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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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에서 전승되는 김성우 장군 이야기. 「김성우 장군」에서 김성우(金成雨)[1327~1392]는 보령 땅에서 왜구를 토벌한 인물이다. 충청남도 보령에는 김성우 장군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전승되고 있는데,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었던 보령의 영웅으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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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광제의 시문집. 『석람고(石藍考)』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김광제(金光濟)[1866~1920]가 어린 시절부터 지은 시를 모아서 엮은 시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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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김광제의 시문집. 『석람시고(石藍詩稿)』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김광제(金光濟)[1866~1920]가 1884년부터 1895년까지 지은 시를 모아 엮은 시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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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유학자인 백이정의 실기. 『이재선생실기(彝齋先生實紀)』는 고려 후기 유학자로 성리학의 도입에 힘쓴 백이정(白頣正)[1247~1323]의 생애와 학문, 행적 등을 기록한 실기(實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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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서 현대에 걸쳐 활동한 한학자 백창균의 문집. 『장옥난고(藏玉亂稿)』는 한학자 백창균(白彰均)[1912~1991]이 생존 시의 저술을 모아 발간하였고, 2005년 국역으로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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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백사형의 시문집. 『청계유고(淸溪遺稿)』는 조선 후기 문신 백사형(白師亨)[1768~1808]의 시문집으로, 정식으로 발간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전해진다. 백사형의 성리학 세계와 주변 지역 유학자들의 동향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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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이자 항일 투사인 백낙관의 시문집. 『추강집(秋江集)』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항일 투사인 백낙관(白樂寬)[1846~1883]의 저술을 모아 1958년에 족손(族孫) 백창균(白彰均)[1912~1991]이 주도하여 3권 1책으로 간행한 시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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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16세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및 동방정교회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성립한 종교이다. 전통적인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교리와 제도에 항의한다[Protest]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말한 데서 연유한다. 개신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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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56대 왕인 경순왕 김부를 시조로 하고 김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경주 김씨는 경순왕 김부(金傅)[?~979]이고, 중시조는 고려 시대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 김인관(金仁琯)[?~?]이다. 김한(金漢)[?~1455]부터 충청남도 보령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입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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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 시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의 지방 제도 정비는 성종(成宗)[재위: 981~997] 초부터 시작되어 현종(顯宗)[재위: 1010~1031] 대에 이르러 일단락되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을 5도 4도호부 8목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을 두었다. 보령 지역에는 보령현과 남포현의 2개 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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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지하 및 지표상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고체·액체·기체 상태의 천연광물을 채굴·선광·제련하는 산업. 보령 지역에서 광업이 성황을 이루던 1912년부터 1983년까지 설정된 광업권 현황을 살펴보면, 석탄 관련 광업권이 전체 265건 중 123건으로 46.4%를 차지하였다. 다음은 금·은·아연광 45건[17.0%], 석면 25건[9.4%], 규석 24건[9.1%], 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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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조선 후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연혁. 조선 시대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향교와 서원이었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에 설치된 관학 교육기관이었으며,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도 보령향교·남포향교·오천향교 등이 확인되므로, 조선 시대 관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원으로는 화암서원·신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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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도 보령 남포현감으로 부임하여 신안사 창건을 발의한 문인 관료. 권상신[1759~1824]은 충청도 공주 출신으로 문과 장원 급제 후 관직 생활을 하였는데, 1796년(정조 20) 보령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부임하여 주자(朱子)[1130~1200]를 제향(祭享)하는 영당(影堂)의 건립을 발의하여 신안사(新安祠)가 건립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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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보령 지역 근대 장시의 변천과 중심지 이동.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1차산업[농업, 어업, 임업] 위주의 자급자족적 경제가 주를 이루었다. 국토의 70%가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로망이 열악한 관계로 상공업의 발달이 어려웠고, 일부 고을의 관아 또는 지방 거점 고을에만 시장이 열려 물물교환 행위만이 간간히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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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의의. 