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또 다른 이름은 권경영(權慶永)이다. 1898년(고종 3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이개리에서 출생하였다. 권두경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시위와 3월 23일에 일어난 3차 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의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었다. 3월 18...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856년(철종 7)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사망 연도는 알 수 없다. 권수억은 1919년 안동면에서 주민들이 대거 참여했던 만세 운동에 미처 참여하지 못하자, 뒤에 홀로 만세 시위를 벌였다. 3·1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안동면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의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3월 1...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오(順五)이다. 1891년(고종 28)에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당시 도서면 오대동)에서 출생하여 1940년에 사망하였다. 권영직은 1919년 3월 21일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길안면 시위는 3월 21일 장날을 이용하여 임하면 오대동의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910년(순종 4)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권예윤은 1925년 8월 창립된 안동청년동맹에 참여하였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피로서 자유를 얻는다’, ‘버려야 할 것은 철쇄이고 얻어야 할 것은 자유이다’, ‘전쟁은 우리들의 살 길이다’라는 글귀가 적힌 벽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1930년 10월 16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또 다른 이름은 권차철(權且喆)이다. 1894년(고종 31) 임서면 오대동(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 133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 세상을 떠났다. 권우철은 1919년 3월 21일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길안면 시위는 3월 21일 장날을 이용하여 임하면 오대리의 손영학(孫永學)·김정익...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우범(尤範)이다. 1896년(고종 3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에서 출생하여 1942년 사망하였다. 묘소는 와룡면 이하리 야산에 있다. 권이원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면의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宋基植)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각각 준비되었다. 3월 18...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또 다른 이름은 권점필(權點必)이다. 1896년(고종 3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44년 사망하였다. 권점필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안동면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宋基植)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 가운데 권점필은 기독교...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897년(고종 34)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출생하여 1980년 사망하였다. 권헌이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과 진성이씨 문중 사람들이 주도했고, 예안선명학교, 예안보통학교 등이 참가했으며, 만촌교회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범주(範疇), 또 다른 이름은 김수특(金壽特)이다. 1900년(고종 3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김구현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과 진성이씨 문중 사람들이 주도했고, 예안선명학교, 예안보통학교 등이 참가했으...
-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대구지방법원 관할의 하급 법원.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은 특정 관할 지역의 민사 및 형사 소송을 처리하는 제1심 법원으로서, 사법 정의를 실현하고 민사 및 형사 사건을 심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9년 통감부령에 의해 안동구재판소로 설립되었다. 1914년 총독부령 제25호에 의해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으로, 1947년 군정법령에 의해 대구지방법원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동부동에 있는 공원. 문화공원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이 낙동강 남쪽 안동시 정하동으로 이전하자 이 터를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고자 2005년 법원과 검찰청을 허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2007년 6월 준공하였다.2008년에 전통 삼문과 육각정 및 연못을 조성하였다. 5,957㎡의 대지에 조성되어 있다. 문화공원 안에는 안동문화원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92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향년 4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병린은 예안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를 주도하였다. 1차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이 주도하여 일어났는데, 당시 면서기로 근무하던 이병린은...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자승(子承), 호는 백저(白底)이다. 1895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안면 시위는 이용호(李用鎬), 김동택(金東澤), 신응한(申應漢) 등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가했다가 서울의 시위를 직접 보고 돌아온 뒤 계획, 준비되었다. 이비호...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태중(台仲)이다. 1877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54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안면 시위는 진성이씨, 영천이씨, 횡성조씨, 우계이씨, 예안김씨 등 지역 유림 세력의 영향이 컸다. 이 중 영천이씨 가문에서는 이삼현과 이유홍(李裕弘)이 시위에 참가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삼현은...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경양(景陽)이다. 1884년 지금의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야산에 있다. 2차 안동면 시위는 기독교 인사들과 안동 유림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1919년 3월 18일 장날을 이용하여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이 주도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9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태어났으며, 1948년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시교는 1919년 3월 17일 1차 예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당시 잠업순회교사로 일하던 이시교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을 비롯하여 이중원, 신응두, 신동희 등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만세 시위를 논의, 계획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월성(月城). 1896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이개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24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서후면 이개리 공동묘지에 있다. 