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곡중학교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들. 감배들은 감배산 아래에 있는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벌응절리에 속하는 춘교평(春橋坪)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춘교들이라고 하였다가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감배들로 고쳐 부른 것으로 보인다. ‘감배’는 어원이 ‘배’로, ‘’은 고대에서 지신(地神)을 뜻하는 족장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배(倍)’는 ‘’에서 나온 말로 밝...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산. 언어학적으로 감배는 곰에서 온 것으로 본다. 곰은 신령, 왕, 으뜸, 큼, 뒤 등의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는 일종의 접미사로 ‘-들’의 뜻이다. 따라서 곰는 신령들을 의미한다. 『부천시사』에서는 배가 ‘’에서 나온 말로, 밝은 것을 의미하고 태양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배로 변한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교육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단체. 부천시에 있는 교육 기관은 2010년 현재 유치원 113개, 초등학교 62개 교, 중학교 32개 교, 고등학교 27개 교, 특수학교 4개 교, 평생 교육 시설 5개 교로 총 193,854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또한 4년제 대학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서울디지털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가 있으며, 2년제 대학은 부...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박대남(朴大男)의 묘. 박대남의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자는 웅언(雄彦)이다. 『죽산박씨족보(竹山朴氏族譜)』에 따르면 안성군수(安城郡守)를 지냈다고 한다. 생몰년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다만 『선조실록(宣祖實錄)』과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의 옥사와 관련한 기록에 수문장을 지낸 박대남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를 토대...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인물 박철정의 묘. 박철정(朴鐵貞)의 본관은 죽산(竹山)으로 연산군 때 추국(推鞫)을 당하여 부평으로 낙향한 이후 죽산박씨(竹山朴氏) 입향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인은 숙인(淑人) 완산이씨(完山李氏)와 숙인(淑人)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역곡중학교 뒤편의 죽산박씨 묘역에 있다. 묘는 2기로 1기는 박철정의 묘이고, 다른 1기는 부인 숙...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에는 옥산면에 속하는 벌응절리(伐應節里)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면 ‘치고 응하는 마을’, 즉 싸움에 대응해서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벌응절리 뒷산을 둔대라고 하는 데, 이 둔대를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고 해석을 해서 군대가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벌응절리에서 ‘벌(伐)’은 개간되지...
-
경기도 부천시 상1동 복사골문화센터에서 매년 12월 열리는 청소년 문학 발표회. 부천시에서는 매년 12월 복사골문학회와 한국작가협회 부천지부가 주관하는 송년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는데, 2001년부터 이 행사에서 그 해 부천청소년문학상 공모에서 입상한 청소년들을 초청하여 직접 그들의 문학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로 하여 생긴 것이 부천청소년문학캠프이다. 부천청소년문학캠프...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강인한 체력과 건전한 정신을 지닌 조화롭고 협동적인 건강인, 전통 예절을 바탕으로 인간을 존중하며 규범을 행동화하는 도덕인, 학식을 쌓고 자신의 진로를 창의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창조인, 근면·협동 정신으로 민주 사회 발전에 스스로 기여하는 자주인, 자유·민주·안보 정신으로 통일 조국 건설에 기여하는 애국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둔대골 산수약수터에서 발원하여 괴안동과 광명시를 거쳐 안양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벌응천이라고도 하나, 이는 벌응절리에서 따온 것이므로 원래 이름인 용문내로 불러야 한다. 용문내의 용은 수신을 의미하는 용을 가리키고, 문은 물을 가리킨다. 오정의 사문, 사래이의 물문개라는 땅 이름에서 문이 공통적으로 쓰였는데 바로 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신이 사는 하천이...
-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1895년(고종 32) 칙령 제136호 「성균관 관제」와 학부령 제2호 「성균관 경학과 규칙」에 의하여 성균관을 근대적 학교로 개편하였으나 성균관의 운영은 옛 모습 그대로였고, 지방의 교육을 담당했던 향교를 대신하여 중학교를 설치하려 하였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부천 지역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