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군
-
1899년 5월 읍지상송령에 따라 부평군(富平郡)에서 작성한 읍지. 목차는 채색지도(彩色地圖)‚ 건치연혁(建置沿革)‚ 관직(官職)‚ 성씨(姓氏)‚ 풍속(風俗)‚ 형승(形勝)‚ 산천(山川), 방리(坊里)‚ 학교(學校)‚ 단묘(壇廟)‚ 공해(公廨)‚ 역원(驛院)‚ 불우(佛宇)‚ 교량(橋梁)‚ 시장(市場)‚ 제언(堤堰)‚ 전부(田賦)‚ 해세(海稅)‚ 조적(糶糴)‚ 봉급경비(俸給經費)‚...
-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자연 마을. ‘가운데당아래’는 당아래 길을 경계로 해서 생긴 마을명이다. ‘당아래’는 ‘당재 너머에 있는 아랫마을’이라는 뜻으로 ‘당아래’라고 했으며, ‘당아래’는 ‘양지말, 가운데당아래, 너머당아래’라고 하는 3개의 촌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당아래’를 혹 ‘당하리’라고 표기한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가운데당아래는 당아래 고갯길을 사...
-
일제강점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행정구역. 1914년 4월 1일 부평군 지역의 석천면(石川面), 옥산면(玉山面), 수탄면(水呑面)을 통폐합하여 부천군 계남면으로 하였는데, 계남은 1914년에 처음 생긴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미 조선시대인 1700년대부터 현재의 부천 지역에서 ‘계남’이란 이름을 써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구령(李龜齡)[1679~?]은 자신의 문집인 『계남...
-
고려시대 부천의 옛 이름. 계양은 계수나무를 뜻하는 ‘계’자와 회양목을 뜻하는 ‘양’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계양이라는 지명은 주부토, 장제, 수주, 안남에 이어 다섯 번째로 쓰인 부천 지역의 행정지명이다. 계양이란 지명은 고려시대에 부천 지역이 계양도호부가 되면서 처음 쓰였으나, 지금은 인천광역시 계양구와 계양산에서 명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 과거 계양으로 불렸던 부천시...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교통 요지인 역곡역 남부 지역에 있는 전형적인 원도심 지역이다. 괴안동 행정 복지 센터가 위치해 범박동과 역곡 3동의 복지와 행정 업무도 책임지고 있다. 괴안동은 괴안리 또는 고얀리로 불렸다. 원래 고얀리는 지금의 부천 동여자 중학교 동편 고갯길 너머에 있었는데 윗 고얀리와 가운데 고얀리, 아랫 고얀리로 나눈다. 윗 고얀리는 남원 양씨(南...
-
경기도 부천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1. 고려 시대 1914년에 부천이라는 행정명이 탄생하기 전까지 부천 지역의 교육은 부평(富平)[조선 시대에는 부평 도호부(富平 都護府)로 불리다 대한 제국 시기 부평군으로 불림]이 관할하였다. 고려 시대 부천 지역에는 향교가 없었으나 이후 부평 향교(富平 鄕校) 가 부천 지역...
-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교육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단체. 부천시에 있는 교육 기관은 2010년 현재 유치원 113개, 초등학교 62개 교, 중학교 32개 교, 고등학교 27개 교, 특수학교 4개 교, 평생 교육 시설 5개 교로 총 193,854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또한 4년제 대학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서울디지털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가 있으며, 2년제 대학은 부...
-
조선 말기 부천 지역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칠정(七政). 1865년(고종 2) 1월 24일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군에서 아버지 남계길과 어머니 밀양손씨 사이에서 태어나 작은아버지 남희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902년 대한제국의 빈민구제 의료기관인 광제원의 사무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직하고 전라북도 옥구로 내려가 의병활동을...
-
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에는 내촌리(內村里)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내동이 삼정이나 약대, 도당에 비해 뒤늦게 생긴 동네임을 보여준다. 우리말로 안말이지만 동네 이름이 내촌주막과 육형제마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촌의 옛 말은 안말·안약대이다. 안쪽에 위치한 약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내촌주막은 땅 이름으로 보아 부평으로 가는 대장 한다리, 약대...
-
“일제 때 한강수리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도시개발에 힘이 실렸죠. 경인선과 경인국도가 뚫리면서 마을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깊은구지는 부천군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계속하여 부평에 속해서 발전해 왔다. 부평도호부 이후의 부평군 때에는 석천면이라고 표기되었다. 석천면은 돌내면의 한자식 표기로, 돌내는 ‘냇물 돌아 드는 곳’을 의미하는 지명이었다. 원래는 깊은구지는...