기독교는 영어로 크리스트교(Christian religion)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믿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세계 인구 약 70억 명 중 모든 교파를 합쳐 24억 명의 신자를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로마 후기에 그리스정교회와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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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명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金首露)[42-199]를 시조로 한다. 이후 금관가야가 신라에게 멸망한 뒤에는 금관가야의 왕족들이 신라의 진골(眞骨)로 유입되었다. 삼국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대각간(大角干) 김유신(金庾信)[595-673]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김해로 하는 성씨이다. 김해 김씨는 경파(京派),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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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있었던 방어용 군사 기지. 남포진(藍浦鎭)은 고려 시대 우왕(禑王)[재위: 1374~1388] 때 왜구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남포현(藍浦縣)을 정비하고 방어하기 위해 1390년(공양왕 2)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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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의 명칭. 남포현(藍浦縣)은 신라 때 개칭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서림군의 영현(領縣)이었다. 1018년(현종 9)에 가림현에 이속시켰다가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 진성(鎭城)을 설치하였다. 대몽 항 쟁기에는 삼별초의 공격으로 감무가 잡혀갔으며,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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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의 대천천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돌다리. 조선 시대 남포와 보령[지금의 주포면 일대]을 연결하는 도로 중 대천천의 하류에 놓인 돌다리이다. 대천한내돌다리는 17세기에 작성된 기록물에 석교(石橋)로 적혀 있어 늦어도 1700년대에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던 돌다리는 일제 강점기 자동차의 운행으로 새로운 목교(木橋)가 설치되어 대천한내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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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웅천읍의 돌 산업과 예술. 웅천읍은 오석의 고장이며 대한민국 석재산업의 산실로서 석재산업의 기반이 되어 왔다. 석재상이 많아 석재단지를 이루고 있으며 단단한 검은색의 돌인 남포오석은 주로 비석을 만들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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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보령 지역의 보령현과 남포현에서 동학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혁명. 충청남도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내포’라고 불리는 서남부 지역, 천안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 보령을 비롯하여 서천, 부여, 청양 일대를 아우르는 서남부 지역, 논산과 금산을 포괄하는 동남부 지역, 우금치 전투가 일어난 공주 지역으로 나뉘어 활동상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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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미산면, 성주면과 부여군 외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 보령시는 차령산맥의 말단부가 서해와 만나는 곳으로 서해안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해안에 이르기까지 높은 산맥이 뻗어 있는 지역이다. 태백산맥이 오대산 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은 차령산맥은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부와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통과할 때에는 산맥의 높이가 낮지만, 보령시에 이르러 높이 600~7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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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보령에서 성주사를 중창하고,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창한 승려. 무염(無染)[800~888]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신라 말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호는 무량(無量), 또는 무주(無住), 법명은 무염(無染)이다. 822년에 당나라에 가서 불광사(佛光寺)의 여만(如滿)을 찾아가 선법(禪法)을 배우고, 마곡산(麻谷山) 보철(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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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와 동대동을 연결하는 고개. 고개는 일반적으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를 통해 사람과 물자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고개의 대부분은 고개를 대체하는 도로, 교량,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고유의 교통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바래기재를 포함한 보령시 대부분의 고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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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일원에 있었던 지명인 남포현의 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 문신. 박동선(朴東善)[1562~1640]의 자는 자수(子粹), 호는 서포(西浦)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포현감으로 백성을 보호하였고,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에는 왕손을 호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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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박일복(朴一福)[1882~1909]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907년 신도여(申道汝) 의병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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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보령 출신의 문신. 백문절(白文節)[?~1282]의 자는 빈연(彬然), 호는 담암(淡巖)이다. 남포(藍浦)[현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읍 일대] 출신으로 왕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굽힘이 없던, 지조와 절개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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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도 보령 지역 출신의 성리학자. 