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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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守道 |
영어공식명칭 | Cho Sudo |
이칭/별칭 | 경직(景直),신당(新堂),조일도(趙一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65년 - 조수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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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조수도 함안 피난 |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조수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36년 - 조수도 금대정사 배향 |
거주|이주지 | 청송도호부 - 경상북도 청송군 |
부임|활동지 | 예안현 - 경상북도 안동시 |
묘소|단소 | 화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 |
사당|배향지 | 금대정사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함안 |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직(景直), 호는 신당(新堂), 초명(初名)은 조일도(趙一道).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어머니는 습독(習讀)을 지낸 권회(權恢)의 딸 증(贈)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5형제 중 맏이다. 동생 조형도(趙亨道), 조순도(趙純道), 조준도(趙遵道), 조동도(趙東道)가 모두 현달하였다.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정언(趙庭彦), 증조할아버지는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을 지낸 조연(趙淵), 부인은 박유문(朴有文)의 딸 증 숙부인(淑夫人)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활동 사항]
조수도(趙守道)[1565~1593]는 20세 때 응시한 과거 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할 수 있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시권(試券)을 절취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에 주력하는데, 특히 김언기(金彦璣) 문하에서 학문의 큰 줄기를 공부하였다. 조수도는 자형(姊兄) 신지제(申之悌)가 예안현감으로 부임하자 예안을 오가며 학문을 토론하였고, 이황(李滉)의 자취가 서린 도산서원(陶山書院)과 청량산(淸凉山)을 방문한 뒤 시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으로 같은 집안의 조종도(趙宗道)가 투옥되었는데, 조의도(趙毅道)·조민도(趙敏道)와 함께 조종도를 찾아 억울함을 위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동생 조형도·조동도로 하여금 곽재우(郭再祐)의 의병 부대에 합류하게 하였다. 대신 조수도는 노친과 식솔을 데리고 함안으로 피난하여 집안을 보전하였다.
[학문과 저술]
1588년 1월 28일부터 1592년 9월 28일까지의 일기인 『신당일록(新堂日錄)』 1책이 전한다. 과거시험 응시, 친인척 방문, 임진왜란 피난 등 당대의 생활상을 생생히 전해 주는 일기책이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 화현(火峴)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贈職)되었다. 1736년(영조 12)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조지, 조수도, 조동도, 조함수(趙咸遂), 조함신(趙咸新)을 배향하는 금대정사(金臺精舍)[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7호]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