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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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仁點 |
영어음역 | Hwang Injeom |
이칭/별칭 | 경락(景樂),염와(恬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방기철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부마.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경락(景樂), 자는 염와(恬窩).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지낸 황재(黃梓)이다. 화유옹주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황인점은 1751년 영조의 딸인 화유옹주(和柔翁主)와 혼인하여 창성위(昌城尉)가 되었다.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지내고, 정조 대인 1776년부터 1793년까지 진하겸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 1회, 동지겸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3회, 동지정사(冬至正使) 1회, 성절겸사은정사(聖節兼謝恩正使) 1회 등 주로 대청 외교 일선에서 활약하여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청의 수도인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784년 청으로의 사행 당시 사행원인 이승훈(李承薰)이 『천주실의』 등 천주교 관계 서적을 가져온 것에 대한 책임으로,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 때 삭직되기도 했다. 송설체(宋雪體)와 전자(篆字)·팔분체(八分體) 등 글씨에 매우 능하여 많은 금석문을 작성하였다. 주자(朱子)의 글을 좋아했다고 한다. 저술에 『영조 애책문(哀冊文)』이 있다.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작동 산28-6번지에 있으며 육군 9175부대 철책선과 연접해 있다. 원래 경기도 부천시 작동 126번지에 있었는데, 1998년 춘의로가 개설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때 출토된 유물들은 덕수궁 내 궁중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황인점 묘소는 화유옹주와 합장된 상태이며, 황인점·화유옹주의 묘소임을 알려주는 묘비나 석물은 남아 있지 않다.
황인기(黃仁紀)가 「도위공행장(都尉公行狀)」을 저술하였고, 서매수(徐邁修)가 묘지명을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