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촌
-
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 설치된 촌락 단위 자치 조직. 동계(洞契)는 족친들의 길흉사 상호부조와 환난상구(患難相求),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부조는 곡물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대상은 부·모·처·자신, 곧 4상(四喪)이 원칙이다. 만약 부모가 없을 경우에는 처부모가 대상이 되었으며, 남편이 사망한 후에 처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동계는 16세기를...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마을의 형상이 중국의 망천(輞川)과 비슷하다고 하여 망천이라고 하였다가, 절벽의 바위에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麻厓)라고 불렀다. 진성이씨는 본동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송군에서 살고 있던 진성이씨의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인 이자수(李子脩)가 터를 잡았으나, 만년에 와룡면 주촌으로 옮겨가 살았다. 그 후 고려...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서가재 또는 서가현이라 불리다가 변하여 서가지·서지가 되었다. 서지리는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서가현촌으로 부르다가 후에 서지로 불렀는데 고려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남휘주(南暉珠, 1326~1361)가 처음으로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였고, 그 뒤 직강(直講) 이봉춘(李逢春, 1542~1625)이 이어서 살았다”고 한다. 『와...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방하, 성천, 신기, 호암, 이현, 효잠, 삼대, 문평, 주곡, 안흥리에서 신기의 ‘신’자와 문평의 ‘평’자를 따 신평리가 되었다. 신기는 신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본래는 벌판이 있었는데 1914년 서면과 북면을 병합하여 녹전면으로 개칭하고 이곳에 면사무소와 지서를 지으면서 마을이 새로 생겼다 하여 신기 혹은 새터...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안동 주하동 경류정 종택은 진성이씨 주촌파(周村派) 종택이며, 불천위로 모셔진 이정(李禎)의 종택이다. 이정은 이황(李滉)의 증조부로, 세종 때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영변진(寧邊鎭)을 쌓았으며, 선산도호부사를 지냈다. 진성이씨가 안동 풍산 마애(磨厓)에서 이곳 주하, 즉 주촌(周村)으로 옮겨...
-
조선 말기 안동의진의 직임과 임원(任員) 분장이 기록된 문서. 「안동의소파록(安東義疏爬錄)」은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인 박한설이 발굴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제9회 안동문화권 독립운동사연구발표회에서 소개하여 학계에 처음 알려졌다. 현재는 박한설 교수의 기증으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1895년 말부터 1896년 초에 걸쳐 의병이 전국 도처에서 일어났다. 안동의병도 1895년...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둘레에 들이 널찍하게 퍼져 있어, 또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이 두루 평안하다고 하여 두루라 하였고, 한자로는 주촌(周村)으로 표기하였다. 15세기 말 영춘이씨 주하리 입향조인 이유선(李惟善)과 진성인(眞城人) 이정(李禎)이 낙향하여 한 마을에서 함께 늙었으므로 이로촌(二老村)이라고도 하였다. 자연마을인 대밭골은 옛날에 대나무 밭이 있었다 하여...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 마을. 마을 주변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두루라고 하였고, 한자로는 주촌(周村)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인근 지역을 병합하면서 주하리(周下里)가 되었다. 조선 초기 풍산읍 마애리에 살던 이자수(李子脩)의 둘째 아들 이운후(李云候)가 선산부사에서 물러나 만년에 주하리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이운후...
-
이석을 시조로 하고 이자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진성이씨는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고려 말 마애촌에 입향한 후 이자수의 증손 이계양(李繼陽)이 크게 현달하여 벌족을 이루면서 도산면 일대를 중심으로 세거해 온 가문이다. 이석은 누대로 진보현(眞寶縣)에 토착해온 호족의 후예이다.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판전의사사가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