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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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飛龍妻金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열녀.
[가계]
윤비룡(尹飛龍) 처 김씨(金氏)는 본관이 파평(坡平)인 윤비룡의 아내이다.
[활동 사항]
김씨는 스무세 살에 윤비룡에게 시집왔다. 윤비룡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셋의 젊은 나이로 김씨는 청상과부가 되었다. 김씨는 남편의 상을 당하여 곡을 하고 장례를 지낸 뒤,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말하며 웃는 것도 늘 가지는 태도와 다를 바 없이 하였다. 몇 달 뒤에 친정아버지가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서 지내고 있을 딸의 안부가 궁금하여 김씨를 보러 왔다. 김씨는 자신의 안부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친정아버지를 대문 밖까지 따라 나가서 전송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불행히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도 그 사람을 따라 죽어 한 무덤에 묻히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이제까지 감추고 참아 온 것은 제가 결혼을 하고서 신행(新行)의 예(禮)로 찾아뵙지도 못하고 일찍이 따뜻한 밥 한 끼 올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소략하게나마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하였으니 이제 마땅히 저세상으로 죽은 남편을 만나러 가야 할 것입니다. 부디 박명(薄命)한 불효 여식(女息)을 염려하지 마세요.” 그 뒤 며칠 후에 김씨는 죽은 남편의 생일날 남편의 산소에서 곡을 하고 술잔을 올리고서는 집으로 돌아와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진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씨의 애처로운 사연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영조(英祖)[재위 1724~1776]는 정문(旌門)을 내려 김씨의 순절(殉節)을 세상에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