백이정(白頤正)[1247~1323]은 고려 후기의 학자로 안향(安珦)[1243~1306]으로부터 성리학을 배웠다. 그 후 10여 년간 중국 연경에 머물며 성리학을 연구하고, 고려에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백이정의 학통은 이제현(李齊賢)[1287~1367], 이색(李穡)[1328~1396], 권근(權近)[1352~1409], 변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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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에 있는 고려 후기 유학자인 백이정의 신도비. 백이정 신도비(白頤正 神道碑)는 고려 후기 유학자 백이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신도비문은 김이양(金履陽)[1755~1845]이 짓고, 고동(古東) 이익회(李翊會)[1767~1843]가 글씨를 쓰고, 서준보(徐俊輔)[1770~1856]가 전액(篆額)을 썼다. 신도비문은 「이재선생실기(彝齋先生實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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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남포 백씨의 시조인 고려 후기의 문신. 백임지(白任至)[1130~1191]는 남포 백씨(藍浦 白氏)의 시조로, 고려 후기 무신정권기에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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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일제 강점기와 8·15광복 이후 산업화 시대까지 존재했던 광업의 흥망성쇄. 조선 시대 광업은 대체로 억제되었지만, 1890년대 들어 외국자본에 의해 금광을 위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의 경우 1900년 일본인 아사노 소이치로[淺野總一郞]가 대한제국 궁내부와 교섭하여 직산금광 개발을 허가받으면서 광산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충청남도의 금 생산은 직산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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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오석으로 벼루를 만드는 기술. 보령남포벼루는 보령시 남포면에 있는 오석(烏石)으로 만든 벼루로, 남포 지방에서 많이 생산된다 하여 남포벼루라고 부르게 되었다. 벼루는 낙랑 때부터 제작되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고려 시대에 성리학의 발달로 벼루를 사용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이로 인해 벼루의 제작량이 늘어났고 기술도 발전하게 되어, 1961년 이후에 국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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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에 건립된 보령댐과 보령댐 수몰에 따른 수몰 지역 이주민의 삶. 1980년대 반복적인 가뭄과 홍수로 국가 차원의 물관리 대책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1987년 여름 충청남도 일대에 큰 홍수가 일어나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컸다. 이에 정부는 물관리 대책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였고, 1989년 충청남도 보령권역에 보령댐을 지을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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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궁촌동에 있는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용터미널. 최근 버스종합터미널은 일반적으로 고속버스, 시외버스 등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새로운 대단위 주거지, 고속도로 나들목, 철도역 등으로의 접근도가 모두 높은 곳에 새로이 이전하여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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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자연 지리적 및 인문 지리적 특성. 보령시는 동쪽으로 청양군, 부여군과 접하고 서쪽은 서해에 접하며, 남쪽은 서천군, 북쪽은 홍성군과 접한다. 동경 125° 57′~동경 126° 44′, 북위 36° 10′~북위 36° 31′에 자리한다. 면적은 586.56㎢이고, 2022년 11월 기준으로 인구는 9만 7188명이다. 행정구역은 1읍 10면 5동이며, 유인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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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문화 시설, 체육 시설, 환경 시설 등을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해 설립된 지방 공기업. 보령시시설관리공단은 보령 공공 하수 처리 시설 등 환경 기초 시설, 보령시 청소년수련관, 보령석탄박물관, 보령시 모란공원, 근로자종합복지관 등 공공 문화 시설, 대천해수욕장 스카이바이크, 보령종합체육관 볼링장 등 공원 체육 시설 등을 관리·운영하는 공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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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역에 설치된 고려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고려 초에 신읍현(新邑縣)을 보령현(保寧縣)으로 변경하였다. 결성군(結城郡)의 영현(領縣)이었는데, 1018년(현종 9)에 홍주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1106년(예종 원년)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보령현의 위치는 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지역이며, 치소(監務)는 보령리 구성재에 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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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두룡리에 있는 이숭인의 영정을 모신 사우. 사창사(士昌祠)는 성주 이씨(星州 李氏)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을 모신 사우(祠宇)이다. 성주 이씨는 16세기 후반 남포 지역에 입향하였는데, 어느 시점으로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지만, 이숭인의 사우를 건립하고 추모하고 있다. 이숭인은 고려 말의 학자로, 공민왕(恭愍王)[재위: 13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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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지역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백제 시대 설림군[서천]에 편제된 행정 구역의 하나로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일대에 설치되었다. 