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산
-
경상남도 창원시의 전통 건축 및 근대 건축, 현대 건축. 건축은 구조적으로 안전하면서도 공간 형태면에서는 예술적 감흥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견실한 구조와 편리한 기능, 예술적인 미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창원 지역은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산업 단지가 조성되고, 1980년대 초 경상남도 도청이 이전하면서 크게 발전했다. 도청 이전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택지 분양이...
-
경상남도 마산 지역이 ‘민주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시대적 사건과 배경.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서울에서는 여운형의 주도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조선 건준]가 결성되었다. 8월 17일 발표된 조직 명단을 보면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총무 부장 최근우, 재무 부장 이규갑, 조직 부장 정백, 선전 부장 조동호, 무경 부장 권대석 등 사회주의 계...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에 있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로, 일제 강점기 중반인 1926년에 붉은 벽돌로 지었다. 일본 군대의 마산 진출은 1905년 5월 마산선(馬山線) 철도가 건설될 때 시작되었다. 1909년 12월에 대구 주둔 일본군 헌병 분견소가 신마산에 설립되었고, 3·1 운동 후인 192...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파정(巴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대외동(臺外洞)으로 개칭되었다. 대외동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파정(巴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월영대의 대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행정동. 동서동은 『경상도 읍지』에서 서성리로 확인된다. 서성리는 고려 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환주산성과 공간적 상관성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며 환주산성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생성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합포현에서 조선 태종 때에 창원부로 편입되었고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경정(京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두월동(斗月洞)으로 개칭되었다. 두월동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경정(京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두월’의 두(斗)는 무학산의 다른 이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있는 결핵 전문 의료 기관으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치료를 위해 머물렀던 곳. 마산 결핵 요양소의 주요 기능은 결핵 환자의 진료와 임상 연구, 그리고 기타 국가 결핵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요양소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결핵 퇴치의 요람이었으며, 이곳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특히...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구 완월동에 위치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 소속 교회 마산 교회는 마산 문창 교회에서 분립된 교회이다, 신마산 지역에 살던 교인들이 문창 교회까지 다니기가 불편하여 문창 교회에 출석하던 최재환 집사 가정에서 의사인 문창 교회 장로 이순필 장로를 중심으로 예배를 한 것이 시작이다. 1947년 가을부터 조수옥 집사가 설립한 사회 복지 법인...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한 저수지. 1899년 마산항의 개항 및 러일 전쟁과 한일 합방 이후로 일본인들은 마산의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하고 근대화된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밀집된 도시에서 쾌적하고 편리한 시설을 위해서는 상하수도의 건립이 무엇보다 절실하므로, 1927년 5월에 일본인들은 총공사비 45만 1173엔[円]을 들여 상수도 시설...
-
1900년 5월 마산포의 객주들이 설립한 근대적 상업 단체. 1899년 마산항의 개항 이후 식민 자본으로부터 마산포의 상권을 보호하기 설립하였다. 1900년 5월 이규철(李圭哲)을 비롯한 마산포 시장 객주를 중심으로 마산 상호회를 조직하였다. 1908년 5월 30일 신마산 일본인 조차지에서 일본 상인 30명이 마산 상업 회의소를 설립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산 상호회는 1908년 6...
-
1927년에 경상남도 마산부 구마산의 운송업 노동자들이 일본인 고용주에게 일으킨 동맹 파업. 1927년 3월 경성 철도국이 하나의 역에 하나의 사업체만 두겠다는 정책[일역 일점 주의(一驛 一店 主義)]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신마산, 구마산, 진영, 삼랑진역 등에서 운수업에 종사하던 한국인 업주[마산 선운 업주 조합]들은 이 정책이 자신들에게 파급될 악영향을 우려하여, 일본인과 한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창원 소하천 좌우에 있는 호안 석축. 창원 소하천은 대곡산[516m]의 동사면부에 위치한 계곡으로 동쪽으로 흘러 마산 합포만에 유입되는 작은 하천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마산천(馬山川)·일화계(日和溪)라 불리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신마산으로 이주하면서 창원 소하천을 정비하며 석축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산 평화동 창원천...
-
1926년 마산부 행정(幸町)[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 거주하던 일본인 스와 시로우[諏方史郞]가 직접 자료를 모아 펴낸 마산부에 관한 종합 안내서. 스와 시로우는 1906년에 마산에 와서 터를 잡은 사람으로, 마산에 정주하기로 하고 마산을 비롯한 경상남도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마산 항지(馬山港誌)』의 발간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192...
