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주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모든 양씨는 제주도의 신 양을나를 단일 시조로 하는 동계 혈족으로, 처음의 성씨는 양(良)이란 한자로 표기되었다. 그러다가 신라 태종무열왕[654~660] 때 제주의 왕족인 양탕이 신라에 들어가 광변사가 되면서 양성(梁姓)을 하사받음으로써 두 가지 표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즉 제주도의 토박이 양씨인 제양(濟梁...
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조선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치간(稺簡). 아버지는 양종현(梁宗賢)이나, 통덕랑 양방현(梁邦賢)의 양자로 들어갔다. 동생은 양성눌(梁性訥)이다. 양성묵은 1760년(영조 36)에 태어났으며, 1795년(정조 19) 실시된 식년시에서 진사 1등 1인으로 합격하였다....
조선시대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남원. 시조 양을나(梁乙那)의 27세손이다. 양주영(梁柱永)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果)를 지냈으며, 경기도 부천으로 낙향하였다....
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언신(彦信). 양성지(梁誠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첨정(僉正) 양사제(梁思齊)이다. 양지(梁誌)는 음보(蔭補: 과거를 보지 않고 관직에 오르는 제도)로 관직에 나아가 적성현감을 거쳐 삭녕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삭녕[현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에 와 있던 경기도관찰사 심대(沈岱)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홍언수(洪彦秀)이다. 홍계남(洪季男)은 1590년(선조 23) 통신사 군관으로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1591년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와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활동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