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
옹천마을 서당골에 위치한 사익재(四益劑)는 옹천장터에서 학가산 방향으로 진행하다 동네가 끝나는 지점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서당 앞으로는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는 멀리 줄지어선 산들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산자락 끝을 정지한 곳에 남동향으로 앉아 있다. 강신중 옹이 사익재에 있는 「서당기(書堂記)」에 쓰여 있는 내용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
-
옹천리는 금계산과 옥계천이 마을을 편안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일컬어 ‘단지형국’이라고 표현했으나, 마을에서 ‘박사님’으로 불리는 강신중 옹은 ‘금계포란형’으로 설명하였다.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과 단지형국은 모양이 비슷하다. 그런데 왜 금계포란의 뜻이 지명에 들어가지 않고 단지의 뜻이 지명에 들어가...
-
옹천은 아주 오래 전에 ‘용전’이라 불렸다는데, 옹천리와 관련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는 강신중 옹은 이 이름이 마을의 남산 쪽에 있던 용바위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옹천이라는 이름은 요새 생겼고. 그 전에는 용전이라고도 그랬어요. 용용(龍)자, 밭전(田)자를 썼어요. 이 뜻이 뭐냐 하면, 옛날 5천 년 전 실농씨가 있었지요. 염제(炎帝) 실농씨라고 하면 의약을 제조하고,...
-
고려와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행정 기관. 경상도의 도역(道域)은 산천을 경계로 한 합리적인 도제 확립의 필요에 따라 1413년(태종 13) 상주목(尙州牧) 소속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에 귀속시킴으로써 죽령을 북계(北界)로 하고 지리산을 서계(西界)로 하여 설정되었다. 감영은 개국초 경주에 있었으나 1407년(태종 7)경 상주로 옮겼다. 또한 이 때...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단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옹전(瓮田)이라 하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에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샘이 있어 옹기 ‘옹(瓮)’자와 샘 ‘천(泉)’자를 써서 옹천(瓮泉)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선면 거인동의 일부가 병합...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 있는 진주강씨 집성촌.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 단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옹전(瓮田),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 하였는데, 이후 마을에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고 하여 ‘옹(瓮)’자와 ‘천(泉)’자를 붙여 옹천(瓮泉)이라고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입향조 강시(姜蓍)가 성균시에 급제...
-
영천 (일명 옥천)과 학가산을 조망할 수 있는 수려한 정자인 쌍암정(일명 쌍암정려)는 옹천의 근대인물인 국전(菊田) 강형수(姜馨秀)가 건립한 정자이다. 이 정자에는 김흥락이 쓴 「쌍암정려기」와 김제면이 쓴 「쌍암정려기」, 이화성이 쓴 「쌍암정사기」가 게첨되어 있다. 쌍암정은 옹천마을 서당골에 위치한 사익재 근처에 있다. 사익재는 옹천리에서 학가산 가는...
-
옹천리는 마을에 용바위가 있고 옥계천이 흘러서 용전, 또는 옥천 등으로 불리다가 옹천이라 했다고 전한다. 옹천리에는 예부터 영천(靈泉)이란 유명한 우물이 있다. 진주강씨들의 서기가 어려 있는 사익재와 열녀각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영천과 관련하여 강신중 옹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이쪽에 신령령(靈) 자, 샘천(泉) 자 쓰는 영천이라고 있어요. 서울로...
-
안동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지로, 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전통문화와 다양한 건축 문화유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곳이다. 과거 역사와 문화를 보면, 경상북도는 크게 대구를 중심으로 성주문화권,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주문화권, 안동을 중심으로 한 안동문화권로 나뉜다. 안동문화권은 불교문화 위에 유교 문화를 꽃피운 곳으로, 안동의 유교 문화는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제 모습을 갖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