-
일제 강점기 마산과 진해 지역의 공공 기관 및 산업 등 전반적 현황을 담아 편찬한 단행본. 『마산과 진해만』이 발간된 1911년은 1899년 개항으로 일본인들이 마산에 이주하기 시작한지 12년이 되던 해이자 오랫동안 치밀하게 추진했던 식민 군사 도시 진해의 건설 공사를 착공한지 1년 되는 해로 마산과 진해가 일본인들이 지배하는 도시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발...
-
1910년부터 해방 전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조선 시대의 마산은 창원부 혹은 창원군에 속한 작은 포구에 불과했다. 1760년(영조 36)에 마산포에 조창(漕倉)이 설치되고 세곡(稅穀) 운송에 따른 상품 유통량이 늘어나면서 마산포는 동래의 부산포(釜山浦), 김해의 칠성포(七星浦)와 더불어 경상도의 유력한 포구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함경도...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공중목욕탕에 얽힌 일화. 1940년대 인구 2만 명이 넘지 못한 신구 마산 지역에는 공중목욕탕이 성업하였다. 대표적으로 신마산 일본인 거주지의 불노탕(不老湯), 앵탕(櫻湯), 구마산의 상반탕(常盤湯), 명호탕(鳴戶湯)이 있었으며, 오동동에 조선인이 경영하던 곳이 있었다. 1960년대에는 오처탕, 오동동 입구 오동탕, 그리고 청락탕 자리에 웅...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시의 미녀 선발 대회 전신인 미녀 기생 선발 대회에 얽힌 일화. 1917년 초여름 지방 신문인 일문(日文) 남선일보사 주최로 마산 지역에 있는 현역 예기(藝妓) 인기투표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는 투표로 결정하는 것으로 투표 용지는 관제엽서로 1인 1매로 제한하였다. 처음 발표에는 신마산에 있는 망월루(望月樓), 탄월(呑月) 등의 일본인 예기들이 후보자였으...
-
근대 개항 이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일대에서 술과 여자를 팔던 유곽(遊廓). 경상남도 창원시에는 1899년 마산항의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들이 들어와 집단으로 거주하였다. 1915년경부터 일본 최하층에 속하는 자들이 구 마산 수정 일대에 자리를 잡고 청루업[성매매업]을 시작하였다. 이때 가난한 집 여자아이들을 방직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고 거짓으로 꾀어 온 것으로,...
-
1700년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형성된 경상도의 최대 장시. 『만기요람』에는 마산장을 경상도의 최대 장시(場市)로 기록했다. 1899년에 마산포가 개항장으로 지정되자 기존 시가지[舊馬山] 남쪽 신마산(新馬山) 지역에 각국의 영사관 부지와 공동 조계(租界) 등이 들어서 도시가 급속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창원 감리서가 폐지되고 마산 이사...
-
개항기 마산 지역의 정기 장시인 마산포 구강장을 일본인 거류지로 옮기려는 일본 영사관과 일본 상인들의 시도를 막아내어 한국 상인들의 상권을 지킨 운동. 1899년 마산포 개항 당시 일본 상인들은 몇 사람 되지 않은데다가 자본도 영세하여 대부분 단순 잡화상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산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면서 일본 영사관은 일본 상인들의 상권 확대를 돕기 위해 전통적...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46년 일본식 지명 앵정을 우리식 지명 문화동으로 개칭하였다. 현재의 행정동인 문화동(文化洞)은 1997년 행정동 월영 1동, 창포동, 월남동을 통합함으로써 설치되었다. 행정동인 문화동은 법정동인 월영동, 화영동, 대창동, 창포동 1·2·3가, 유록동, 청계동, 대외동, 홍문동, 문화동, 평화동, 신창동, 두월동...
-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동요. 「방앗간 노래」는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동요이다. 방아 찧기는 여성 노동에 속한다. 그러면서 집단적인 노동이 아니라 개인 노동이므로 여성의 개인적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구연 상황이다. 방아는 식생활과 관련되기 때문에 길쌈 노동과 같이 여성의 생활과 관련된 정서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서성동의 옛 지명인 성산리는 환주산성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서성리는 환주산성의 서쪽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서성동 지역은 합포현에 속했으나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었다. 1910년 창원부가 폐지되고 마산부제 실시로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마산시 반월동에 일본인들에 의해 세워진 일본인 시장. 부지 7,541㎡에 268㎡과 83㎡의 건물 두 동을 지었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로 적당한 크기의 도로를 내었다. 1923년 신마산 반월동에 선정(扇町) 공설 시장이 들어섰다. 상설 시장이었으며, 개설초기에는 전화 주문까지 받으면서 배달도하는 등의 친절 전략을 구사했지만 개설 1년도 못되어 쇠퇴하고 말았다....
