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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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現代-共存-富川-在來市場 |
영어의미역 | Traditional Market of Buche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경직 |
[개설]
부천 지역은 과거 부평 지역으로 부평도호부가 자리하고 있던 계양산 밑으로 해서 김포를 경유하여 서울로 가던 큰 길이었다. 이후 경인철도가 개설되면서 소사역(素砂驛)이 생겼고 자연스레 역 주변에 시장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시장이 바로 소사삼거리 초입에 있었던 소사장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경기도 시흥의 뱀내장 터와 경기도 김포의 황어장 터를 오가던 길목에 있었던 유명한 우시장이 있었는데, 그저 장터라고 불렀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옛 소사2리에 있었다.
부천에 남아 있는 재래 시장은 현재 20여 개이다. 부천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가 고작 10만이었다. 그 인구가 자유시장에 의존했을 정도였는데, 1980년대 들어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인구가 늘어남과 아울러 재래 시장이 자연스럽게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7년 부천시에서는 재래 시장 현대화 환경 개선 사업으로 자유시장, 역곡북부시장, 중동시장, 원종종합시장을 선정하고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현황]
1. 원종고강제일시장과 원종제일시장
원종고강제일시장과 원종제일시장은 원래 이름이 제일시장인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고강동(古康洞)과 원종동(遠宗洞)으로 나뉘어, 고강동 쪽에서는 ‘고강원종제일시장’이라 부르고 원종동 쪽에서는 ‘원종고강제일시장’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시장번영회 회장도 통합해서 1명을 임명한다. 현 회장은 조길용[남, 54세]이다.
원종고강제일시장과 원종제일시장은 1983년에 원종동 298번지[고강로40번길 55]와 고강동 292번지[성지로 100] 일대의 약 3,500여 평의 규모에 건립되었다. 2008년 현재 점포는 지난 2005년 조사 때 175개였다가 153개로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실상 점포의 수만 줄어든 것이지 점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작은 점포 2~3개를 합한 큰 점포는 늘어났다.
시장은 매우 활성화된 편으로 약 700여m의 좁은 시장 길을 걸어 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장보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렇게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약 50여 개의 노점 상인들이 장사를 하다가, 이후 하나 둘 늘어나면서 지금의 대형 종합시장이 되었다. 이들 시장은 고강동 재개발 권역이기에 재개발과 함께 시장의 모습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답사 때도 머지않아 없어질 시장을 무엇 하러 조사를 하느냐며 되레 질문을 하기에, “그래서 역사로 남기려고 왔다.”고 하니 조사에 더 적극 도움을 주기도 했다.
2. 고강시장
고강시장은 1989년에 건립된 시장으로 고강본동 398번지와 407번지 일대 약 600여 평의 규모에 점포 83개가 입점해 있다. 2005년 조사 때의 72개보다 다소 늘었지만 다른 시장에 비하면 매우 한산했다. 채소류는 고강동 인근의 밭에서 거의 다 수급해서 판다고 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시장이 바로 고강시장이다. 현 회장은 서상정[남, 51세]이며, 부회장은 이명선이다.
고강시장은 처음 리어카 장사 5개 정도와 노점을 포함 약 20개 정도의 장사꾼들이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지금에 이른 시장이다. 2007년 1월 인정 시장(認定 市場)이 되기 전까지는 싸움이 많았다고 한다. 번듯한 시장 체계는 갖추었지만 인정이 되지 않아 법률상 노점으로 분류가 되어 단속이 나오면 이런저런 싸움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코에 걸면 코, 귀에 걸면 귀에 걸리는 소시민의 애환이 고증자인 장병률의 풍미 어린 눈가가 잘 말해주고 있었다.
3. 원종중앙시장
원종중앙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시장이 아니라 1991년에 원종동 209-5번지[성오로124번길 47] 일대에 약 700여 평 규모로 새로 건립하여 분양한 시장이다. 시장은 매우 한산했고 텅 비어 있는 점포도 많았다. 예전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점포는 노점 상인들을 위해 분양한 것인데 현재는 텅 비어 있다. 원종중앙시장 들어와 손해를 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점포가 120여 개로 대폭 줄었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점포가 줄어든 가장 큰 요인은 여월동 개발 지역에 삼성홈플러스가 들어섰기 때문에 상인들이 원종중앙시장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회장은 박종칠이다.
4. 원종종합시장
원종종합시장은 1985년 성곡동 367번지에 약 500여 평 규모에 건립되었다. 원종종합시장의 규모는 다소 작지만 그런대로 활성화되어 있는 시장이다. 현재 점포는 70여 개로 상권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채소류는 인근의 채소밭에서 수급한다. 2010년 현재 회장은 김잠해이다.
5. 오정종합시장
오정종합시장은 1983년 오정동 572번지[오정로232번길 50]에 건평 약 1000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건립되었다. 점포 수는 약 130여 개로 다소 활기를 띠고 있는 시장이다.
6. 신흥시장
1989년 삼정 313~315-1번지동 일대에 약 1200여 평 규모로 건립되었다. 현재 점포는 70여 개 정도로 작은 편이다. 상권도 그리 발달된 편은 아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이성만이다.
