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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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晩江遺稿 |
이칭/별칭 | 만강문집,만강옹유고 |
분야 | 구비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편찬 시기/일시 | 1928년 - 『만강유고』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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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전남대학교 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 |
발견|발굴처 | 전남대학교 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 |
성격 | 유고 |
저자 | 서석기 |
편자 | 서동수 |
권책 | 7책 |
행자 | 10행 25자 전후 |
규격 | 세로 30.8㎝|가로 20.0㎝ |
권수제 | 만강옹유고(晩江翁遺稿) |
[정의]
[개설]
청송 출신의 유생이며,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의 문인 서석기(徐錫琦)[1869~1924]의 미간행 유고이다.
[저자]
서석기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도언(道彦) 또는 재진(宰眞)이며, 호는 만강(晩江)이다. 1869년 3월 15일 청송군 파천면 이사리[현 덕천 3리]에서 아버지 서득곤(徐得坤)과 어머니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의 족숙(族叔)에게 양자로 들어가 이름을 서상묵(徐相黙)으로 고쳤다. 일찍이 심의준(沈宜濬)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후일 유인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6년 창의(倡義)한 유인석의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참가하였다. 제천의진 해산 이후 요동으로 건너간 유인석을 찾아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등과 함께 들어가 7년 동안 활동하다가 귀국하였다. 서석기는 중국에서 곡부(曲阜)의 공자가 살던 마을 궐리촌(闕里村)을 찾아가 공자를 비롯한 오성묘(五聖廟)를 배알하였다. 이때 공자의 후손 연성공(衍聖公) 공영이(孔令貽)를 만나 교유(交遊)하였으며, 오성상(五聖像) 및 성현상(聖賢像) 등을 얻어 가지고 귀국하였다. 서석기가 중국에서 활동하며 남긴 『유화록(遊華錄)』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만강유고(晩江遺稿)』는 서석기의 장남 서동수(徐東洙)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1928년에 수집하고 정리하여 편집한 후, 1928년에 김용수(金溶琇)의 행록(行錄)을 붙였으나 간행하지 못하였다.
[형태/서지]
7책의 필사본(筆寫本)이다. 행자는 10행 25자, 주(註) 2행(二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세로 30.8㎝, 가로 20.0㎝,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이나, 4·5·6책은 사주단변(四周單邊)에 무계(無界)이며, 7책은 사주무변(四周無邊) 무계이다.
[구성/내용]
본집은 모두 7책의 필사본이다. 1책은 시(詩), 2책은 기(記)·제문(祭文)·설(說)·발(跋)·부록(附錄), 3책은 시(詩). 4책은 서(書). 5책은 서(序)·서(書)·제문(祭文). 6책은 만(輓)·서(書)·시(詩), 7책은 부록(附錄)이다. 그중 실곡(宲谷) 이필희(李弼熙)의 편지와 의암 유인석의 편지, 그리고 학포(學圃) 정갑묵(鄭甲黙)의 『유화록(遊華錄)』 발문(跋文) 등은 중국에서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근대 개항기 청송 지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활동한 유생으로 화서학파의 종장 의암 유인석의 문인인 서석기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