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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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海黃氏 |
영어공식명칭 | PyeonghaeHwang Clan|PyeonghaeHwang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석달호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10년 - 평해황씨 입향조 황덕필 출생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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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73년 - 평해황씨 입향조 황덕필 사망년 |
본관 | 평해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
입향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
묘소|세장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산49-2 |
성씨 시조 | 황락(黃洛) |
입향 시조 | 황덕필(黃德弼) |
[정의]
황락을 시조로 하고 황덕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세거 성씨.
[개설]
평해황씨는 1573년(선조 6) 황덕필(黃德弼)[1510~1573]이 동생 황덕진(黃德眞)과 함께 청송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청송읍 청운리·송생리, 파천면 신기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평해황씨는 우리나라 황씨의 종가로 한나라에서 건너온 황락의 후예이다. 황락은 신라 유리왕 5년에 구대림(丘大林)[평해구씨의 시조] 장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지금의 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지금의 울진군 평해면으로 표류해 왔다. 평해황씨는 황락의 세 아들 중 첫째인 갑고(甲古)[기성군]의 후예라고 전한다. 그러나 이후 계대(繼代)가 분명치 않아, 후손인 황온인(黃溫仁)이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내고 평해에서 세거하게 됨으로써, 후손들이 황락을 시조로, 황온인을 일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입향 경위]
평해황씨의 청송 입향 과정을 살펴보면 입향조인 황덕필의 증조할아버지 황국노(黃國老)는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병조참의 겸 오위도총부부총관(行兵曹參議兼五衛都摠府副摠管)이었으나, 재직 시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연루되어 경주로 낙향하였으며, 이들은 경주에서 다시 의성을 거쳐 현재의 청송군 청운리로 이거하였다. 평해황씨가 처음부터 청운리에 정착할 목적은 아니었다. 입향조인 황덕필의 묘갈명에 "입향한 지 19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세상이 어수선하여 귀향하지 못하고 자연을 벗 삼아 고향을 떠나온 한을 삭혔다."라는 구절로 보아 임진왜란의 혼란한 틈에 청송에 정착한 것이다. 평해황씨는 청송 지역에 1573년 입향하여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현황]
경상북도 청송군의 평해황씨 주요 집성촌으로는 청송읍 청운리 청운마을[약 78가구], 청송읍 송생리 후평마을[약 20가구], 파천면 신기리 새터마을[약 95가구] 등이 있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 청송군에 거주하는 평해황씨는 1,001명이다.
[관련 유적]
평해황씨 관련 청송 유적은 청송읍 송생리에 송벽사(松碧祠), 세덕사(世德祠), 남암정(南嵒亭)이 있고, 청송읍 청운리에 만취서당(晩翠書堂), 영이정(詠而亭), 파서정(巴西亭), 만취정(晩翠亭), 동은정(東隱亭), 쌍효각(雙孝閣), 정효각(旌孝閣), 창효각(彰孝閣), 열녀각(烈女閣)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