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경상북도 안동에서 활동한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두 번의 전쟁 체험으로 전쟁의 야만성을 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삼아 현실 모순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고, 평생 몸에 병을 지니고 살면서도 가난한 이웃과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을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모든 인세를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유언에 따라 권정생 어린이재단이 설립되...
-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성악가이자 동요 작곡가. 권태호는 1903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에서 목사인 권중한(權重漢)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선교사 부인에게서 풍금을 배우기 시작하여 15세 때는 안동교회 성가대의 지휘도 맡았고, 때로는 독창도 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그는 1924년에 일본 나카노[中野]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성악을 전공하였는데...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응천(應天), 또 다른 이름은 김원현(金元顯)이다. 1926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99년 사망하였다. 김건우는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출신으로 비밀 결사 단체인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명성회는 1942년 2월 무렵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던 이정선(李貞善)...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지섭은 본관이 풍산(豐山)으로 1884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서 김병규(金秉奎)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위경(衛卿), 호는 추강(秋岡)이다. 192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족숙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에게 한학을 배웠고, 1905년 상주보통학교(尙州...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홍구는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임과(林科) 9회생으로 입학한 뒤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학도병에 끌려가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다. 1943년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이정선(李貞善)...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성길(成吉), 호는 고엄(叩嚴)이다. 1927년 경상북도 안동시 옥야동에서 태어났다. 서정인은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임과(林科) 10회생으로 입학한 뒤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성한은 본관이 경주(慶州)로 1928년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다. 1945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에 있다. 손성한은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임과(林科) 10회생으로 입학한 뒤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
일제강점기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운동.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학교가 점차 군사교육기관으로 변하였다. 학생들에게 소년비행대·전차대 지원을 강요하고, 군사 훈련과 도강(渡江)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또 학생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지원하기 위한 근로봉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일제는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고 나섰다...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개인이나 소수 인력이 일제를 상대로 벌인 무력 투쟁.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이어진 의열투쟁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항일 투쟁 방식이었다. 안동 출신 인사들로는 김시현(金始顯)·김지섭(金祉燮)·권정필(權正弼)·김정현(金禎顯, 김시현의 동생)·류병하(柳秉夏)·류시태(柳時泰) 등이 참여하였다. 의열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혁(李源赫)은 1890년 10월 21일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원혁은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일청영어학교(日淸英語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곧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 후 시대일보사를 경영하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지향하는 잡지인 『조선지광(朝鮮之光)』을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