-
1914년부터 1973년까지 경기도 부천을 관할한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구한국시기 부·군·면의 행정구역을 정리하는 과정으로서 1914년 3월 1일 부·군을 폐합하고, 4월 1일에는 면의 폐합을 단행하였다.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기준으로 부(府)는 조계지를 포함하여 시세시행(市勢施行) 지역과 동일하게 하였다. 군은 면적 약 40방리(方里)에 인구 1만 명 정도, 면은 면적 약...
-
경기도 서부에 있는 시. 부천시는 서울특별시의 위성 도시로서 동쪽과 북쪽은 서울특별시, 서쪽은 인천광역시, 남쪽은 경기도 시흥시와 각각 접한다. 2016년 9월 현재 인구는 33만 50가구 84만 9475명이며, 행정 구역은 36개 동, 688개 통, 4,943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천시청은 길주로 210[중동 1156]에 있다. 부천시의 자연 환경을 살펴보면, 기반암은 주...
-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는 부천 지역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 기관. 부천시청은 부천시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서 설립된 행정 기관이다. 이를 위해 하부 행정 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고,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부천시는 삼국 시대에는 주부토군(主夫吐郡), 남북국 시대에는 장제군(長堤郡)으로 불렸고 고려 시대에는 수주(樹州), 안...
-
고려시대·조선시대 부천 지역의 옛 이름. 1310년(충선왕 2)에 부평부(富平府)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다. 원래는 황무지였으나 농경지를 개척하여 넓은 곡창지가 되고 수확량이 많았으므로 ‘부할 부(富)’자와 ‘넓은 평(平)’자를 써서 부평이라 하였다. 원래 부평은 현재의 계산동이 중심지였으나 부평역이 생기면서 중심지가 옮겨져 부평역 주변과 시장 지역을 부평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1895년 경기도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1895년 6월 18일 갑오개혁 때 단행된 지방 행정제도에 따라 484년간 유지되어온 팔도제를 폐지하여 23부로 개편하고, 종래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일률적으로 군(郡)으로 폐합하였다. 즉 전국을 23부로 나누고 337개의 군(郡)을 부(府)에 예속시킨 것이다. 23부에는 관찰사를, 군에는 군수를 두어 감독하게...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논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다. 홍수 때 산에서 마을과 논까지 모래가 많이 밀려 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사래이라 하였는데 이처럼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전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곳이었다. 또한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논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다. 홍수 때 산에서 마을과 논까지 모래가 많이 밀려 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사래이라 하였는데 이처럼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전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곳이었다. 또한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논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다. 홍수 때 산에서 마을과 논까지 모래가 많이 밀려 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사래이라 하였는데 이처럼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전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곳이었다. 또한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법정동으로서 상동은 행정동인 상동, 상 1동, 상 2동, 상 3동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내역 및 중동역 중심으로 역세권이 형성되었고, 신구 도시의 기능이 병존하며 문화 및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고 있다.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
경기도 부천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광의로는 생산을 제외한 유통 및 소비 부문의 광범위한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협의로는 소비자가 추구하는 각종 재화 및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능만으로 축소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상업 부문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소비자의 욕구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부천의 경우도 그러하다. 부천의 이와 같은...
-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동일 혈연 집단. 성씨는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부호로서, 처음 씨족의 정체성을 외부에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즉 부족국가로의 발전적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나름대로 다른 씨족과 구분 짓기 위하여 강·산·골짜기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던 것이 성씨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삼국이 성립되기 이전 씨족사회에서는...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심곡 본동의 ‘심곡(深谷)’은 토박이말로 깊은 구지를 나타낸다. 일대가 다른 지역에 비해 골이 깊다고 하여 깊은 구지[深谷]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골짜기가 아닌 허허벌판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한자의 의미와는 다르다. 깊은 구지는 부천군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부평에 속하여 발전해 왔다. 부평 도호부(富平都護府) 이후의 부평군 때에는 석천면...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심곡본동의 ‘심곡(深谷)’은 토박이말로 깊은 구지를 나타낸다. 일대가 다른 지역에 비해 골이 깊다고 하여 깊은 구지[深谷]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골짜기가 아닌 허허벌판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한자의 의미와는 다르다. 깊은 구지는 부천군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부평에 속하여 발전해 왔다. 부평 도호부(富平都護府) 이후의 부평군 때에...
