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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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世貞 |
영어공식명칭 | Min Sejeong |
이칭/별칭 | 정숙(正叔),신재(愼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471년 - 민세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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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95년 - 민세정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502년 - 민세정 효의로 천거 및 정려 |
활동 시기/일시 | 1511년 - 민세정 효행으로 언양현감 천거 |
활동 시기/일시 | 1519년 - 민세정 현량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38년 - 민세정 사망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거주|이주지 | 의성현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
외가|처가 | 의성현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
외가|처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
부임|활동지 | 경상도 언양현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여흥 |
대표 관직 | 도사 |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문신.
[개설]
민세정(閔世貞)[1471~1538]은 조선 전기 청송도호부 안덕현[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출신의 문신이다. 효행으로 정려되었으며 현량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으로 도사를 역임하였다.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정숙(正叔), 호는 신재(愼齋). 고조할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로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아버지이자, 태종(太宗)의 장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여성군(驪城君) 겸(兼) 판의용순금사사(判義勇巡禁司事)를 지냈으며,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인 민무질(閔無疾)이다. 할아버지는 적순부위(迪順副尉) 행 사맹(行司猛)을 지낸 민촉(閔矗)이다. 할머니는 안인(安人) 영산신씨(靈山辛氏)로 신유현(辛有賢)의 딸이다.
아버지 남은(南隱) 민흥(閔興)이 처음 청송 안덕에 정착한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해 왔다. 어머니는 의인(宜人) 경주손씨(慶州孫氏)로 손사성(孫士晟)의 딸이다. 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은 낙지헌(樂志軒) 민세경(閔世卿)으로 병절교위를 역임했으며, 둘째인 딸은 현감을 지낸 고령신씨 신징(申澄)에게 출가하였다. 민세정(閔世貞)은 셋째이자, 둘째 아들이다. 민세정의 부인은 박경인(朴景仁)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아들은 민응우(閔應祐)이며, 손자는 민환(閔桓)이다. 이처럼 민흥이 청송에 안착한 지 4대째에 불과했지만, 경상북도 일대의 명문가와 혼맥을 맺으며 지역적 기반을 강화하였다.
[활동 사항]
민세정은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에서 출생하였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1502년(연산군 8)에는 효의가 깊고 청렴하여 나라에서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함] 받았다. 1511년(중종 6) 효행으로 성균관으로부터 천거되었으며 음직으로 언양현감에 나아갔다. 1519년 현량과(賢良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도사(都事)가 되었다. 조광조(趙光祖), 이자(李耔)와 함께 정치와 교육을 통해 사회를 교화하려고 했지만 기묘사화에 연좌되어 벼슬을 그만두었다. 만년에는 처가가 있는 의성군 가음면으로 옮겨가 살았으며,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상훈과 추모]
1502년(연산군 8) 효의를 높게 평가받아 정문을 세우고,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었다. 정려는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의 옛 집터에 있다. 문학과 도덕이 백세에 사표가 되고 충효가 지극하여 사림에서 사당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나라에서 금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