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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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北道眞寶郡邑誌 |
이칭/별칭 | 진보읍지(眞寶邑誌)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감병훈 |
편찬 시기/일시 | 1899년 - 『경상북도진보군읍지』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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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성격 | 고문헌|읍지 |
편자 | 진보군 |
권책 | 불분권 1책[20장] |
행자 | 1행 18자 |
규격 | 37.2㎝[세로]|25.2㎝[가로] |
권수제 | 진보읍지(眞寶邑誌) |
[정의]
1899년 경상북도 진보군에서 편찬한 읍지.
[편찬/간행 경위]
『경상북도진보군읍지(慶尙北道眞寶郡邑誌)』는 1899년 조선 정부가 전국적 읍지 편찬 과정 안에서 당시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따라 진보군에서 제작하고 편찬한 읍지이다. 간행 년도를 1899년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이유로는 읍지의 구성 형태로 보아 알 수 있다. 먼저 본 읍지의 책머리에는 채색을 한 진보군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던 다른 지방 읍지와 같은 형태이다. 또한 책 크기와 종이 재질도 비슷할 뿐더러 본문 구성을 이루는 사주단변, 계선과 같은 판식이 상당히 유사하다. 더불어 표지제에서 경상북도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처음으로 경상도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분리되었던 1896년(건양 1)이기 때문에 1899년도에 편찬된 것이 확실시된다.
[형태/서지]
필사본으로 불분권 1책[20장]으로 되어 있다. 장정은 오침선장이고 사주단변과 계선이 있으나 어미와 판심제는 없다. 크기는 세로 37.2㎝, 가로 25.2㎝이며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표제는 ‘경상북도진보군읍지’이고 권수제는 ‘진보읍지(眞寶邑誌)’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으로 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경상북도진보군읍지』의 책머리에는 채색으로 그려진 진보군의 지도가 실려 있다. 이어 본문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군액(軍額), 성곽(城郭),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고(軍器庫), 관방(關防), 포구(浦口),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學校), 단묘(壇廟), 총묘(塚墓), 사찰(寺刹), 공해(公廨), 누정(樓亭),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우거(寓居), 절부(節婦), 열부(烈婦), 효부(孝婦), 효자(孝子), 제영(題詠), 비판(碑板), 결총(結摠), 호총(戶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성곽, 관방, 진보, 포구, 도서, 목장은 해당 사항이 없으므로 기재하지 않았다.
『경상북도진보군읍지』는 같은 시기에 제작된 다른 지방지와 구성 내용이 같다. 다만 환적조에는 1394년(태조 3)부터 수령을 역임했던 지방관 명단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과거 합격자, 열부, 효부, 효자 등에 관한 인적 사항 등 인물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기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경상북도진보군읍지』는 조선 정부가 마지막으로 진행한 관찬 읍지 간행 사업의 결과물로, 19세기 진보군 지역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이다. 특히 인물과 관련된 사항은 내용이 풍부하여 진보군 지역의 인적 사항을 연구할 때 중요한 사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