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동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산등성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안부. 우리나라 최고의 고개는 함경산맥의 금패령으로 1,676m이다. 고개에 대한 한자 이름은 여러 가지인데, 영(嶺)은 대관령이나 진부령 같은 높은 큰 고개에 사용되었으며, 그 외에 아현·대현과 같은 현(峴)이나 팔량치·우금치처럼 치(峙)를 쓰기도 한다. 창원 지역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고 마산 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에 있는 계곡. 아홉 줄기의 내가 흐르는 골짜기이기에 우리말로 ‘아홉내골’이라고 하였고, 한자로는 ‘구천 계곡’이라 한다. 또는 워낙 골짜기가 많아 ‘아흔아홉내골’ 이라고 과장되게 표현되기도 하였다.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과 진해구 소사동,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경계에 위치한 불모산(佛母山)[801.7m]과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에 있는 자연마을. 금곡은 ‘부곡’의 오기로 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부곡임이 분명한 것을 일본인이 행정동명의 정비를 하면서 잘못 수록한 결과로 보고 있다. 부곡리는 보개산 중턱에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어 점골 또는 가맛골이라고 부르던 곳을 부곡으로 차자 표기한 이름으로 본다. 반면 금곡리를 동쪽에 있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남양동은 월남리와 산양리가 합쳐져 법정동이 된 동명이다. 남양동은 원래 웅천군(熊川郡) 동면(東面)에 속한 지역으로, 1908년(융희 2) 창원군(昌原郡) 웅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10년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남리(月南里)·산양리(山陽里), 웅읍면(熊邑面) 성내리(城內里)...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조선 시대 초기에 마천동에서 서북쪽 성흥사로 오르는 길 양쪽에 굴암산을 뒤로하여 사람이 살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12년에 간행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 대장리로 나온다. 대장(大壯), 즉 힘센 사람이 많이 나온 마을이라 대장동으로 불렸다는 속설이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 화산에서 발원하여 두동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 대장천은 발원지인 대장동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대장동은 본래 웅천군 동면의 지역으로 대장개 또는 대장이라 하였는데, 현재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장천은 진해구 대장동 화산(花山)[799.2m]의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성흥사에 이르...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마천동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의 기독교 복음 전파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7년 1월 12일에 라도벽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1910년 50여 명의 성도가 모여서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2011년 현재의 마천동으로 옮겼다. 인도네시아 김명훈 선교사 후원, 우즈벡[현 본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마천동은 북쪽의 마봉산 서쪽 기슭으로 흐르는 말내[馬川]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마천동은 원래 웅천군(熊川郡) 동면(東面)에 속한 지역으로, 1908년(융희 2년)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에 편입되었다가 1910년 마산부(馬山府)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마천동에 있는 자연마을. 용추 폭포 근처에 있어서 용추 마을이라고도 한다. ‘부암’이라는 이름은 오래되지 않았으며, 용추 폭포에서 용이 등천하면서 꼬리를 치는 서슬에 갈라진 바위가 많아 부암이라고 하였다는 민간 어원설이 있다. 부암리는 1912년에 간행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 등장한다. 당시 창원부 웅동면에...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불모산에서 발원하여 마천동에서 대장천으로 합류하는 하천. 소사동에서 발원하여 흐르므로 소사천이라 한다. 소사동은 새[풀]가 많으므로 소새 또는 소사라 하였다. 불모산(佛母山)[801.7m]에서 발원한 소사천은 전체적으로 동남쪽으로 흐른다. 좁고 경사가 급한 골짜기를 따라 흐르다가 해발 100m 지점에 이르면 경사가 완만...
-
일제의 무단 통치가 자행되던 1915년 3월에 사립학교 규칙이 대폭 개정되어 발표된다. 이 규칙의 내용은 사립학교 설치는 반드시 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인가 없이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규칙은 당시 사립학교 사정으로 매우 가혹한 처사였고, 그 적용 범위는 한국인을 교육하는 모든 사립학교에 적용되었다. 학교의 경영자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이 규칙을 적용...
-
소사동(所沙洞)은 마천동의 서쪽 ‘말내’ 건너 벌판에 사람이 살게 된 동네이다. 동네 뒤에는 높지 않은 ‘닭메’가 있고 서쪽에는 웅동 수원지가 있었다. 원래 여러 마을이 있었으나 일본 해군에서 수원지를 만들면서 주민을 모두 밀어내어 소사동이 웅동 1동의 가장 서쪽 동네가 되었다. 『호구 총수』에 소사리(所沙里)로 그 이름이 나온 이후 변함이 없었다. 1914년에 북쪽으로...
-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재현한 행사. 일제 강점기 웅동 지역은 군항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항일 운동을 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마천동 소재의 계광 학교[웅동 중학교의 전신]에는 주기용 선생 등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켰고, 그 정신의 실천이 ‘웅동 4·3 독립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따라...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계광 정신을 계승하는 주체적인 인재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새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자’이다. 웅동 중학교는 1908년 10월 20일 심익순[아일랜드인], 문세균, 배익하, 김창세 등에 의해 설립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웅동 지역과 웅천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사립 계...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과 2동에 소재한 만. 창원시 진해구 웅천과 웅동 1동과 2동에 의해 둘러싸인 만이다. ‘웅동만(熊東灣)’이 있는 웅동은 조선 시대 웅천현에 속하였다. 1908년 창원부에 통합되고, 1914년 창원군 웅동면이 되었다. 1983년 진해시에 편입되면서 웅동동이 되었다. 2010년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과 2동이 되었다. 웅동은 웅...
-
조선 시대 진해 웅천 지역의 입향조. 이임(李琳)[?~?], 이박(李珀)[?~?] 형제는 1669년에 정든 고향을 떠나 웅천에 이주하여 우애가 깊게 화합하여 객지살이의 모든 고난을 극복하여 가업을 일으켰다. 이 두 사람이 웅천의 선조이다. 형인 이임은 3명의 아들을, 남동생인 이박은 2명의 아들을 두었다. 5명의 후손이 흥성하여 많은 학도를 배출, 그들이 성장하여 향사(...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마천동에 있는 조개더미. 진해 마천 조개더미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마천동 마천 토기 산포지 인근에 위치한다. 지표 조사 과정에서 새꼬막이 주종을 이루는 조개껍데기 흔적 일부와 삼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굽다리 접시편, 항아리편 등이 조개골 부근에서 확인되었다. 또한 마천동 마을 뒤편의 경작지에서는 삼국 시대 가야의 것으로 추정되는...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에 있는 계곡.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경계의 화산(花山)[799.2m]에서 뻗어 내린 계곡이다. 화산은 삼정승(三政丞), 팔판서(八判書)가 날 명당이 있다고 전해오기에 팔판산(八判山)이라고도 한다. 계곡물이 발원하는 팔판산의 이름을 따서 팔판산 계곡이라고 한다. 계곡 입구에 성흥사라는 절이 있어 성흥사 계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