〇 베리내시장
성곡동 주민센터 바로 앞에 위치한 베리내시장은 베리내 개울을 복개하면서 생긴 시장이다. 시장 건물은 베르네 복개천 위에 두 개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점포 수로 치면 100여 개로 상당히 큰 편이다. 그러나 상권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지난번 조사 때는 빠져 있던 시장이지만, 베리내시장의 특징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부천시내 노점상들을 위해 특별히 건립한 애환이 짙게 서린 시장이다. 베리내시장은 곧 없어지고 그 위로 도로가 개통될 예정이다.
7. 역곡북부시장
1984년 역곡동 82번지~110번지 일대의 복개천 위에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노점상 몇몇이 장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어 2006년 인증 시장이 되었다. 복개천은 바로 원미산 춘덕약수터가 발원지로 벌응절리 앞으로 흐르던 개울인데 복개하여 시장을 만든 것이다. 점포는 120여 개로 역세권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는 시장이다. 고증을 해준 남일우[남, 50세] 회장은 역곡북부시장은 앞으로 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좋아질 거라며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지난번 조사 때는 역곡시장으로 되어 있었지만 역곡북부시장이 바른 명칭이다.
8. 고려시장
역곡역 앞 77-4번지 일대에 있었던 고려시장은 역곡북부시장이 생기면서 서서히 쇠락하였다. 최근까지도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현재 대형 건물 공사를 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9. 원미종합시장
원미1동에 있는 원미종합시장은 1985년에 건립되었다. 원미부흥시장에서 시작된 시장이 길 건너 원미1동 골목까지 확장되어 자연스럽게 시장이 둘로 나뉘었다. 점포는 126개 정도로 시장의 상권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었다. 시장 등록을 하기 전에는 원미종합시장과 원미부흥시장을 합해 원미시장으로 불렀다. 고증자는 조찬동정성태[남, 53세]이다.
10. 원미부흥시장
1981년에 원미동 116~119번지 일대에 건립되었으며, 현재 점포는 60여 개이다. 1987년 발표된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주요 무대 동네가 바로 이 원미부흥시장 근처이다. 처음에는 골목에서 하나 둘 노점을 하다가 형성된 시장으로 차츰 확장을 해 나가면서 길 건너까지 시장이 늘어났다. 곧 원미종합시장의 시초가 바로 이 원미부흥시장이다. 원미부흥시장 길 건너편 서쪽으로 다시 점포 20여 개가 형성되었는데 자체적으로 ‘금강시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금강시장을 원미종합시장이나 원미부흥시장 상인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권태수이다.
11. 상동시장
1985년 상동에 건립되었으며 점포는 150여 개로 주변은 아파트 지역이라 상권은 잘 발달된 시장이다. 길 건너편은 중동시장이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강대열이다.
12. 중동시장
1995년 중동 724번지[부흥로200번길 25]에 건립되었다. 상동시장이 자연스레 형성이 되면서 길 건너편에 새로 생긴 시장이 바로 중동시장이다. 상동시장이 발달하면서 길 건너인 중동으로 확장된 시장으로 상권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심현택이다.
13. 강남시장
1985년 도당동 266-39번지[부천로263번길 31]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100여 개로 다소 큰 편으로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길게 늘어선 시장 가운데 길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재래 시장의 전통 모습이 강남시장이 아닌가 한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장광섭이다.
14. 자유시장
자유시장은 1947년 심곡본동 546-2번지에 건립되었다. 현재 부천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 시장으로 부천역 남부철도를 따라 대규모로 발달된 종합 시장이다. 부천 최대의 시장으로 2007년부터 자유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국고 29억, 도비와 시비 14억여 원, 상인 부담 4억여 원을 들여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상인 회장은 조길원이다.
15. 부천청과물시장[깡시장]
1947년 심곡본동 663번지 일대에 깡시장이 생겼다. 채소류를 전문적으로 도매하던 시장이었다. 깡이란 말은 일본말인 할인(割引)을 뜻하는 ‘와리깡’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은 종합 시장으로 규모가 커졌으며, 2006년 인증 시장이 되면서 ‘부천청과물시장’이 공식 명칭으로 확정되었다.
거리에서 보면 전통 재래 시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예전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장 전체 회장은 영화상회를 운영하는 차인성이 맡고 있지만, 다른 시장과 달리 부천청과물시장은 야채 회장, 과일 회장 등 품목별 회장을 따로 두고 있다. 자유시장보다 작지만 규모는 매우 큰 시장이다.
16. 한신시장
1986년 소사본3동 277-12번지[소사로170번길 81] 일대 한신아파트 담 자락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현재 노점을 포함 104개로 2006년에 인정 시장이 되었다. 소사 재개발 권역 내에 있어 사라질 예정인데, 현재 환경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햇빛과 비 가리개 공사를 작년부터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고증자인 회장 신준식[남, 51세]은 환경 개선 사업 공사는 소사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기 전부터 하던 공사라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박군선이다.
