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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04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내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권찬규 연해주 의병 국내 진공 작전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권찬규 사망
성격 독립운동가|의병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의병.

[개설]

권찬규[?~1908]는 항일 의병으로, 연해주 의병의 국내 진공 작전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권찬규는 1903년 미국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갔다가 귀국하였다. 일제에 의해 집이 불타고 부모 형제가 모두 참혹한 죽음을 당하자, 불구대천의 원수인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가 항일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8년 7월 연해주 의병이 대규모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칠 때 작전에 참가하여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연해주 의병은 최재형(崔在亨)이 주축이 된 동의군(同義軍)과 이범윤(李範允)을 주축으로 한 창의군(倡義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연해주 의병은 전제덕(全濟德)의 지휘로 안중근(安重根)이 우영장(右令將), 엄인섭(嚴仁燮)이 좌영장(左令將)을 맡아 부대를 나누어 국내로 진공하였다. 국내로 진공한 연해주 의병은 함북 경원(慶源)·경흥(慶興)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리한 후, 국내 의진과의 연합을 위해 무산·갑산 방면으로 내륙 깊숙이 남진하였다. 그러나 회령(會寧) 영산(靈山)에서 일본군과 벌인 접전에서 패전함으로써 이러한 전략은 수포로 돌아갔고, 권찬규는 이 회령 전투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권찬규의 공훈을 기려 1997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7.01 내용 수정 연해주 의병 지휘관 전제익->전제덕으로 수정(20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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