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실록 지리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난포(卵抱)’는 1993년 옛 지명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개칭된 지명으로 리의 북쪽 봉화산 지세가 거북이가 알을 품은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에 지세를 누르기 위해 남루할 남(藍)자를 써 남포 또는 남개로 개칭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난중 일기』의 1592년 6월 16일 기록에서 남포(藍浦)가 확인되고 있...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조선 후기 사회는 봉건적 지배 체제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봉건 사회의 모순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극심해졌다. 봉건 사회의 중요한 생산수단인 토지가 상품화됨에 따라 토지의 소유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밀집되었고, 따라서 지주와 소작농 간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이에 조세 납부를 거부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빈번...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신촌리에는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아 ‘신비의 샘’으로 알려진 마금산 온천이 있다. 마금산 온천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조선 초엽부터 나타난다. 조선 초엽에 마금산계곡에서 솟아난 약수가 각종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나, 모여든 사람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어 약수를 매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까...
-
고려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설치한 특수 행정 구역. 완포향(莞浦鄕)이 언제부터 창원시 진해구의 지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포현으로 승격되는 1281년(충렬왕 7)까지는 합포현의 완포향이었다. 1281년에 원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공로가 있다 하여 완포현으로 승격되어 금주[지금의 김해]의 관할이 되었다. 이후 조선 문종 때 웅천현의 속현이 되...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설치된 행정 구역. 웅천현(熊川縣)은 1452년(문종 2)에 웅신(熊神)·완포(莞浦)의 두 현과 천읍부곡(川邑部曲)을 통합하여 웅천현(熊川縣)으로 승격하면서 설치되었다. 웅천현에는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수군 진(鎭)이 있었던 관계로 무관이 배치되었다. 웅천현을 보호하는 성(城)으로는 진해 성내동, 남문동, 서중동 일대에 소재하고...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조선 시대 웅천현의 역사와 인물, 물산 지역적 특성 등을 기록한 읍지. 『웅천현 읍지』는 1866년(고종 3)에 국가의 명으로 편찬된 지방지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지방지는 한강 정구가 함안의 역사와 인물, 특산물, 산천 등을 기록하여 간행한 함주지가 처음이다. 이러한 함주지의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동국여...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 대장천 일대에 있던 부곡. 부곡은 삼국 시대부터 존재하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고려 시대까지 존속하였다. 고려의 부곡은 고려 태조대 본관제의 편성과 토성 분정 과정에서 나말 여초에 존속하던 공동체적 질서에 따라 편제되었다. 『세종 실록 지리지』 권 150, 경상도, 진주목, 김해 도호부에 의하면 “부곡은 두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