이암회는 1919년 3월 18일 2차 안동면 시위에 참가한 데 이어 3월 23일 발생한 3차 안동면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3차 안동면 시위는 안동면민뿐만 아니라 안동 관내의 여러 주민들이 함...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영호(李齡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다. 1893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0년 국권 피탈에 반대하여 단식 순국한 향산 이만도(李晩燾)의 친척이다. 이영호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 야욕이 노골화되던 시절부터 국권 회복을 위한 일념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본 제국주의의 사악성을...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유홍(李裕弘)은 본관이 영천(永川)이고, 자는 의경(毅卿)이며, 호는 백오(百五)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유홍은 1919년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군중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쓰러뜨리고 독립만세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인홍(李仁洪)은 본관이 성주(星州)이다. 1901년 지금의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2차 안동면 시위는 기독교 인사들과 안동 유림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1919년 3월 18일 장날을 이용하여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던 시위대와 안동 유림이 지휘하던 시위대가 서로 합세...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홍(李鍾洪)은 본관이 우계(羽溪)이고, 자는 기오(箕五)이며, 호는 백민(白民)이다. 1869년 지금의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향년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종홍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서 이동봉·이광호의 주도로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중무(李中珷)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다른 이름은 이중빈(李中斌)이며, 자는 열경(烈慶)이다. 1881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중무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서 이동봉·이광호의 주도로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두희(張斗熙)는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는 광필(光必)이다. 1883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1930년 향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9년 3월 21일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성철(全聖哲)은 본관이 용궁(龍宮)이고, 이명(異名)은 전성영(全聖永)이며, 자는 덕수(德修)이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성철은 1919년 3월 23일 3차 안동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3차 안동면 시위는 안동군민들이 대거 참가하여 군 전체가 벌인 만세 시위로 일본 경찰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성흠(鄭成欽)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다. 187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으며, 1952년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성흠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고종의 인산에 참가하고 돌아와 동향 출신인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길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3월 21일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군중...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유복(鄭有福)은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복여(復汝)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하면 오대리에서 목수일을 하고 있던 정유복은 1919년 3월 21일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길안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이 이끄는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치문(鄭致文)은 본관이 동래(東萊)이다. 1891년 지금의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치문은 1919년 3월 17일 예안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동봉과 이광호가 이끄는 시위 군중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한모(鄭漢模)는 본관이 동래(東萊)이고, 정섭모(鄭燮模)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자는 운서(雲瑞)이며, 호는 청암(聽菴)이다. 1903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현하리에서 태어났으며, 1997년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한모는 1920년 음력 9월 태을교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태을교는 차경석을 교주로 하여 표면적...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방인(趙邦仁)은 본관이 횡성(橫城)이고, 자는 안중(安仲)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43년 향년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방인은 예안 지역의 유림 세력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김진휘·조병건 등과 결의하여 1919년 3월 17일 1차 예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과 함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건(趙炳建)은 본관이 횡성(橫城)이다. 1891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병건은 예안 지역의 유림 세력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김진휘·조방인 등과 결의하여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사명(趙思明)은 본관이 횡성(橫城)이다. 1876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 향년 98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사명은 예안 지역의 유림 지도자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김진휘·조방인 등과 결의하여 1919년 3월 17일 1차 예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수인(趙修仁)은 본관이 횡성(橫城)이다. 1881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43년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안 지역의 유림 지도자인 조수인은 1919년 3월 8일 무렵 서울에 있던 손병희에게서 서신을 받고 김진휘·조병건·이원영·조맹호·조방인 등과 의논하여 3월 17일 예안장날에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영남(黃永南)은 본관이 평해(平海)이고, 이명(異名)은 황기실(黃基實)이며, 자는 병선(丙善)이다. 1885년 지금의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남후면 개곡리 공동묘지에 있다. 황영남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2차 안동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2차 시위는 안동교회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인규(黃仁圭)는 본관이 창원(昌原)이다. 1875년 지금의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으며, 1933년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황인규는 1919년 3월 18일 김병우·김익현·권점필 등과 함께 2차 안동면 시위를 결의한 뒤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시위 당일 기독교인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