17. 소사종합시장
1980년 소사본2동 76-78번지 일대에 건립되었다. 1978년 무렵부터 이 골목에 쌀집이나 이발소 등 5개 정도의 상점이 들어서고 몇몇 사람들이 노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다. 초창기에는 이름도 없이 그저 골목시장 또는 도깨비시장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노인들은 골목시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고증을 한 임성준[여, 56세]은 소사가방을 하는 사람으로 고향이 영종도인데, 초창기부터 장사를 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시장 가운데 길이 아주 큰 길이어서 윗소사[소사본1동] 사람들이 부천역을 가거나 버스를 타기 위해 이 길로 다녀 시장통은 늘 사람들로 북적댔다고 한다. 상권은 그때보다 훨씬 더 못하지만 잘 발달된 시장이긴 하다.
재미난 것은 주위에서 소사종합시장을 물어 보면 잘 모르는데, 대보시장이 어디냐고 하면 대번에 어디라고 위치를 알려준다. 임성준에게 물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자기네들도 대보시장으로 하려다가 소사종합시장으로 명칭을 정했다고 한다. 소사 재개발이 시작되면 없어질 시장이다.
대보시장이 더 유명한 이유가 있다. 현재 1시장 입구 쪽인 14층 세영주상복합 타워 자리에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먼저 대보시장이라고 허가를 내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보시장을 더 잘 안다고 한다. 그때 소사종합시장은 골목시장 또는 도깨비시장으로 불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현 회장은 손원식이다.
18. 조공시장
1987년 괴안동 40-11번지 일대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전에 90여 개에서 75개 정도로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다. 조공시장은 그리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조공시장은 조공아파트 담 자락 골목을 끼고 노점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3~4년 장사를 하다가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소사 재개발이 시작되면 역시 사라질 시장이다.
조공시장은 햇빛과 비 가리개 설치를 하지 않은 전형적인 재래 시장의 모습이다. 골목길에 파라솔을 펴 놓고 장사를 하는 풍경을 보면 향수를 느낄 정도로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조공시장 회장은 엄마닭집을 운영하는 한경일이다.
19. 역곡남부시장
1983년 역곡3동 107번지 일대에 건립된 시장으로 현재 점포는 노점을 포함해서 100여 개인데, 그런대로 활성화된 시장이다. 역곡 남부역 길 건너 언덕에 세로로 형성된 시장이다. 이 언덕 골목길에서 몇몇 노점상이 장사를 하다가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으로 소사재개발이 시작되면 사라질 시장이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황재천이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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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4 |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부천의 재래시장 | 1) <소표제>[오정구의 재래 시장]</소표제> <문단>1.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종제일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종제일시장</지명>은 원래 이름이 <지명 검색='0' 검색어=''>제일시장</지명>인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古康洞)</지명>과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원종동(遠宗洞)</지명>으로 나뉘어,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지명>쪽에서는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원종제일시장</지명>’이라 부르고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원종동</지명>쪽에서는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시장번영회 회장도 통합해서 1명을 임명한다. 현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조길용</인명>(남, 54세)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종제일시장</지명>은 1983년에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오정구 원종동 298번지</지명>와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동 292번지</지명> 일대의 약 3,500여 평의 규모에 건립되었다. 2008년 현재 점포는 지난 2005년 조사 때 175개였다가 153개로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실상 점포의 수만 줄어든 것이지 점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작은 점포 2~3개를 합한 큰 점포는 늘어났다.</문단> <문단>시장은 매우 활성화된 편으로 약 700여m의 좁은 시장 길을 걸어 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장보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렇게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약 50여 개의 노점 상인들이 장사를 하다가, 이후 하나 둘 늘어나면서 지금의 대형 종합시장이 되었다. 이들 시장은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지명> 재개발 권역이기에 재개발과 함께 시장의 모습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답사 때도 머지않아 없어질 시장을 무엇 하러 조사를 하느냐며 되레 질문을 하기에, “그래서 역사로 남기려고 왔다.”고 하니 조사에 더 적극 도움을 주기도 했다.</문단> <문단>2.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은 1989년에 건립된 시장으로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본동 398번지</지명>와 407번지 일대 약 600여 평의 규모에 점포 83개가 입점해 있다. 2005년 조사 때의 72개보다 다소 늘었지만 다른 시장에 비하면 매우 한산했다. 채소류는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지명> 인근의 밭에서 거의 다 수급해서 판다고 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시장이 바로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이다. 현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서상정</인명>(남, 51세)이며, 부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이명선</인명>(남, 45세), 총무는 <인명 검색='0' 검색어=''>장병률</인명>(남, 49세)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은 처음 리어카 장사 5개 정도와 노점을 포함 약 20개 정도의 장사꾼들이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지금에 이른 시장이다. 2007년 1월 인정 시장(認定 市場)이 되기 전까지는 싸움이 많았다고 한다. 번듯한 시장 체계는 갖추었지만 인정이 되지 않아 법률상 노점으로 분류가 되어 단속이 나오면 이런저런 싸움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코에 걸면 코, 귀에 걸면 귀에 걸리는 소시민의 애환이 고증자인 <인명 검색='0' 검색어=''>장병률</인명>의 풍미 어린 눈가가 잘 말해주고 있었다.</문단> <문단>3.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시장이 아니라 1991년에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원종동 209-5번지</지명> 일대에 약 700여 평 규모로 새로 건립하여 분양한 시장이다. 시장은 매우 한산했고 텅 비어 있는 점포도 많았다. 