중심 치소(治所)는 웅천읍 수부리 수안마을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통일 신라기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대 남포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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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거주했던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45년간 세종부터 성종까지 6대의 왕을 섬긴 조선 전기의 대표 문신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거주하였고, 남포의 경관에 관한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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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서기(徐起)[1523~1591]는 남포 제석동[현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학자로 충청우도 최초의 서원인 공암서원(孔巖書院)[현 충현서원(忠賢書院)]을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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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석재를 이용하여 비석이나 벼루, 생활용품, 구조물 등을 만드는 사업. 보령 지역은 돌[오석, 애석, 청석]의 고장이다. ‘남포오석(藍浦烏石)’은 옛 남포현 지역인 웅천, 청라, 미산, 성주 지역에서 나는 검은빛의 사암으로 석질이 단단하고 흡수율이 낮아 잘 깨지지 않으며, 검은 광택이 나는 특징이 있어 비석 등의 재료로 사용하여 왔다. 애석(艾石)은 남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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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같은 본관을 가지고 오랫동안 세거해 온 성씨. 세거성씨(世居姓氏)란 특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세거하여 집성촌 또는 세거지를 형성하는 성씨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거에는 기원이 되는 특정한 지역에 들어오게 된 각 가문 입향조(入鄕祖)들이 있다. 다만 모든 가문이 입향조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입향조가 누구인지 알려졌다고 해도 생몰년을 모르거나 생몰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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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정리는 법률로 정하여진 리로서 지번의 기준이 되며, 법정리에는 인구와 생활권을 고려하여 1개 또는 여러 개의 행정리가 설치된다. 행정리는 20~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전통적인 촌락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리와 행정리로 구분되는 리는 우리나라에서 읍·면 지역의 하부 말단 단위로, 주로 농어촌 지역에 존재한다. 법정리로서 소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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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수부리산성(水芙里山城)은 정식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명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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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신흥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사우. 신안사(新安祠)는 주자(朱子), 백이정(白頤正)[1247~1323]을 배향(配享)하기 위해 보령시 남포면에 세운 사우(祠宇)이다. 주자, 백이정, 송시열(宋時烈)[1607~1689], 이제현(李齊賢)[1287~1367], 권상하(權尙夏)[1641~1721], 한원진(韓元震)[1682~1751] 등 6인을 배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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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미정질 화강암의 일종인 애석이 채석되는 광산. 애석은 보령의 옛 남포현 지역 해안가나 섬 지역에서 발견되는 미정질 화강암의 일종으로 쑥돌, 쑥석이라고도 부른다. 애석은 풍화작용에 강하고, 갈면 희고 푸른 쑥빛이 나와 비석, 간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애석은 흑운모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색깔이 어두우며, 예로부터 강화도, 보령 등지에서 생산되었으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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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보령은 원삼국 시대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자리했을 것으로 비정(比定)되지만 그 실체는 분명하지 못하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기(泗沘期)를 전후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됨에 따라 설림군[서천]의 영현(領縣)인 사포현과 결기군[결성]의 영현인 신촌현으로 편제되었다. 고려 시대에 양광도로 편제된 보령은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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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남포면, 미산면, 성주면, 청라면 등에 있는 흑색 사암이 산출되는 광산. 옛 남포현 지역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흑색 사암이 산출되었는데, 이를 남포석(藍浦石) 또는 오석(烏石)이라고 한다. 흑색 사암은 견고하고 잘 깨어지지 않으며, 광택이 난다는 특징이 있어 묘비석, 기념비, 상석 등으로 인기가 높다. 조선 후기 보령오석으로 만든 남포벼루는 사대부들의 필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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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남포면과 성주면의 경계에 있는 산. 보령시는 차령산맥의 말단부가 서해와 만나는 곳으로 서해안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해안에 이르기까지 높은 산맥이 뻗어 있는 지역이다. 태백산맥이 오대산 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은 차령산맥은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부와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통과할 때에는 산맥의 높이가 낮지만, 보령시에 이르러 높이 600~700m 정도로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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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잔미산에 있는 조선 후기의 봉수대. 조선 전기의 기록에는 옥미봉 봉수대가 없고,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옥미봉 봉수대가 나타난다. 옥미봉 봉수대는 18세기에 신설된 봉수대이다. 옥미봉 봉수대는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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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에 있는 백이정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 옥산사(玉山祠)는 고려 후기 유학자 이재(彝齋) 백이정(白頤正)[1247~1323]의 위패(位牌)와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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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에 있는 장항선의 철도역. 웅천역(熊川驛)은 장항선(長項線)의 보령시 구간에 있는 기차역으로 남포역과 간치역 사이에 있다. 웅천역은 1931년 설립 이래 장항선의 핵심적 역의 하나로 보령시 웅천읍과 주변 지역의 여객 및 화물 수송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서해안고속국도가 2001년에 건설되면서 무창포나들목이 웅천역에서 멀지 않은 죽청1리 및 구룡1·2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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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소도읍의 버스터미널은 일반적으로 도시 수준에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전국 주요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종합터미널과 달리 상대적으로 시설 규모가 작고, 버스 노선이 제한적이며, 고속버스 운행을 제외하고,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함께 운행되고 있다. 