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하여 ‘물동이동’이라고도 하는 하회(河回)는, 이외에도 하회(河廻)·하상강촌(河上江村)·하외(河隈)·하촌(河村)이라고도 불린다. 행정구역상 안동시 서남단에 위치한 풍천면의 한 마을로, 하회1리와 서원·적은못골·아래밀골·웃밀골·새마을이 속한 하회2리로 나누어져 있다. 하회마을에서 외부로 통하는 길은 마을의 동쪽에 있는 작은고개와 큰고개를 넘어 중리를 거쳐 풍산,...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전통 가옥. 고가옥은 소중한 전통 주거 문화를 간직한 건축 문화유산의 보고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신분, 시대적 상황, 지리적 환경, 집을 짓는 재료에 따라 형태를 달리 한다. 한국의 주거 문화는 구들을 놓은 온돌방과 나무 널을 깐 마루로 대표된다. 온돌방과 마루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온돌은 바닥을 덥혀 실내를 따듯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마루...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고성이씨 집성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심동·형호동·하회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광덕리라 하였다. 풍산류씨 집성촌인 광디이마을은 광덕(廣德)의 방언으로, 광덕은 마을에 넓은 둔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광디이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인접해 있어 풍산류씨들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지만, 풍산류씨들이 본격적으로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약 150년...
-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안동은 예로부터 교육을 중시하는 고장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많은 선비들과 관료들을 배출한 유교문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도 안동의 교육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지방의 중소도시로는 많은 수의 학교가 있다. 안동의 교육을 주요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말로 전승되는 민간 지식의 총체. 문화의 전승에는 전승 매체와 방식에 따라 구비전승·행위전승·물질전승 등이 있다. 구비전승은 행위나 물질이 아니라 말로 전승되는 문화를 뜻한다. 말로 전승되는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비문학이다. 그러나 구비전승 이전에 말로 소통되는 경험담·목격담·풍문 등의 구술 정보가 있는가 하면, 구비전승은 되지만 문학적 형상성을 갖추...
-
허도령 전설과 하회 별신굿 탈놀이, 서낭신을 위한 동제 등은 모두 서낭신과 관련해서 만들어진 하회마을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달리 말하면 하회마을에서는 지금도 서낭신과 관련한 전설과 민속신앙이 풍부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셈이다. 서낭신과 관련하여 형성된 문화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하회마을 사람들은 서낭신만을 모시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 사람들은 서낭당과 함께 국사당(...
-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효자이자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거(公擧), 호는 방담(方潭). 아버지는 권우신(權遇臣)이다. 권강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彥璣)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23세 되던 1589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오르지 않았다. 후에 향리에 머무르고 있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을 찾아가 제자가 되...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권태사 신도비(權太師 神道碑)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권행은 후삼국시대에 고려와 후백제가 싸운 고창(古昌, 현 안동)전투에서 왕건을 도와 승리함으로써 공신에 책봉되었다. 본성은 김씨이었으나, 권씨를 사성(賜姓)받았으며 대상(大相)이라는 관계(官階)를 받기도 하였다. 1...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협지(夾之), 호는 일휴당(日休堂). 아버지는 예안훈도(禮安訓導) 금재(琴榟)이다. 동생이 금응훈(琴應壎)이다. 금응협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일찍이 그의 자제들에게 “너희들이 소학(小學)의 모습을 보려면 저 금응협을...
-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훈지(壎之), 호는 면진재(勉進齋). 아버지는 예안훈도(禮安訓導) 금재(琴榟)이다. 형이 금응협(琴應夾)이다. 금응훈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친형인 금응협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종묘서부봉사에 제수되었다. 금응훈은...
-
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백(孝伯). 호는 학호(鶴湖). 아버지는 김대현(金大賢),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이다. 김봉조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사...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할아버지는 김예범(金禮範)이고, 아버지는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동생은 김복일(金復一)이다. 김성일은 안동부 임하현 천전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글을 읽다가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과거 공부만 하고 진리를...
-
많은 사람이 하회를 찾아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수려한 자연환경 때문이다.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는 낙동강 물줄기와 흰 무명베를 펼쳐 놓은 듯한 깨끗한 백사장, 그리고 만송정의 푸른 솔숲과 깎아지른 듯한 부용대 절벽 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이러한 경관은 누구든 한 번쯤 둘러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마을 입구를 시작으로 이어...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파도를 쳐도 이 바위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물결을 능멸한다’는 뜻에서 새긴 글씨이다. 능파대(凌波臺)는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芙蓉臺) 동쪽에 자리한 하회 옥연정사(河回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2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가로 암각서가 새겨진...
-
조선 후기 안동을 비롯한 영남 유생들이 고종에게 대원군의 봉환(奉還)을 요구한 상소 운동. 대원군 봉환 만인소는 1873년(고종 10) 고종의 친정 체제 구축과 함께 은거하고 있던 대원군이 병인양요 후에 설치되었던 강화 진무영 폐지 등에 대한 불만으로 양주 직곡으로 거처를 옮기자 안동을 비롯한 영남의 유생 1만여 명이 1875년(고종 13) 2월부터 6월까지 4차례에 걸쳐 고종에게...
-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는 풍산김씨들이 세거하고 있는 동족촌락이다. 풍산김씨 조상들의 묘소는 인근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의 대지산에 있는데, 산자락 아래에는 제례도구를 보관해 두거나 제물장만 등을 하는 대지재사가 자리하고 있다. 풍산김씨 문중에서는 대지산 묘역 수호를 위한 규칙을 제정해 두고 있다. 이른바 「대지곡묘산수호입의(大枝谷墓山守護立議)」라는 묘지 수호 결의...
