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종실 건물. 밀성(密城) 박씨(朴氏) 신암(新菴) 박연홍(朴連弘)을 위한 종실로 지어진 건물이다. 박연홍은 임진 왜란 때 최강(崔堈), 이달(李達) 등과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사천(泗川) 창속(倉粟)의 전투에서는 적장의 목을 베고 돌을 던져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오늘날에도 남진(藍津)에는 간석 기념비(干石紀念碑...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창원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의병장. 본관은 밀성. 호는 신암(新庵). 아버지는 어모장군 박량(朴亮)이다. 박연홍(朴連弘)[1556~1597]은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최강, 최대관, 정유경 등 경남 고성의 8장사와 더불어 의병을 모아 고성, 진동, 곤양, 사천 등지에서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다. 초유사 김성일의 요청으로 의...
조선 중기 경상남도 창원군 안민고개에서 의병장 최강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 임진왜란 중 조선은 명군의 지원으로 평양성을 탈환한 후 왜적과의 전투는 소강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각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은 떼를 지어 살인과 강간 및 약탈의 만행을 상습적으로 일삼았다. 또한 점령지 지역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농작물을 약탈하였다. 노현 전투가 발발한 지 1년여가 지...
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민령(安民嶺)에서 의병장 최강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 안민령(安民嶺)은 창원시 안민동과 진해구의 경화동·석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안민 고개라고도 부른다. 안민 고개는 진해와 창원을 잇는 지름길이자 해안과 내륙을 잇는 육로상의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웅천현에서 창원부 읍성에 이르는 육로상의 지름길이었다. 이곳에서...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일본이 창원을 포함한 조선을 침략한 전쟁. 임진왜란의 초기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전쟁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윤 11월에 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중국 측의 사신이 파견되어 왔을 때, 영의정 등이 왕에게 올린 보고문이 주목된다. 중국에 보내기 위하여 작성된 이 보고문은 당시 조선의 전황에 대한 허위나...
조선 왕조 시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역사. 창원은 본래 굴자군(屈自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의안군(義安郡)로 고쳤고, 지금의 마산 지역인 회원현(會原縣)은 본래 골포현(骨浦縣)인데 경덕왕이 합포(合浦)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두 현을 모두 금주(金州) 관하에 붙였다가 뒤에 각기 감무(監務)를 두었고, 1282년(충렬왕 8...
창원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읍격이 승격하였다. 창원부로 시작하여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였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창원이 행정·군사의 중심 지역이자 경상남도 일대의 수도로 그 위상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문묘의 전패(殿牌)가 분실된 사건을 계기로 9년 남짓 창원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