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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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峴里南角山烽燧址 |
이칭/별칭 | 고현리 남각산 봉수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고현리 산45-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성국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고현리 산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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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봉수|봉수터 |
양식 | 토석혼축 |
크기(높이,길이,둘레) | 5.2m[연대 지름]|1.1m[연대 높이]|9m 내외[기단부 길이]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고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터.
[개설]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高峴里南角山烽燧址)는 봉수제가 운용되던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제2거[경상도 동래~서울간]에 해당하는 내지 봉수의 하나였다. 동래에서 올라오는 봉수가 영덕 대소산 봉수대와 광산 봉수대로 연결되어 이곳 남각산 봉수지를 거쳐 서울로 연결되었다.
[건립 경위]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조선시대 경상도 진보현(眞寶縣)에 설치, 운영된 제2거에 해당되는 보조 봉수인 간봉이며, 설치 지역과 기능으로 보아 연대가 있는 내지 봉수에 해당한다. 남각산 봉수와 관련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진보현 편에 “남각산 봉수 동쪽으로는 영해부(寧海府)의 광산(廣山) 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안동부(安東府) 임하현(臨河縣)의 약산(藥山) 봉수에 응한다[南角山烽燧 東應寧海府廣山 西應安東府臨河縣藥山]”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연변 봉수인 영덕 대소산 봉수대에서 광산 봉수대를 거처 이곳 남각산 봉수지에 전달되고, 다시 약산 봉수대와 신석산 봉수대를 지나 안동 봉지산 봉수대로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경봉수인 서울 목멱산의 남산 봉수대로 연결하는 봉수대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남각산 봉수 대신에 약산 → 신법산(神法山) → 광산으로 이어지는 봉수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신법산 주석에다가 『여람(輿覽)』에는 남각산, 『비국등록(備局謄錄)』에는 각산(角山)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 이를 통해 진보현의 봉수대가 조선 전기에는 남각산에 있었으나, 그 후 어느 시점에 신법산[후평리 신법산 봉수지]으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위치]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진보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과 국도34호선을 따라 군립청송야송미술관 방향으로 진행하다 고현지 상류에 있는 고현교 왼쪽의 남각산길을 따라 1.8㎞ 정도 진행하면 나오는 남각산마을 경로당에서 남서쪽으로 약 700m 떨어져 오무곡지라는 저수지의 남서쪽에 접해 있는 산의 정상부에 있다.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지형적으로 대둔산(大遯山)[900.1m]과 태행산(太行山)[933.1m]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악지 중 하나인 남각산(南角山)[431m]의 능선 정상부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완만한 능선 정상부를 편평하게 정지(整地)한 후 방형의 석축 기단부를 만들고, 그 위에 원형의 흙과 돌로 쌓은 토석혼축의 연대(烟臺)를 설치하였다. 연대는 원형의 평면 형태로 기단부의 중앙에 설치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연대의 규모는 지름 5.2m, 높이 1.1m 정도로, 하단부에서 상단부로 갈수록 좁혀가며 토재와 석재를 혼용하여 축조되었다. 기단부는 길이 9m 내외의 방형의 형태로 남아 있는데, 잔존 상태로 보아 장대석(長臺石)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 당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나, 형태나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기단부에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장대석이 주변에 흩어져 있고, 연대가 기단부의 중앙에 흙과 돌로 혼축되어 일부가 남아 있다. 또한 봉수지 주변에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흩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조선시대 봉수의 운영 양상과 청송 지역의 군사적 위치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