避難日誌 |
영어공식명칭 | Korean War Evacuation Diar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우 |
저술 시기/일시 | 1950년 8월 - 『6.25 피난일지』 저술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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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 시기/일시 | 1950년 10월 - 『6.25 피난일지』 저술 완료 |
편찬 시기/일시 | 1979년 - 『6.25 피난일지』 필사 |
간행 시기/일시 | 2017년 - 『6.25 피난일지』 국문 정서 후 『청송문화』제6호 2권에 수록 |
발견|발굴 시기/일시 | 2000년경 - 『6.25 피난일지』 필사본 청송군청 문서고에서 발견 |
간행처 | 청송문화원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44-30[금곡리 813-2] |
발견|발굴처 | 청송군청 문서고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군청로 51[월막리 330] |
성격 | 일지 |
저자 | 박동춘 |
편자 | 민준기 |
간행자 | 청송문화원 |
[정의]
1950년 6.25전쟁 당시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박동춘이 피난 경험을 한문으로 기록한 일지.
[개설]
『6.25 피난일지(六二五避難日誌)』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출신의 박동춘(朴東春)[1906~1989]이 6.25전쟁 당시 피난민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
박동춘(朴東春)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원서(元瑞), 족보에 수록된 이름은 박헌성(朴憲晟)이다. 1906년 7월 6일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34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로 이주하였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 구산1리의 구장(區長)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로 피난하였고, 1950년 10월 3일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동춘은 피난 당시 청송군피난민자치회장으로 활동하였다. 『6.25 피난일지』의 내용으로 보아 한문에 소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구장직을 역임하면서 학동들을 모아 한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편찬/간행 경위]
『6.25 피난일지』는 박동춘이 1950년 8월 13일부터 10월 5일까지의 피난 경험과 자신의 소감을 알리기 위하여 일지 형태로 작성한 것이다. 이 일지는 1979년 볼펜으로 필사되었는데, 3부 정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1부가 청송군청 문서고에 비정규 문서로 보관되어 있다가, 2000년 무렵에 발견되었다. 『6.25 피난일지』 필사본은 2017년 12월 청송문화원에서 간행한 문화지 『청송문화』 제6호 2권에 수록되었는데,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 있던 것을 청송군청 공무원이자 청송문화원 회원인 민준기가 국문으로 정서해서 옮겼다.
[형태/서지]
2018년 1월 현재 『6.25 피난일지』는 1979년 박동춘이 새롭게 엮은 필사본이 전한다. 필사본은 마분지 흑표지에 철끈으로 세로로 편철되어 있다. 표제는 한문으로 ‘6.25 피난일지(六.二五 避亂日誌)’인데, 표제명 좌측 상단에 ‘걸회람(乞回覽)[회람을 바람]’이라는 글자를 첨기하였다. 본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기재되어 있다. 표지를 제외한 본문의 지질은 단면 편지지이며, 크기는 세로 17.3㎝, 가로 25㎝이다. 분량은 총 96쪽에 달하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구성/내용]
『6.25 피난일지』는 서문, 「자치회역원증」, 일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치회역원증」은 1950년 9월 27일 유부대민사처장(劉部對民事處長) 육군 소령 한창은(韓昌銀)이 박동춘을 청송군피난민자치회장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발급한 것인데, 『6.25 피난일지』에는 그것의 사본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의 일지는 1950년 8월 13일부터 10월 5일까지 54일간의 기록을 날짜 순서대로 담고 있다. 일지를 날짜 순서대로 살펴보면 8월 13일은 피난 전날의 상황이고, 8월 14일에 피난을 떠났다. 이후 박동춘은 여러 피난지와 수용지를 전전하였는데, 일지에 따르면 8월 21일까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신녕천(新寧川), 8월 30일까지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안리, 9월 6일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천수용소, 9월 30일까지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에 머문 것으로 나타난다. 10월 1일 귀향길에 올랐으며, 10월 3일 고향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10월 4일과 5일은 귀향 후의 행적이다. 추정하건대 피난 당시의 주요 상황을 일자별로 그때그때 기록해 두었다가, 1979년 필사하면서 자신의 소감을 추가하고, 본문을 수정·보완하여 새롭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 다음에 수록된 부록에는 「피난민 집결지 현황」, 「피난민 명단」, 「경북 청도군 매전면 용산수용소 장정 등록부」, 「피난민 자치회에 하달된 공문등초」가 수록되어 있다. 「피난민 집결지 현황」은 도·시·군별 피난민의 집결지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피난민 명단」에는 8월 27일 영천시 화산면 대안리에 집결한 청송 지역 피난민 97세대 395명을 주소, 성명, 가족관계, 연령, 직업으로 구분해서 정리되어 있다. 「경북 청도군 매전면 용산수용소 장정 등록부」는 청도군 매전면 용산수용소에 수용된 피난민 가운데, 군 입대 대상자인 청송군 출신의 장정 34명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피난민 자치회에 하달된 공문등초」는 피난민 자치회에 하달된 각종 공문 18건을 수록한 것인데, 해당 공문은 1979년 필사할 당시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록에는 각 공문의 건명, 발급처,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내용이 길어 생략한 것도 있다. 공문의 내용은 식량 및 구호품 배급, 인부 출역 등 피난민 관리와 관련된 것이다.
[의의와 평가]
6.25전쟁 당시의 전황과 청송 지역 피난민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