-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약사가 약을 조제하거나 기타 보건 제품을 파는 곳. 약국은 1차 보건 의료 영역을 포함한 지역 주민의 다양한 보건 의료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보건 의료 기관이다. 약국은 약사의 직능을 실천하는 장소이다. 단순히 의약품의 물류 유통을 담당하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약품의 조제와 투약, 약력 관리, 복약 지도와 의약품 정보 전달, 일반 의약품 상담·판매...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역곡2동은 부평군 때에 옥산면 벌응절리(伐應節里) 지역이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이웃 장정과 노비를 이끌고 둔대산[원미산]에서 왜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고 주력 부대를 40리까지 퇴각시켰다고 한다. 이때부터 역곡동은 적을 맞이하여 물리쳤기 때문에 ‘칠 벌(伐)’ 자와 ‘응대할 응(應)’ 자를 써서 벌응절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역...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부천시의 역사. 부천시는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에 인접해 있다. 동쪽과 북쪽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구로구와 닿고, 남쪽은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와 경계하며, 서남쪽은 인천광역시 계양구·부평구 및 남동구와 접한다. 한강 하류에 인접하여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 이후 지금...
-
경기도 부천시의 도시화 및 산업화, 교통 및 관광, 행정 구역, 인구 등의 인문 지리적 요소. 부천시는 대도시인 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동서남북으로 교통이 편리해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특히 중동 신시가지 건설 이후 전입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등 매년 20% 내외의 인구가 활발하게 이동하고 있다. 부천은 ‘주부토(主夫吐)’, ‘장제(長提)’, ‘수주(...
-
1895년 갑오개혁 때 설치되어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부천 지역이 포함된 지방 행정구역.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 6월 18일 단행된 지방 행정제도는 484년간 유지되어온 전국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개편하는 내용이었다. 즉 전국을 23부로 나누고, 337개의 군(郡)을 부(府)에 예속시킨 것이다. 23부에는 관찰사를, 군에는 군수를 두어 감독하게 하였고, 군수는 관...
-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 지역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기는 1910년대의 무단통치기와 1920년대의 문화정치기로 불리는 민족분열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파쇼통치기 등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부천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을...
-
통일신라시대 부천 지역에 설치한 지방행정구역. 742년 신라 효성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경덕왕은 진골 귀족의 세력을 제압하고 미약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화정책을 실시하였다. 747년에는 중시를 시중(侍中)으로 변경하고, 국학에 제업박사(諸業博士)와 조교를 두어 유학 교육에도 힘쓰는 한편, 748년에는 정찰(貞察)을 두어 백관을 규찰하게 하여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전제왕권 체제를...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시 역사. 부천은 일제강점기에 부평과 인천 지역의 일부를 병합하여 만든 고을이다. 따라서 부천의 조선시대사는 곧 부평사이다. 현재의 부천 지역은 조선시대 부평 영역의 동쪽과 남쪽 지역이었다. 주화곶(注火串)·상오정(上梧亭)·하오정(下梧亭)·석천(石川)·옥산(玉山) 등 5개 면이 이에 해당된다. 1413년(태종 13...
-
고대 부천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지방행정구역. 문헌에서 전하는 부천 지역 최초의 지명인 주부토는 고구려식 지명이다. 이 지역이 고구려의 영역에 포함되었던 시기는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인 한성을 함락시키고 한강 일대를 차지하였던 때로 보인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이 지역은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인근 지역인 인천의 옛 지명...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춘의동은 원래 표절리(表節里)라고 불렀다. 표절리에 대한 유래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예전에 춘의로 입구에 풍산 홍씨(豊山洪氏)가 받은 정려문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정려문을 지날 때마다 홍씨의 절개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의를 표한다는 표(表)와 절개를 뜻하는 절(節)을 마을 이름에 넣어 표절리로 불렀다. 표...
-
경기도 부천시에서 단위 행정 기관의 권한이 미치는 일정한 범위의 구역. 2016년 6월 현재 부천시의 등록 내국인은 32만 8761가구 84만 8512명이다. 이는 가구당 2.58명에 해당하며, 인구 밀도는 ㎢당 1만 6270명이다. 전체 면적은 53.4㎢로 경기도의 0.5%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 전체의 31.2%인 16.68㎢가 개발 제한 구역이다. 행정 구역은 36동 688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