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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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天潤 |
영어공식명칭 | Shim Cheonyu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홍수 |
거주|이주지 | 경상도 청보현 - 경상북도 청송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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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경의재 -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청송 |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청송심씨(靑松沈氏) 향파(鄕派) 시조인 심홍부(沈洪孚)의 4세손이며,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심천윤(沈天潤)[?~?]의 아버지 심원부는 고려 말기 새 왕조 개창에 참여하지 않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였던 인물이다. 그때 심원부는 아들 삼형제에게 “나라도 망하고 임금도 잃었으니 너희들은 조상이 묻혀 있는 청송 땅으로 내려가 농사짓고 글을 읽으며 시조의 선산을 지키며 살아가라.”는 유훈을 남겼다. 이에 심천윤 등은 고향인 청송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훈계에 따라 자기의 재능을 숨기어 감추고 지조를 굳게 지키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고향에 은거한 심천윤은 아버지의 친우였던 길재(吉再)[1353~1419]와 함께 은일(隱逸)하자는 뜻을 같이하였다. 당시 임금은 심천윤을 기용하려고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 심원부와 함께 두문동에 은거하였던 원천석(元天錫)[1330~?]도 출사를 간곡히 권유하였으나, 역시 거절하였다. 이에 태종[재위 1400~1418]이 산관(散官)인 영동정(令同正)의 벼슬을 내렸다.
[묘소]
심천윤의 묘소는 실전(失傳)되었다.
[상훈과 추모]
태종은 심천윤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정려(旌閭)를 내렸다. 또한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세거하고 있는 후손들이 1983년 심원부·심천윤·심효상(沈孝尙) 3대를 추모하기 위한 시설인 경의재(景義齋)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