예전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점포는 노점 상인들을 위해 분양한 것인데 현재는 텅 비어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 들어와 손해를 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문단> <문단>점포가 120여 개로 대폭 줄었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점포가 줄어든 가장 큰 요인은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동'>여월동</지명> 개발 지역에 <지명 검색='0' 검색어=''>삼성홈플러스</지명>가 들어섰기 때문에 상인들이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박종칠</인명>(남, 48세), 부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서장근</인명>(남, 62세)이다.</문단> <문단>4.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종합시장'>원종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종합시장'>원종종합시장</지명>은 1985년 <지명 검색='0' 검색어=''>성곡동 367번지</지명>에 약 500여 평 규모에 건립되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종합시장'>원종종합시장</지명>의 규모는 다소 작지만 그런대로 활성화되어 있는 시장이다. 현재 점포는 70여 개로 상권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채소류는 인근의 채소밭에서 수급한다.</문단> <문단>5. <지명 검색='1' 검색어='오정종합시장'>오정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오정종합시장'>오정종합시장</지명>은 1983년 <지명 검색='1' 검색어='오정동'>오정동 572번지</지명>에 건평 약 1000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건립되었다. 점포 수는 약 130여 개로 다소 활기를 띠고 있는 시장이다.</문단> <문단>6. <지명 검색='1' 검색어='신흥시장'>신흥시장</지명></문단> <문단>1989년 <지명 검색='0' 검색어=''>삼정 313~315-1번지동</지명> 일대에 약 1200여 평 규모로 건립되었다. 현재 점포는 70여 개 정도로 작은 편이다. 상권도 그리 발달된 편은 아니다.</문단> <문단>〇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문단> <문단><기관 검색='0' 검색어=''>성곡동 주민센터</기관> 바로 앞에 위치한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지명> 개울을 복개하면서 생긴 시장이다. 시장 건물은 <지명 검색='0' 검색어=''>베르네</지명> 복개천 위에 두 개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점포 수로 치면 100여 개로 상당히 큰 편이다. 그러나 상권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지난번 조사 때는 빠져 있던 시장이지만,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의 특징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부천</지명>시내 노점상들을 위해 특별히 건립한 애환이 짙게 서린 시장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은 곧 없어지고 그 위로 도로가 개통될 예정이다.</문단> --> <문단>1.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종제일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종제일시장</지명>은 원래 이름이 <지명 검색='0' 검색어=''>제일시장</지명>인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古康洞)</지명>과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원종동(遠宗洞)</지명>으로 나뉘어,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지명>쪽에서는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원종제일시장</지명>’이라 부르고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원종동</지명>쪽에서는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시장번영회 회장도 통합해서 1명을 임명한다. 현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조길용</인명>(남, 54세)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고강제일시장'>원종고강제일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종제일시장</지명>은 1983년에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오정구 원종동 298번지</지명>와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동 292번지</지명> 일대의 약 3,500여 평의 규모에 건립되었다. 2008년 현재 점포는 지난 2005년 조사 때 175개였다가 153개로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실상 점포의 수만 줄어든 것이지 점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작은 점포 2~3개를 합한 큰 점포는 늘어났다.</문단> <문단>시장은 매우 활성화된 편으로 약 700여m의 좁은 시장 길을 걸어 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장보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렇게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약 50여 개의 노점 상인들이 장사를 하다가, 이후 하나 둘 늘어나면서 지금의 대형 종합시장이 되었다. 이들 시장은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지명> 재개발 권역이기에 재개발과 함께 시장의 모습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답사 때도 머지않아 없어질 시장을 무엇 하러 조사를 하느냐며 되레 질문을 하기에, “그래서 역사로 남기려고 왔다.”고 하니 조사에 더 적극 도움을 주기도 했다.</문단> <문단>2.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은 1989년에 건립된 시장으로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본동 398번지</지명>와 407번지 일대 약 600여 평의 규모에 점포 83개가 입점해 있다. 2005년 조사 때의 72개보다 다소 늘었지만 다른 시장에 비하면 매우 한산했다. 채소류는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동'>고강동</지명> 인근의 밭에서 거의 다 수급해서 판다고 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시장이 바로 <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이다. 현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서상정</인명>(남, 51세)이며, 부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이명선</인명>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고강시장'>고강시장</지명>은 처음 리어카 장사 5개 정도와 노점을 포함 약 20개 정도의 장사꾼들이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지금에 이른 시장이다. 2007년 1월 인정 시장(認定 市場)이 되기 전까지는 싸움이 많았다고 한다. 번듯한 시장 체계는 갖추었지만 인정이 되지 않아 법률상 노점으로 분류가 되어 단속이 나오면 이런저런 싸움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코에 걸면 코, 귀에 걸면 귀에 걸리는 소시민의 애환이 고증자인 <인명 검색='0' 검색어=''>장병률</인명>의 풍미 어린 눈가가 잘 말해주고 있었다.</문단> <문단>3.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시장이 아니라 1991년에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동'>원종동 209-5번지</지명> 일대에 약 700여 평 규모로 새로 건립하여 분양한 시장이다. 시장은 매우 한산했고 텅 비어 있는 점포도 많았다. 예전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점포는 노점 상인들을 위해 분양한 것인데 현재는 텅 비어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 들어와 손해를 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문단> <문단>점포가 120여 개로 대폭 줄었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점포가 줄어든 가장 큰 요인은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동'>여월동</지명> 개발 지역에 <지명 검색='0' 검색어=''>삼성홈플러스</지명>가 들어섰기 때문에 상인들이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중앙시장'>원종중앙시장</지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박종칠</인명>이다.