-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가톨릭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교회. 천주교 마산 교구가 1997년 8월 20일자 교구 시행 공문을 통하여 교구를 4개 마산 지구, 창원 지구, 진주 지구, 통영 지구로 분할하였다. 이에 따라 통합 창원시에 위치하고 있는 본당은 마산 지구[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1지역의 양덕동 성당, 구암동 성당, 산호동 성당, 삼계 성당, 석전동 성...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생활 민속놀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일제 강점기 벚꽃놀이에 대한 일화. 주로 신마산 주변의 천변과 장군천 등지의 봄 벚꽃 놀이 장소와 당시의 분위기 등을 언급하고 있어 당시 봄놀이 문화의 일단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진해의 벚꽃 축제에 밀려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마산 지역은 예로부터 봄철의 대표적인 놀이 문화...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유정(柳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신창동(新昌洞)으로 개칭되었다. 신창동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유정(柳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마을 위치가 창원 소하천 옆에 있어 창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신포동은 법정동으로 신포동 1가와 신포동 2가로 나누어져 있으며, 행정동인 동서동 관할 하에 있다. 신포동의 ‘신포(新浦)’는 새로운 포구라는 뜻이다. 신포동은 일제 강점기 마산항이 개발되면서 새롭게 형성된 포구라는 의미에서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포동은 합포현에서 조선 태종...
-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일제 강점기 초등 교육 기관 기능을 수행한 비정규 교육 기관. 일제 강점기 야학은 크게 농민 야학·노동 야학·여성 야학으로 나눌 수 있으며,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애국 계몽 운동·실력 양성 운동·자강 운동 등의 일환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야학은 일제 강점기 거의 전 계층의 지지와 참여가 있었던 대중 운동이었으며 192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빠른...
-
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지역 출신의 사업가. 본관은 의령이다. 아버지는 옥점진(玉点振)이고 어머니는 인동 장씨이다. 옥기환(玉麒煥)[1875~1953]은 4대째 마산에 정착하며 살았던 지주 집안이었으며, 어시장에서 객주(客主)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마산 지역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07년 구성전(具聖傳) 등과 함께 재원을 마련하여 한국 최초의 노동야학인 ‘마산...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두월동3가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신마산 교당은 마산의 발전에 따라 신마산 지역에서 대종사의 법음을 활발히 전하고, 교당 운영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마산 교당에서 분리 설립되었다. 1971년 6월 30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남9길 19[신흥동 6-1]에 처음으로 교회당을 마련하고, 초대 이수진 교무가 부임하였다. 초기 법회에 참...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본정(本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월남동(月南洞)으로 개칭되었다. 월남동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본정(本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옛 월포 해수욕장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이라...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두월동에 있는 천주교 마산 교구 소속 천주교회. 신마산 일대에 유입 인구가 늘어나면서 마산 성당[현 완월동 성당] 김두호[알로이시오] 신부가 신마산 지역 성당 설립 계획을 부산교구청에 보고하고 마산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해 신설 본당 책임을 맡아서 신마산 성당[현 월남동 성당] 신설이 본격화되고 건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1958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에 있는 교량으로 장군천 위에 건설되어 있는 다리. 신마산과 구마산을 연결하는 신구마산 간 중앙 도로[중앙 간선 도로] 개설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소교량으로 1934년에 준공되었다. 현재는 국도 2호선인 3·15 대로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으며, 마산합포구청 앞에 위치하고 있다. 월포교(月浦橋)는 옛 월포 해수욕장의...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인 녹정(綠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유록동으로 개칭되었다. 유록동(柳綠洞)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그들의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녹정(綠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마을의 위치가 창원 소하천 옆에...
