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사회운동가 아버지는 웅천군의 마지막 군수였던 김재형[1864~1948]이었으며, 남편은 웅동면에 살았던 배익우이다. 조봉암의 부인이었던 김조이는 김남이의 조카이다. 일본에 유학하고 와서 1928년 ‘웅천 여자 청년회’를 창립하여 대표자로 활동했다. 1930년 혼인하면서 사회활동을 중단하였다....
일제 강점기와 8·15 해방 이후 창원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김조이(金祚伊)[1904~?]는 조봉암(曺奉岩)의 부인으로 1922년 서울에서 여자 고학생 상조회의 조직을 시작으로 192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과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 1월 경성 여자 청년동맹 창립 대회에서 전형 위원 및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2월에는 전조선 민...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항일 운동가.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해방 운동 비밀 결사 조직인 조선 국권 회복단 마산 지부에서 안확·이형재·김기성·배중세(裵重世) 등이 활동하였다. 1. 창원 읍내 3월 중순 들어 경상남도 각지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창원 읍내에서도 애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만세 운동이 비밀리에 계획되었다. 이...
1919년 3·1 운동 때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 마산 지역 일제 강점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은 일부 매판자본가·기생지주(寄生地主)들을 제외한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을 몰락과 고통으로 몰고 갔다. 마산 지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마산에 190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마산 출장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의 토지 박탈과 고율의 소작료...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