웅천터미널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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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승병을 이끈 승병장. 유정(惟政)[1544~1610]은 풍천 임씨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고, ‘유정(惟政)’은 법명이다. 임진왜란 중 승병을 이끌고 전공을 세우고, 전란 후 일본에 사신으로 가 조선인을 송환하였다. 유정의 선조인 임향(任珦)이 여말선초에 충청도 남포[현 보령시]에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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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유준근(柳濬根)[1860~1920]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으며, 서울에서 3·1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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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묘정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래(李來)[1362~1416]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정몽주 시해 사건에 연루되고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는 등 태종 이방원의 충직한 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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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명나라에서 귀화하여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정착한 무인. 이성룡(李成龍)[1600~1653]은 조선 후기 명에서 귀화한 무인으로 명과 후금의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명군이 패하자 조선으로 피신하여 보령에서 혼인하고 정착하였다. 이성룡의 후손들이 보령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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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보령에서 후학을 양성한 선비. 이예환(李禮煥)[1772~1837]은 조선 후기의 선비로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과거는 보지 않았다. 고향인 남포[현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서 후학을 기르고 풍속의 교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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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이조묵(李祖黙)[1792~1840]은 시서화에 능했던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창암리 남전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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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 이종국(李鍾國)[1851~1907]은 충청남도 보령군 남포면 지역 출신으로 1907년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순국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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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인 남포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무신. 이지형(李枝馨)[1608~166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남포현감(藍浦縣監)을 두 차례 연임하였다. 아들 이세선(李世選)이 남포 장수 황씨 황대명의 사위가 되었으며, 손자가 남포에 세거하는 등 보령 지역과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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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와 특성. 보령시는 충청남도 서남부에 있는 시로, 면적은 586.56㎢, 행정 구역은 1읍 10면 5동이고, 시청 소재지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산로 77[보령시 명천동]이다. 인구는 2021년 12월 말 기준 98,408명이다. 보령시는 동경 125° 57′~동경 126° 44′, 북위 36° 10′~북위 36° 31′에 있으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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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충남선 개통과 경남철도주식회사의 무창포해수욕장 개발. 대한제국기부터 계획되었던 한국의 철도는 부설 주체와 운영 방식이 노선마다 달랐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군사적, 경제적 목적에서 한반도의 철도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던 일본은 경부철도를 매수하여, 경의철도·마산철도와 함께 통감부에서 운영하게 하였다. 따라서 철도 부설은 대한제국이 일본자본주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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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장. 장석홍(張錫弘)[1875~?]은 충청남도 남포군 웅천면 광암리[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출신으로 보령 지역이 중심이 된 의병을 조직하여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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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충청남도 보령시, 서천군, 부여군, 청양군 일대의 오일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보부상 조직. 저산팔읍상무사(苧産八邑商務社)는 조선 시대 모시의 주산지인 남포·부여·홍산·임천·한산·비인·서천·정산 등 8개 군·현의 보부상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보부상 조직으로, 보상(褓商)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우사(苧産八邑商務右社)와 부상(負商)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좌사(苧産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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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충청남도 보령시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정미의병(丁未義兵)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되고 한국군이 강제 해산될 시기인 정미년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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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며 유교 문풍을 진작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한 문인. 