</문단> <문단>4.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종합시장'>원종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종합시장'>원종종합시장</지명>은 1985년 <지명 검색='0' 검색어=''>성곡동 367번지</지명>에 약 500여 평 규모에 건립되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원종종합시장'>원종종합시장</지명>의 규모는 다소 작지만 그런대로 활성화되어 있는 시장이다. 현재 점포는 70여 개로 상권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채소류는 인근의 채소밭에서 수급한다. 2010년 현재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김잠해</인명>이다.</문단> <문단>5. <지명 검색='1' 검색어='오정종합시장'>오정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오정종합시장'>오정종합시장</지명>은 1983년 <지명 검색='1' 검색어='오정동'>오정동 572번지</지명>에 건평 약 1000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건립되었다. 점포 수는 약 130여 개로 다소 활기를 띠고 있는 시장이다.</문단> <문단>6. <지명 검색='1' 검색어='신흥시장'>신흥시장</지명></문단> <문단>1989년 <지명 검색='0' 검색어=''>삼정 313~315-1번지동</지명> 일대에 약 1200여 평 규모로 건립되었다. 현재 점포는 70여 개 정도로 작은 편이다. 상권도 그리 발달된 편은 아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이성만</인명>이다.</문단> <문단>〇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문단> <문단><기관 검색='0' 검색어=''>성곡동 주민센터</기관> 바로 앞에 위치한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지명> 개울을 복개하면서 생긴 시장이다. 시장 건물은 <지명 검색='0' 검색어=''>베르네</지명> 복개천 위에 두 개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점포 수로 치면 100여 개로 상당히 큰 편이다. 그러나 상권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지난번 조사 때는 빠져 있던 시장이지만,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의 특징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부천</지명>시내 노점상들을 위해 특별히 건립한 애환이 짙게 서린 시장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베리내시장</지명>은 곧 없어지고 그 위로 도로가 개통될 예정이다.</문단> 2) <문단>1.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문단> <문단>1984년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역곡동 82번지~110번지</지명> 일대의 복개천 위에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노점상 몇몇이 장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어 2006년 인증 시장이 되었다. 복개천은 바로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산'>원미산</지명> <지명 검색='0' 검색어=''>춘덕약수터</지명>가 발원지로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앞으로 흐르던 개울인데 복개하여 시장을 만든 것이다. 점포는 120여 개로 역세권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는 시장이다. 고증을 해준 <인명 검색='0' 검색어=''>남일우</인명>(남, 50세) 회장은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은 앞으로 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좋아질 거라며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지난번 조사 때는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시장'>역곡시장</지명>으로 되어 있었지만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이 바른 명칭이다.</문단> <문단>2. <지명 검색='0' 검색어=''>고려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역 앞 77-4번지</지명> 일대에 있었던 <지명 검색='0' 검색어=''>고려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이 생기면서 서서히 쇠락하였다. 최근까지도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현재 대형 건물 공사를 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문단> <문단>3.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원미1동</지명>에 있는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은 1985년에 건립되었다.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에서 시작된 시장이 길 건너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원미1동</지명> 골목까지 확장되어 자연스럽게 시장이 둘로 나뉘었다. 점포는 126개 정도로 시장의 상권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었다. 시장 등록을 하기 전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을 합해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시장'>원미시장</지명>으로 불렀다. 고증자는 <인명 검색='0' 검색어=''>정성태</인명>(남, 53세)이다.</문단> <문단>4.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문단> <문단>1981년에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원미동 116~119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되었으며, 현재 점포는 60여 개이다. 1987년 발표된 <인명 검색='0' 검색어=''>양귀자</인명>의 소설 <서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사람들'>『원미동 사람들』</서명>의 주요 무대 동네가 바로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 근처이다. 처음에는 골목에서 하나 둘 노점을 하다가 형성된 시장으로 차츰 확장을 해 나가면서 길 건너까지 시장이 늘어났다. 곧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의 시초가 바로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 길 건너편 서쪽으로 다시 점포 20여 개가 형성되었는데 자체적으로 ‘<지명 검색='0' 검색어=''>금강시장</지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지명 검색='0' 검색어=''>금강시장</지명>을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이나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 상인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문단> <문단>5.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시장'>상동시장</지명></문단> <문단>1985년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상동</지명>에 건립되었으며 점포는 150여 개로 주변은 아파트 지역이라 상권은 잘 발달된 시장이다. 길 건너편은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시장'>중동시장</지명>이다.</문단> <문단>6.