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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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從渭 |
영어공식명칭 | Shin Jongwi |
이칭/별칭 | 징원(澄源),물촌(勿村)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징원(澄源), 호는 물촌(勿村).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에 정착한 풍호정(風乎亭) 신식(申寔)이고,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신명창(申命昌)이며,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신권(申眷)이다.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생원 조승종(趙承宗)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 박기(朴埼)의 딸이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 신언(申漹)은 어려서부터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임시직으로 상주목사(尙州牧使)를 맡기도 했다. 차남 신연(申演)은 효자로 이름을 얻어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에 증직되었다.
[활동 사항]
신종위(申從渭)[1501~1583]는 15세 때 외갓집에 와서 외할머니 박씨(朴氏)를 모시며 극진히 봉양하였다. 외할머니의 상사(喪事) 때는 『가례(家禮)』에 따라 3년상을 지내며 여막(廬幕)에 시묘살이를 하였다. 당시의 사대부들은 3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냈는데, 신종위는 부친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고조(高祖)까지 제사를 모셨다. 신종위는 외가에 후손이 없자 묘사(墓祠)에 밭을 장만하여 외가에 필요한 비용을 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친구 사이의 우애를 돈독히 하였으며 늙어서도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다. 고을 사람들 사이에 그의 효성과 우애를 흠앙하는 칭송이 자자해지자 관찰사가 조정에 보고하여 효행안(孝行案)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신종위는 49세가 되던 해인 1549년(명종 4)에 축산군수(丑山郡守)가 되었고,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그리고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제수되어 왕명으로 삼량관(三梁冠)을 하사받았다.
신종위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말년을 고향에서 안온히 지냈으며, 80세에는 나라에서 고령의 관원에게 은전(恩典)으로 주는 벼슬로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를 받았다. 1583년 83세 때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시와 편지, 유사(遺事), 축문(祝文) 등의 부록으로 이루어진 『물촌일고(勿村逸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평산신씨(平山申氏) 판사공파(判事公派)의 사당인 서강사(西江祠)에 배향되었다.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의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 내의 영정각(影幀閣)에는 1580년경 제작된 신정위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 430년 동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다가 지금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 기탁하여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