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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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儼 |
영어공식명칭 | Lee Eom |
이칭/별칭 | 사각(士恪),선암(仙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68년 - 이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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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안동대도호부 가야리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 |
거주|이주지 | 진보현 후평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 |
묘소|단소 | 진보현 후평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영천 |
대표 관직 | 의금부도사 |
[정의]
조선 후기 진보에 정착한 학자.
[가계]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각(士恪), 호는 선암(仙巖). 아버지는 이지번(李之蕃), 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이인필(李仁弼), 증조할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이은동(李銀仝), 부인은 선교랑(宣敎郞) 박세필(朴世弼)의 딸 의인(宜人)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활동 사항]
이엄(李儼)[1568~?]은 1568년(선조 1)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가야리(佳野里)[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김언기(金彦璣)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천거를 받아 훈도와 의금부도사(義禁府道士)에 차례로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이엄은 진보현(眞寶縣) 후평(後坪)[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으로 이주하였다. 후평에는 기이한 절경의 초선대(招仙臺)가 있었는데, 이곳을 좋아한 이엄은 여러 친우들과 함께 노닐며 시문을 지었다. 이엄은 1602년(선조 35) 완공된 봉람서원(鳳覽書院)의 원장(院長)을 15년간 지내며, 지역 사회에서 문풍을 일으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학문과 저술]
이엄의 행적을 엮은 1책의 『선암실기(仙巖實記)』가 전한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