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시장'>중동시장</지명></문단> <문단>1995년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중동 724번지</지명>에 건립되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시장'>상동시장</지명>이 자연스레 형성이 되면서 길 건너편에 새로 생긴 시장이 바로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시장'>중동시장</지명>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시장'>상동시장</지명>이 발달하면서 길 건너인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중동</지명>으로 확장된 시장으로 상권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문단> <문단>7. <지명 검색='1' 검색어='강남시장'>강남시장</지명></문단> <문단>1985년 <지명 검색='0' 검색어=''>도당동 266-39번지</지명>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100여 개로 다소 큰 편으로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길게 늘어선 시장 가운데 길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재래 시장의 전통 모습이 <지명 검색='1' 검색어='강남시장'>강남시장</지명>이 아닌가 한다.</문단> --> <문단>1.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문단> <문단>1984년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역곡동 82번지~110번지</지명> 일대의 복개천 위에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노점상 몇몇이 장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어 2006년 인증 시장이 되었다. 복개천은 바로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산'>원미산</지명> <지명 검색='0' 검색어=''>춘덕약수터</지명>가 발원지로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앞으로 흐르던 개울인데 복개하여 시장을 만든 것이다. 점포는 120여 개로 역세권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는 시장이다. 고증을 해준 <인명 검색='0' 검색어=''>남일우</인명>(남, 50세) 회장은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은 앞으로 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좋아질 거라며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지난번 조사 때는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시장'>역곡시장</지명>으로 되어 있었지만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이 바른 명칭이다.</문단> <문단>2. <지명 검색='0' 검색어=''>고려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역 앞 77-4번지</지명> 일대에 있었던 <지명 검색='0' 검색어=''>고려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북부시장</지명>이 생기면서 서서히 쇠락하였다. 최근까지도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현재 대형 건물 공사를 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문단> <문단>3.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원미1동</지명>에 있는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은 1985년에 건립되었다.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에서 시작된 시장이 길 건너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원미1동</지명> 골목까지 확장되어 자연스럽게 시장이 둘로 나뉘었다. 점포는 126개 정도로 시장의 상권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었다. 시장 등록을 하기 전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과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을 합해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시장'>원미시장</지명>으로 불렀다. 고증자는 <인명 검색='0' 검색어=''>조찬동정성태</인명>(남, 53세)이다.</문단> <문단>4.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문단> <문단>1981년에 <지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원미동 116~119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되었으며, 현재 점포는 60여 개이다. 1987년 발표된 <인명 검색='0' 검색어=''>양귀자</인명>의 소설 <서명 검색='1' 검색어='원미동사람들'>『원미동 사람들』</서명>의 주요 무대 동네가 바로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 근처이다. 처음에는 골목에서 하나 둘 노점을 하다가 형성된 시장으로 차츰 확장을 해 나가면서 길 건너까지 시장이 늘어났다. 곧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의 시초가 바로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 길 건너편 서쪽으로 다시 점포 20여 개가 형성되었는데 자체적으로 ‘<지명 검색='0' 검색어=''>금강시장</지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지명 검색='0' 검색어=''>금강시장</지명>을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종합시장</지명>이나 <지명 검색='0' 검색어=''>원미부흥시장</지명> 상인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권태수</인명>이다.</문단> <문단>5.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시장'>상동시장</지명></문단> <문단>1985년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상동</지명>에 건립되었으며 점포는 150여 개로 주변은 아파트 지역이라 상권은 잘 발달된 시장이다. 길 건너편은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시장'>중동시장</지명>이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강대열</인명>이다.</문단> <문단>6.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시장'>중동시장</지명></문단> <문단>1995년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중동 724번지</지명>에 건립되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시장'>상동시장</지명>이 자연스레 형성이 되면서 길 건너편에 새로 생긴 시장이 바로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시장'>중동시장</지명>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상동시장'>상동시장</지명>이 발달하면서 길 건너인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중동</지명>으로 확장된 시장으로 상권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심현택</인명>이다.</문단> <문단>7. <지명 검색='1' 검색어='강남시장'>강남시장</지명></문단> <문단>1985년 <지명 검색='0' 검색어=''>도당동 266-39번지</지명>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100여 개로 다소 큰 편으로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길게 늘어선 시장 가운데 길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재래 시장의 전통 모습이 <지명 검색='1' 검색어='강남시장'>강남시장</지명>이 아닌가 한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장광섭</인명>이다.</문단> 3) <소표제>[소사구의 재래 시장]</소표제> <문단>1. <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은 1947년 <지명 검색='1' 검색어='심곡본동'>심곡본동 546-2번지</지명>에 건립되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부천</지명>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 시장으로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역'>부천역</지명> 남부철도를 따라 대규모로 발달된 종합 시장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부천</지명> 최대의 시장으로 2007년부터 <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 활성화 방안으로 국고 29억, 도비와 시비 14억여 원, 상인 부담 4억여 원을 들여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상인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조길원</인명>이다.