조병덕(趙秉悳)[1800~1870]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이 있었음에도 모두 사양하고, 충청도 남포[현 보령시 미산면]에 입향하여 지역 사림들의 공론을 주도하는 산림(山林)[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숨어 지내는 선비]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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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보령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인 보령현(保寧縣)과 남포현(藍浦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보령현과 남포현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보령현은 “본래 백제의 신촌현(新村縣) 이었는데, 신라 때에 신읍(新邑)이라 고쳐 결성군(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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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조현명(趙顯命)[1690~175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연잉군(延礽君)이 왕세제(王世弟)가 되자 세제보호론을 주창하여 연잉군을 보호하였다. 영조 즉위 후에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영조의 핵심 정책인 균역법과 탕평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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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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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천주교가 조선에 널리 수용되기 시작한 18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18~19세기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천주교 교세는 크지 않았다. 보령 지역은 충청남도 일대에서 가장 늦은 1962년에 이르러서야 대천성당이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대천성당이 본당으로 설립되면서 보령 지역에서도 천주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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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 최정보(崔正甫)[1880~?]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남포면 출신으로 이소선(李小仙)[1884~?] 의병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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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보령, 홍성, 광천, 청양, 대흥, 결성 등 6개 군에 속한 보부상단이 상권을 관할하고 구호 역할을 하던 장소. 조선 후기 전국에는 1,000여 개의 5일장이 열려,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았다. 5일장을 찾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부상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조선 시대 지방 시장의 발달을 촉진시킨 사람들이다. 보부상들은 상호간의 협력 필요성 때문에 ‘상무사(商務社)’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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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었던 복식. 보령 지역의 평상복은 도심과 농어촌 지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천과 그 인접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서양식 복장을 평상복으로 입었지만, 전통적인 농어촌 지역에서는 1990년대까지 한복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평상복을 많이 입었다. 이들 지역은 조선 후기 충청도 서부의 주요 모시 생산지인 저산팔읍(苧山八邑)의 생활권으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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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풍천 임씨(豊川 任氏)는 시조인 임온(任溫)[?~?]을 시조로 하고, 임향(任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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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에 자리한 한국농어촌공사 충남지역본부 산하 기관. 한국농어촌공사 충남지역본부 보령지사는 한국농어촌공사 충남지역본부 산하 기관으로 보령시 농업용 수리 시설의 설치 및 유지 관리와 농업용수의 관개, 경지정리, 간척 사업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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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제 침략에 대항하고 국권 회복을 위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개항기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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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행정 기관 권한이 미치는 구·군, 읍·면·동·리로 구분된 지역. 행정구역은 일반적으로 시군구 등의 행정 기관의 권한이 미치는 일정한 범위의 구역을 의미하며, 개별 행정 기관의 행정구역 내역은 과거 행정구역의 변천과 현재 행정구역의 현황 파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보령시의 행정구역은 1914년 일제의 부군통폐합령(府郡統廢合令)에 의하여 과거의 보령군(保寧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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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제석리의 지석굴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라 경순왕과 관련된 깃발. 조선 후기 1830년대 남포의 지석굴마을에 살던 김국서의 꿈에 상자가 나왔는데, 이튿날 바닷가 독살에 고기잡이를 나갔다 밀물에 떠밀려온 상자 속에서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재위: 927~935]의 위패와 왕기, 그릇 등이 들어 있었는데 당집을 짓고 왕기 등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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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황재현(黃載顯)[1848~1903]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창암리 출신으로 구한말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정의를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가톨릭과 서양의 문물을 반대한 19세기 중엽 구한말의 사상 조류]을 펼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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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장수 황씨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입향조. 황즙(黃葺)[1560~1613]은 임진왜란 때 군량미 600석, 전후 복구에 철 4천 근을 수집하여 상납한 장수 황씨의 보령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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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봉화산에 있는 조선 전기 봉수대. 충청남도 보령에 속한 흥양곶 봉수대는 조선 전기 홍주(洪州)에 속한 봉수대였다.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오다가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서산-당진-면천을 거쳐 다시 제5거 중 양성(陽城)으로 전달하던 간봉(間烽)의 노선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