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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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己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고대/삼국시대/고구려,고대/남북국시대/통일신라 |
집필자 | 김호동 |
개정 시기/일시 | 757년 - 청기현에서 적선현으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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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청기현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
[정의]
삼국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청기현(靑己縣)은 삼국시대부터 757년(경덕왕 16) 적선현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일대에 있던 주현(州縣)으로 행정뿐만 아니라 군사 구역이기도 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위해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고구려의 영역이다.
[관련 기록]
청기현에 대한 자료는 매우 소략하다. 고려 및 조선시대 때 간행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지명 변경과 연혁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雜志) 제4, 지리(地理) 2, 신라조(新羅條)에 따르면 “적선현(積善縣)은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다. 지금의 청부현(靑鳧縣)이다.”라고 나타나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제11, 지리(地理) 2, 경상도(慶尙道) 예주조(禮州條)에는 “청부현은 원래 고구려의 청기현인데, 신라는 적선으로 고쳐서 야성군(野城郡) 관할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부이현(鳧伊縣)으로 하였다가 다시 운봉현(雲鳳縣)으로 고쳤으며, 성종 5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본 주에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청송군(靑松郡)에는 “예전 청부는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인데, 신라에서 적선으로 이름을 고쳐서 야성군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 초에 부이현이라고 했다가 운봉현으로 고쳤으며, 성종 5년 병술(丙戌)에 또 청부현으로 고쳐서 예주 임내(任內)에 붙였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는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이다. 신라 때 적선으로 고쳐 야성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에는 부이라고 하였고, 또 운봉이라고 고쳤으며, 성종은 청부라고 고쳐서 예주의 속현으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청기현은 고대 삼국시대 때 고구려가 경상북도 지역을 한동안 다스릴 때 설치된 행정구역이다. 이후 신라에 편입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 적선현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야성군(野城郡)[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일대]의 영현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청기현의 설치는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진행된 고대 지방통치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