</문단> <문단>2.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청과물시장</지명>(<지명 검색='0' 검색어=''>깡시장</지명>)</문단> <문단>1947년 <지명 검색='1' 검색어='심곡본동'>소사구 심곡본동 663번지</지명> 일대에 <지명 검색='0' 검색어=''>깡시장</지명>이 생겼다. 채소류를 전문적으로 도매하던 시장이었다. 깡이란 말은 일본말인 할인(割引)을 뜻하는 ‘와리깡’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은 종합 시장으로 규모가 커졌으며, 2006년 인증 시장이 되면서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청과물시장</지명>’이 공식 명칭으로 확정되었다.</문단> <문단>거리에서 보면 전통 재래 시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예전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장 전체 회장은 <기관 검색='0' 검색어=''>영화상회</기관>를 운영하는 <인명 검색='0' 검색어=''>차인성</인명>이 맡고 있지만, 다른 시장과 달리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청과물시장</지명>은 야채 회장, 과일 회장 등 품목별 회장을 따로 두고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보다 작지만 규모는 매우 큰 시장이다.</문단> <문단>3. <지명 검색='1' 검색어='한신시장'>한신시장</지명></문단> <문단>1986년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본동'>소사본3동 277-12번지</지명> 일대 <지명 검색='0' 검색어=''>한신아파트</지명> 담 자락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현재 노점을 포함 104개로 2006년에 인정 시장이 되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 권역 내에 있어 사라질 예정인데, 현재 환경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햇빛과 비 가리개 공사를 작년부터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고증자인 회장 <인명 검색='0' 검색어=''>신준식</인명>(남, 51세)은 환경 개선 사업 공사는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기 전부터 하던 공사라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했다.</문단> <문단>4.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1980년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본동'>소사본2동 76-78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되었다. 1978년 무렵부터 이 골목에 쌀집이나 이발소 등 5개 정도의 상점이 들어서고 몇몇 사람들이 노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다. 초창기에는 이름도 없이 그저 <지명 검색='0' 검색어=''>골목시장</지명> 또는 <지명 검색='0' 검색어=''>도깨비시장</지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노인들은 <지명 검색='0' 검색어=''>골목시장</지명>이라 부른다고 한다.</문단> <문단>고증을 한 <인명 검색='0' 검색어=''>임성준</인명>(여, 56세)은 <기관 검색='0' 검색어=''>소사가방</기관>을 하는 사람으로 고향이 <지명 검색='0' 검색어=''>영종도</지명>인데, 초창기부터 장사를 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시장 가운데 길이 아주 큰 길이어서 <지명 검색='1' 검색어='윗소사'>윗소사</지명>(<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본동'>소사본1동</지명>) 사람들이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역'>부천역</지명>을 가거나 버스를 타기 위해 이 길로 다녀 시장통은 늘 사람들로 북적댔다고 한다. 상권은 그때보다 훨씬 더 못하지만 잘 발달된 시장이긴 하다.</문단> <문단>재미난 것은 주위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을 물어 보면 잘 모르는데,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이 어디냐고 하면 대번에 어디라고 위치를 알려준다. <인명 검색='0' 검색어=''>임성준</인명>에게 물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자기네들도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으로 하려다가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으로 명칭을 정했다고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이 시작되면 없어질 시장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이 더 유명한 이유가 있다. 현재 1시장 입구 쪽인 14층 <지명 검색='0' 검색어=''>세영주상복합 타워</지명> 자리에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먼저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이라고 허가를 내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을 더 잘 안다고 한다. 그때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골목시장</지명> 또는 <지명 검색='0' 검색어=''>도깨비시장</지명>으로 불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현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김준일</인명>(남, 51세)이다.</문단> <문단>5.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문단> <문단>1987년 <지명 검색='0' 검색어=''>괴안동 40-11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전에 90여 개에서 75개 정도로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은 그리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조공아파트</지명> 담 자락 골목을 끼고 노점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3~4년 장사를 하다가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이 시작되면 역시 사라질 시장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은 햇빛과 비 가리개 설치를 하지 않은 전형적인 재래 시장의 모습이다. 골목길에 파라솔을 펴 놓고 장사를 하는 풍경을 보면 향수를 느낄 정도로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 회장은 <지명 검색='0' 검색어=''>엄마닭집</지명>을 운영하는 <인명 검색='0' 검색어=''>박순자</인명>(여, 59세)이다.</문단> <문단>6.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남부시장'>역곡남부시장</지명></문단> <문단>1983년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역곡3동 107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된 시장으로 현재 점포는 노점을 포함해서 100여 개인데, 그런대로 활성화된 시장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지명> <지명 검색='0' 검색어=''>남부역</지명> 길 건너 언덕에 세로로 형성된 시장이다. 이 언덕 골목길에서 몇몇 노점상이 장사를 하다가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으로 소사재개발이 시작되면 사라질 시장이다.</문단> --> <문단>1. <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은 1947년 <지명 검색='1' 검색어='심곡본동'>심곡본동 546-2번지</지명>에 건립되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부천</지명>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 시장으로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역'>부천역</지명> 남부철도를 따라 대규모로 발달된 종합 시장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부천</지명> 최대의 시장으로 2007년부터 <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 활성화 방안으로 국고 29억, 도비와 시비 14억여 원, 상인 부담 4억여 원을 들여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상인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조길원</인명>이다.