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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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澤萬 |
영어공식명칭 | Kwon Taekman |
이칭/별칭 | 덕언(德彦),조모현(朝暮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추모 시기/일시 | 1737년 - 권택만 효행으로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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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737년 - 권택만 효행을 기리는 정효각 건립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외리 |
사당|배향지 | 정효각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22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언(德彦), 호는 조모현(朝暮見). 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권두경(權斗經), 할아버지는 권문계(權文桂), 증조할아버지는 권종무(權宗茂)이다.
[활동 사항]
권택만(權澤萬)[?~?]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부친을 따라 외출에서 돌아오니 화재로 집이 송두리째 타버리고 모친도 불에 타 죽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권택만은 차마 불에 구운 고기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나물죽과 소금에 절인 채소로 연명하면서 삼년상을 받들며 아버지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홀로된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누워 한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이 꽁꽁 언 못으로 가서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공양하였다. 부친이 이질을 앓고 있을 때 그 병에는 암꿩을 먹으면 특효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구하려고 하는데 구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던 어느 날 꿩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날아들었다. 권택만은 기뻐하며 꿩을 잡아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그 병세의 경중을 알려고 변(便)을 맛볼 정도로 지극한 정성을 바쳤다. 노쇠한 부친이 10여 년 동안 병석에 드러누워 이부자리에 대소변을 보았다. 권택만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몸을 씻겨드리고 말끔히 새옷으로 갈아입혀 주었으며, 이부자리도 깨끗이 씻어서 청결하게 보살피되 결코 남의 손을 빌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친이 병으로 위독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권택만은 자신의 손가락 끝을 잘라 그 피를 수혈하여 다시 반나절을 되살아나게 하였다. 부친이 사망하자 권택만은 모친상 때와 마찬가지로 여막에 시묘해 살며 삼 년 동안 한결같이 조당수와 소금에 절인 푸성귀로 연명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외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청송도호부의 유림들이 권택만의 효행을 나라에 보고하니, 영조는 1737년(영조 13) 권택만 집안에 대한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고, 정려(旌閭)하도록 명을 내렸다. 권택만에 대한 정려가 내려지자, 곧바로 유림들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22에 정효각(旌孝閣)이라는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정효각의 기문은 청송도호부사 윤휘정(尹彙貞)이 작성하였으며, 현판 글씨는 이조식(李祖植)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