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
고려 후기 계양부사를 지낸 이규보가 경기도 부천 지역의 현상을 기록한 기문. 「망해지」는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24에 실려 있다. 『동국이상국집』은 전권(前卷) 41권, 후집(後集) 12권의 총 5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권은 1241년(고종 28) 8월, 후집은 같은 해 12월에 아들 이함(李涵)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
고려시대 부천의 옛 이름. 계양은 계수나무를 뜻하는 ‘계’자와 회양목을 뜻하는 ‘양’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계양이라는 지명은 주부토, 장제, 수주, 안남에 이어 다섯 번째로 쓰인 부천 지역의 행정지명이다. 계양이란 지명은 고려시대에 부천 지역이 계양도호부가 되면서 처음 쓰였으나, 지금은 인천광역시 계양구와 계양산에서 명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 과거 계양으로 불렸던 부천시...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 지역 역사.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940년(태조 23) 전국에 있는 지방 군현의 지명을 바꿨다. 이때 부천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이때 수주에도 단련사(團練使)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115...
-
고려 후기 안남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창원(昌原). 공유는 『고려사』에 삼별초의 난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 때 장군으로 출전하였으나, 7일간이나 공격을 당한 금성(錦城)을 구하지 않았다 하여 김방경(金方慶)의 탄핵으로 1271년 안세정(安世貞)과 함께 삭직되었다.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안남도호부사가 되었으나, 처와 함께 삼별초에게 붙...
-
고려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곽득성은 1232년(고종 19) 안남판관을 지냈다. 『고려사』에 최씨 정권의 강화 천도 시기에 안남판관(安南判官)으로 재직하면서, 백악(白岳)[현 경기도 임진] 일대에 출몰하여 양민을 괴롭히는 도적떼 20여 명을 불러서 타일러 부역에 종사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
장순용을 시조로 하고 장몽기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덕수장씨는 원나라 필도치(문에 관한 사무를 주관하던 몽고의 관직명)를 지낸 장경(長卿)의 아들 장순용을 시조로 한다. 『고려사(高麗史)』, 『덕수장씨대동보』 등에 의하면 장순용은 본래 아랍계 사람이었다. 제국공주[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 고려 충렬왕비]를 따라 고려에 귀화하여 첨의부참리금자광록대부문하찬성사...
-
고려 후기 부천의 옛 이름. 안남(安南)은 계양산의 다른 이름인 안남산(安南山)에서 유래되었다. 안남은 고구려 때 주부토(主夫吐), 통일신라시대에 장제(長堤), 고려 전기 때 수주(樹州)에 이어 네 번째로 쓰인 부평의 행정 지명이다. 1150년(의종 4) 왕은 수주를 폐하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안남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계양구 목상동과 서구 시천동, 그리고 장모루...
-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이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본래 성은 김이다. 성주 김선평[신 안동김씨 시조]·장정필[안동장씨 시조]과 의논하여, 병사를 모아 왕건을 도와 고창군 병산[지금의 안동군 와룡면 서지리]에서 견훤의 8천 대병을 함몰시켰다. 고려 태조가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했다(能炳機達權)"라...
-
고려 후기 경기도 부천 지역이 포함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의하면 남쪽에는 양광도(楊廣道)·경상도(慶尙道)·전라도(全羅道)·서해도(西海道)·교주도(交州道) 등 5도, 북쪽에는 서북계(西北界)와 동북계(東北界)의 양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고려의 5도 양계라는 지방구획은 남쪽의 일반 행정구역과 북쪽의 군사 행정구역의 이원적 구성이었던 셈이다. 양광도 관할...
-
고려 말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출몰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일본 해적집단. 고려시대에 왜구는 일본의 이키[壹岐]·쓰시마[對馬]·기타큐슈[北九州]·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등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왜구는 충정왕·공민왕·우왕에 이르는 40여 년간 100~500척의 선단으로 활동 무대를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의 연안까지 넓혔으며, 때로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노략질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