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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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咸英 |
영어공식명칭 | Cho Hamyeong |
이칭/별칭 | 정부(挺夫),호촌(湖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정부(挺夫), 호는 호촌(湖村). 아버지는 영장(營將)을 지낸 조형도(趙亨道), 어머니는 참의(參議)를 지낸 오운(吳澐)의 딸 정부인(貞夫人) 고창오씨(高敞吳氏),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정언(趙庭彦), 부인은 주부(主簿)를 지낸 이상문(李尙文)의 딸 의인(宜人)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함영(趙咸英)[1590~1640]은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아버지 조형도와 함께 장현광(張顯光)과 정경세(鄭經世)를 찾아가 학문의 요체(要諦)에 대해 들었다. 훗날 아버지 조형도가 우거(寓居)하였던 대구도호부 호촌[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으로 이주하였고, 대구도호부 출신의 유학자인 손처눌(孫處訥)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조형도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때 조함영은 항상 북두칠성에게 절하며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남한산성이 함락하고 등창으로 아버지가 사망하자, 조함영은 슬픔에 기절하기를 반복하였다. 이후 청나라의 신하가 아님을 다짐하기 위해 평생 북쪽을 향해 앉지 않았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선조의 내외계(內外系)를 밝힌 『내외심원록(內外尋源錄)』을 저술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