</문단> <문단>2.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청과물시장</지명>(<지명 검색='0' 검색어=''>깡시장</지명>)</문단> <문단>1947년 <지명 검색='1' 검색어='심곡본동'>소사구 심곡본동 663번지</지명> 일대에 <지명 검색='0' 검색어=''>깡시장</지명>이 생겼다. 채소류를 전문적으로 도매하던 시장이었다. 깡이란 말은 일본말인 할인(割引)을 뜻하는 ‘와리깡’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은 종합 시장으로 규모가 커졌으며, 2006년 인증 시장이 되면서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청과물시장</지명>’이 공식 명칭으로 확정되었다.</문단> <문단>거리에서 보면 전통 재래 시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예전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장 전체 회장은 <기관 검색='0' 검색어=''>영화상회</기관>를 운영하는 <인명 검색='0' 검색어=''>차인성</인명>이 맡고 있지만, 다른 시장과 달리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청과물시장</지명>은 야채 회장, 과일 회장 등 품목별 회장을 따로 두고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자유시장'>자유시장</지명>보다 작지만 규모는 매우 큰 시장이다.</문단> <문단>3. <지명 검색='1' 검색어='한신시장'>한신시장</지명></문단> <문단>1986년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본동'>소사본3동 277-12번지</지명> 일대 <지명 검색='0' 검색어=''>한신아파트</지명> 담 자락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현재 노점을 포함 104개로 2006년에 인정 시장이 되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 권역 내에 있어 사라질 예정인데, 현재 환경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햇빛과 비 가리개 공사를 작년부터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고증자인 회장 <인명 검색='0' 검색어=''>신준식</인명>(남, 51세)은 환경 개선 사업 공사는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기 전부터 하던 공사라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했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인명 검색='0' 검색어=''>박군선</인명>이다. </문단> <문단>4.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문단> <문단>1980년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본동'>소사본2동 76-78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되었다. 1978년 무렵부터 이 골목에 쌀집이나 이발소 등 5개 정도의 상점이 들어서고 몇몇 사람들이 노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다. 초창기에는 이름도 없이 그저 <지명 검색='0' 검색어=''>골목시장</지명> 또는 <지명 검색='0' 검색어=''>도깨비시장</지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노인들은 <지명 검색='0' 검색어=''>골목시장</지명>이라 부른다고 한다.</문단> <문단>고증을 한 <인명 검색='0' 검색어=''>임성준</인명>(여, 56세)은 <기관 검색='0' 검색어=''>소사가방</기관>을 하는 사람으로 고향이 <지명 검색='0' 검색어=''>영종도</지명>인데, 초창기부터 장사를 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시장 가운데 길이 아주 큰 길이어서 <지명 검색='1' 검색어='윗소사'>윗소사</지명>(<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본동'>소사본1동</지명>) 사람들이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역'>부천역</지명>을 가거나 버스를 타기 위해 이 길로 다녀 시장통은 늘 사람들로 북적댔다고 한다. 상권은 그때보다 훨씬 더 못하지만 잘 발달된 시장이긴 하다.</문단> <문단>재미난 것은 주위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을 물어 보면 잘 모르는데,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이 어디냐고 하면 대번에 어디라고 위치를 알려준다. <인명 검색='0' 검색어=''>임성준</인명>에게 물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자기네들도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으로 하려다가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으로 명칭을 정했다고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이 시작되면 없어질 시장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이 더 유명한 이유가 있다. 현재 1시장 입구 쪽인 14층 <지명 검색='0' 검색어=''>세영주상복합 타워</지명> 자리에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먼저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이라고 허가를 내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명 검색='0' 검색어=''>대보시장</지명>을 더 잘 안다고 한다. 그때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종합시장'>소사종합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골목시장</지명> 또는 <지명 검색='0' 검색어=''>도깨비시장</지명>으로 불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현 회장은 <인명 검색='0' 검색어=''>손원식</인명>이다.</문단> <문단>5.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문단> <문단>1987년 <지명 검색='0' 검색어=''>괴안동 40-11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되었다. 점포는 전에 90여 개에서 75개 정도로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은 그리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조공아파트</지명> 담 자락 골목을 끼고 노점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3~4년 장사를 하다가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소사'>소사</지명> 재개발이 시작되면 역시 사라질 시장이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은 햇빛과 비 가리개 설치를 하지 않은 전형적인 재래 시장의 모습이다. 골목길에 파라솔을 펴 놓고 장사를 하는 풍경을 보면 향수를 느낄 정도로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조공시장'>조공시장</지명> 회장은 <지명 검색='0' 검색어=''>엄마닭집</지명>을 운영하는 <인명 검색='0' 검색어=''>한경일</인명>이다.</문단> <문단>6.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남부시장'>역곡남부시장</지명></문단> <문단>1983년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역곡3동 107번지</지명> 일대에 건립된 시장으로 현재 점포는 노점을 포함해서 100여 개인데, 그런대로 활성화된 시장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역곡</지명> <지명 검색='0' 검색어=''>남부역</지명> 길 건너 언덕에 세로로 형성된 시장이다. 이 언덕 골목길에서 몇몇 노점상이 장사를 하다가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으로 소사재개발이 시작되면 사라질 시장이다. 2010년 현재 상인회장은<인명 검색='0' 검색어=''>황재천</인명>이다. </문단></문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