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서원
-
조선 후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교육 연혁.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을 거쳐 개항기 근대 학교, 광복 이후 초·중·고 학교, 6·25전쟁 이후의 교육과정, 1970년대~2000년대 시대 변화에 따른 교련 교육·농어촌 거점학교·방과후학교·주말학교 등 다양한 교육과 학교 형태가 운영되었다. 2019년 3월 기준 유치원 60개 원...
-
충청남도 아산시에 위치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관 및 단체. 우리나라 교육은 1945년 광복 이후 국민 사이의 강렬한 교육열과 정부 차원의 행정력이 전국에 획일적으로 미치면서 전개되어 왔다. 그리고 정부 수립과 함께 교육 팽창 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아산 지역의 교육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특히 아산 지역은 교육열 증대와 현대적 가...
-
개항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1863년(철종 14) 고종이 즉위한 뒤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서구 열강의 침략 가능성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왕권 강화책을 추진하였다. 양반 유생층의 지역적 기반인 서원 철폐가 대표적이었다. 이로 인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도 도산서원(道山書院), 인산서원(仁山書院),...
-
조선 전기 기묘사화 때 충청남도 아산으로 유배되었으며, 인산서원에 제향되었던 문신. 기준(奇遵)[1492~1521]은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한 사람으로 조광조(趙光祖)를 위시하여 김식(金湜), 김정(金淨) 등과 함께 하옥되고 아산으로 정배(定配)[죄인을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정해진 기간 동안 그 지역 내에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게 하던 일]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온성[현...
-
조선 전기 아산현의 복현에 힘쓴 문신. 김구(金鉤)[1381~1462]는 1416년(태종 16) 문과 친시(親試)에 급제하여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이 된 뒤 세종, 단종, 세조에 걸쳐 홍주판관(洪州判官), 사간원(司諫院)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 등을 지냈다. 특히 성균...
-
홍선행을 시조로 하고, 홍온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세거성씨. 남양홍씨(南陽洪氏)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시조는 홍선행(洪先幸)이다. 아산시의 입향조(入鄕祖)는 홍온(洪昷)이다. 남양홍씨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는 ‘남양홍씨 당홍계(唐洪系)’와 고...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현의 문신이자 학자인 홍가신의 시문집. 『만전집(晩全集)』은 충청남도 아산현의 문신이며 학자인 홍가신(洪可臣)[1541~1615]의 문집으로, 기축옥사(己丑獄事)[조선 선조 때인 1589년에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의 인물들이 모반 혐의로 박해를 받은 사건],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중에 이몽학이 주동이 되어 충청도에서...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학자. 박지계(朴知誡)[1573~1635]는 조선 후기 서인계(西人系) 예학자(禮學者)로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文廟) 배향을 주장하였으며, 권득기(權得己)와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하여 유명한 철학적 논변을 하였다. 박지계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인지(仁之), 호는 잠야(潛冶),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유림들이 설립한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주세붕(周世鵬)이 1543년(중종 38)에 경상북도 영주 순흥에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서원은 1610년(광해군 2)에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염치읍 서원리에 세운 인산서원(仁山書院)이 최초의 서원이었다. 설립 당시에 출신 지역이나 붕당과 관계없이...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 속하는 법정리. 서원리(書院里)는 서원1리와 서원2리로 이루어지며 산으로 둘러싸인 농촌마을이다. 서원리는 마을에 인산서원(仁山書院)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서원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원리는 조선시대 아산현(牙山縣) 지역으로 1610년경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서원골과 원골 일대...
-
1819년(순조 19) 이호빈이 편찬한 충청남도 아산 지역 읍지. 『신정아주지』는 19세기 아산 지역의 경역(境域), 건물, 관원, 호구 등을 수록한 읍지이다. 『신정아주지』는 이호빈(李浩彬)이 편찬하였다. 영조 대에 편찬된 『여지도서』와 1742년(영조 18)에 작성된 『구아주지(舊牙州誌)』를 저본으로 하고 후대의 변화상을 반영하여 1819년 이호...
-
충청남도 아산 지역 출신 유학자의 생애와 학문을 소개한 도서. 『아산 유학의 여러 모습』은 외암사상연구소에서 유학 관련 교수, 연구원 등에게 조선시대 아산 지역 유학자 10명의 생애와 학문에 대한 집필을 의뢰하여 엮은 것이다. 외암사상연구소는 예안이씨 문중의 지원 아래 2005년 11월 발족하였으며, 조선시대 아산 지역의 유학에 대한 기초 자료 조사...
-
1758년에서 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에 수록된 아산현 읍지. 『아산현지』는 18세기 아산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등을 기록한 책이다. 『아산현지』는 아산현에서 간행하였다. 1757년 홍양한(洪良漢)이 영조에게 전국 읍지의 편찬을 건의하여, 왕명에 따라 홍문관에서 각 도에 각 읍 읍지를 올려보내도록 하여 간행하였다. 『아산현지』는 선장본이...
-
충청남도 아산 지역과 관련된 유교 지식인의 학문·사상·활동 및 문화유적. 충청남도 아산은 애국과 충절로 뛰어난 선비의 고장이다. 고려 말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들판과 산이 어우러지며, 바닷길도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낙향하여 은거하는 선비들이 들어와 맹사성(孟思誠)과 김질(金秩)처럼 이곳을 입향조로 삼은 집안들이 나왔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유학의 발달 과정과 대표적인 유학자인 맹사성과 이간의 이야기. 유교는 기원전 4세기경 중국으로부터 한자 문화를 수용하면서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삼국시대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유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아산 지역을 관할하였던 백제에서는 『논어(論語)』, 『효경(孝經)』 등 유교 경전을 전공한 오경박사(五經博士)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학자. 이덕민(李德敏)[1543~1618]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었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배향된 향현(鄕賢)이다. 이덕민의 본관은 용인(龍仁)이고, 자는 계도(季道), 호는 송파(松坡)이다. 할아버지 이홍간(李弘幹)은 『기묘당적(己卯黨籍)』에 올랐으며, 아버지 이영성(李永成)은 예조정랑(守禮曹正郞)이고,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
-
조선 전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아산현감을 지낸 학자이자 문신. 이지함(李之菡)[1517~1578]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학문을 이어받았고, 당대에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계(牛溪) 성혼(成渾), 송강(松江) 정철(鄭澈) 등과 교유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던 정통 유학자이다. 1578년(선조 11) 아산현감으로 재임 시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일정한...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인산서원(仁山書院)은 1610년(광해군 2) 아산 지역 유림의 공의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 이른바 동방 오현(五賢)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아산 지역 최초의 서원이었다. 후에 기준(奇遵), 이지함(李之菡), 홍가신(...
-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신앙 행위의 총칭.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으로 본다.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사상 체계로서의 유교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에는 태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홍가신(洪可臣)[1541~1615]은 조선 14대 왕 선조 때 활동한 문신이다. 과거시험을 통해 벼슬에 나아간 것은 아니었으나 임진왜란 중 왜군을 막은 공이 크며,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는 데 힘을 보탰다. 강직하고 온후한 인품으로 목민관의 역할을 다하였고, 불천지위(不遷之位)[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