-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이루어지는 신 또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이나 원리를 신앙하는 행위의 총칭. 창원시는 2010년 7월 1일자로 구 마산시 및 진해시와 행정 구역을 통합하여 통합 창원시로 공식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 창원시의 인구는 통합 전 60여만 명에서 통합 후 약 110여만 명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통합의 내용이란 단순히 행정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
-
마산에서 청주 산업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를 알려면 1924년 경상남도에서 발행한 마산의 공장 통계에서 보면 된다. 주조 공장이 6개, 장유 양조장 1개, 정미소 2개, 제면소 1개, 철공소 2개 등으로 나타나 있다. 개항 이후 제법 규모 있는 공장을 분류하였을 때 청주 주조장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조계지를 설정한 구역 내에 제일 먼저 조계지 끝 지점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도정을 중앙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중앙동(中央洞)은 1958년에 설치되었다. 행정동인 중앙동은 법정동인 장군동 2·3가 일원, 중앙동 2·3가 일원, 대성동 2가, 신흥동 일원, 완월동 일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동은 일본이 1914년 행정 구역 개...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있는 소매 전문 상가. 창동 상가는 옛 마산시의 유서 깊은 원도심 상권의 중심 종합 상가이다. 창동 종합 상가가 있는 창동은 250여 년 전 조창이 생겨나 조선 말에 조운 제도가 폐지되기까지 해안의 어시장과 함께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가, 일본인 거주 지역인 신마산과 부청과 각급 관공서가 들어섰던 마산 중앙에 형성되고...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덕동동에 있는 환경 시설 사업소의 최종 침전지 옥상에 조성한 태양광 발전 시설. 1957년 설립된 향토 기업 한국 철강은 2003년 11월 당시 마산시 월영동 ‘마산공장’을 36년 만에 가동을 중단하고 공장 부지로 사용하던 터를 주택 건설업체 부영에 매각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한국 철강은 신마산 지역 주민의 화합과 체력 증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인 빈정(濱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창포동으로 개칭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포동(昌浦洞)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빈정(濱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빈정’의 빈(濱...
-
경상남도 통합 창원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 교파의 종교. 현재 마산 교구가 관할하고 있는 경상남도 일원에 교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1827년 2월[음력] 정해년 박해가 시작된 이후로 보고 있다. 박해를 피해 달아난 피난 교우들이 한편으로 백운산, 덕유산 자락을 따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낙동강을 따라 경상남도 전역으로 내려와 따뜻하고 일거리가 많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서정(曙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청계동(淸溪洞)으로 개칭되었다. 청계동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서정(曙町)을 광복 후 우리 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마을의 위치가 창원 소하천 옆에 있어...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두월동과 신창동을 연결하는 다리. 1938년부터 1945년 사이에 마산항에는 대대적인 부두 건설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와 동시에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도로의 확장과 교량 건설도 이루어졌는데 경교는 이 시기에 건설된 소교량으로 1943년에 준공되었다. 1898년 마산항이 개항하면서 마산 지역에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일본인 마을들이...
-
예전이나 지금이나 석교마을은 물론이고 귀산본동까지도 생업의 터전은 바다로, 이 바다를 텃밭으로 일구며 살아오고 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까지만 하더라도 조개 값이 나락 값의 배를 넘었으니 매일 조개를 캘 수 있는 마을 앞의 갯벌은 사람들에게 삶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는 인근의 마산에 사는 부인들도 통통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는 낚시 미끼로 인기가 있는 각종...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욱정(旭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평화동(平和洞)으로 개칭되었다. 평화동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욱정(旭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광복 후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명명한...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인 금정(錦町)을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해운동(海雲洞)으로 개칭하였다. 해운동은 일본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실질적으로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에 설치했던 일본인 마을 금정(錦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해운동은 신라 학자 최치원의 자(字)인 해운(海雲)...
-
1932년에 마산 공립 보통 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에서 제작한 마산의 도시 지도.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가 제작된 1932년은 한국인들이 거주한 마산포[원마산]와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마산이 도시 연담화(都市連擔化)[Conurbation: 중소 도시 시가지가 서로 붙어 거대 도시를 이룸]되던 시기다. 1920년대 벽두에 조선 회사령이 철폐되자 일본인들은 기업을 앞...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영정(榮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홍문동(弘文洞)으로 개칭되었다. 홍문동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 영정(榮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지리적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일본식 동명의 영정(英町)이 우리식 동명 변경에 의해 화영동으로 개칭되었다. 화영동(花英洞)은 일본이 1908년 4월 23일자로 실질적으로는 일본인 거류지인 신마산 각국 거류지 일대를 편의대로 구획한 일본인 마을인 영정(英町)을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화영동은 창원 소하천 옆에...
-
경상남도 마산부 야나기마치[柳町][현재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창동]에 있었던 영화관. 환서좌(丸西座)는 1907년에 세워진 일제 시대 창원시 최초의 극장으로, 수좌(壽座), 도좌(都座), 앵관(櫻館) 및 진해 지역의 묘락좌(妙樂座)과 함께 일본의 가부키 공연 및 영화 상영을 통해 문화 공간으로서 기능하였다. 마산 최초의 극장 환서좌는 1907년경...
-
석교마을 사람들은 물론 귀산본동 사람들은 누구나 웅남호에 대한 추억들을 갖고 있다. 황포돛배는 너무도 오래전 일이라 언제부터 언제까지 운항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긴 시간이 지나 기억 속에서 잊혀 버린 것이다. 황포돛배와 동력선인 웅남호의 교체 시기도 사람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황포돛배가 더 이상 운항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