-
사람들은 종손과 종부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종손과 종부는 여느 집보다 많은 조상들의 제사를 모셔야 하고, 집에 찾아오는 많은 손님을 접대해야 하는 등 가문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책임져야 하는 중책을 맡은 이들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종손과 종부는 한 가문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애파 16세손의 안사람인 상주댁은 서애 종손과 시6...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1930년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마을 총수는 28,336개로 이 가운데 14,672개가 동성마을이었다. 우리의 전통마을 가운데 반 이상이 동성마을인 셈이다. 동성마을은 동족부락(同族部落)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1930년대부터 주로 일본인 학자들이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용어이다. 그러나 동족...
-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승수(承搜), 호는 회은(晦隱)이다. 183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류진휘(柳進徽)와 어머니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9년 자정 순국한 류신영(柳臣榮, 1853~1919)이 아들이다. 류도발은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당대의 여러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무너져...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선여(善汝), 호는 석호(石湖).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류이좌(柳台佐)이고, 아버지는 류기목(柳祈睦)이다. 큰아버지 류희목(柳希睦)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류도성(柳道性, 1823~1906)은 할아버지인 류이좌의 훈도를 받았는데, 일찍이 가학(家學)의 정훈(庭訓)을 입어 경사(經史) 사...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능(爾能), 호는 일우(逸愚).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8세손이자 류원지(柳元之)의 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류성화(柳聖和)이고, 할아버지는 류운(柳澐)이다. 아버지는 류종춘(柳宗春)이며, 생부는 류해춘(柳海春)이고, 외할아버지는 이세진(李世震)이다. 류상조(柳相祚, 1763~1838)는 아버지에게서 가학(家學)을...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증조할아버지는 류자온(柳子溫)이고, 할아버지는 류공작(柳公綽)이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류중영(柳仲郢)이며, 어머니는 진사 김광수(金光粹)의 딸이다. 아들 수암 류진(柳袗)과 손자 졸재 류원지는 그의 도학(道學)을 계승하였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1564년(명종 1...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은(霞隱)이다.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1910년 자정순국한 류도발(柳道發, 1832~1910)이다. 1853년(철종 4) 6월 17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방동에 묘가 있다. 류신영은 철저한 풍산류씨의 가학(家學)에 의거하여 성장하였다...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현(士鉉), 호는 학서(鶴棲).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류사춘(柳師春)이고,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예조판서를 역임한 이억지(李億之)의 딸이다. 류이좌(柳台佐, 1763~1837)는 어머니가 특이한 꿈을 꾸고 낳아 외할아버지가 “이 아이는 천리구(千里駒: 뛰어나게 잘난 자손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로 서애(西厓)...
-
오늘날 종가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하회마을 충효당에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전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풍산류씨 서애파 종부 최소희 할머니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최소희 할머니는 스무 살 때 하회마을로 시집을 왔다. 시집을 오기 전 할머니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한국전쟁으로 시국이 혼란스러워...
-
풍산류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하회마을에 자리를 잡았을까? 풍산류씨가 하회에 자리 잡은 것은 고려 후기이다. 겸암과 서애의 6대조인 전서공(典書公) 류종혜(柳從惠)가 풍산 상리(上里)에 세거하다가 길지를 찾아 지금의 하회마을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실 류씨들이 하회에 세거지를 마련한 것은 전서공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기 훨씬 이전, 곧 전서공의 할아버지이자 고려의 도염...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한산이씨 동성마을. 고려 말 소씨(蘇氏) 일족이 살 때 앞에 펼쳐진 들을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안망실이라 하였고,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망실과 소호리를 병합하고 안망실의 ‘망’자와 소호리의 ‘호’자를 따서 망호리라 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고 1617년...
-
하회마을은 풍산류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 안에 풍산류씨 일가들을 묶어주는 화수회(花樹會)와 족회소(族會所), 양로소(養老所), 종당계(宗堂契) 등의 모임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류씨 일문을 대표하는 가장 광범위한 문중모임이 화수회이다. 화수계(花樹契) 또는 대문회(大門會)라고도 불리는 화수회는 친목도모와 선조의 유물관리, 제사 및 묘사 봉행, 위토 및 문...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여우(汝友), 호는 임연재(臨淵齋). 할아버지는 배헌(裵巚), 아버지는 배천석(裵天錫), 어머니는 정세호(鄭世豪)의 딸이다. 배삼익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6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학유로부터 시작하여 성균관사예 사성을 거쳐...
-
여말선초 안동 지역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흥해(興海). 호는 백죽당(栢竹堂). 고조부는 고려태사무열공(高麗太師武烈公) 배현경(裵玄慶)의 7세손으로 위위승동정(尉衛承同正) 배약경(裵若卿), 증조부는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낸 배유손(裵裕孫), 할아버지는 전리판서(典理判書)인 배영지(裵榮至), 아버지는 흥해군(興海君)에 봉해진 배전(裵詮), 어머니는 일직손씨(一直孫氏)로 정평공(靖...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서 호랑이의 해를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지내던 마을 공동체 제의. 병산별신굿은 병산리의 금병산 일대에서 지난 갑자년인 1924년까지 범의 해를 피하기 위해 매 3년마다 주민 공동으로 지내는 무당굿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을 주향으로 모시는 병산서원이 있는 풍천면 병산리의 각성받이 농민들과, 풍천면 하회리 풍산류씨의 세력권에...
-
1620년 이후 안동을 비롯한 영남 유림이 호파(虎派)와 병파(屛派)로 나뉘어 전개한 쟁단[鄕戰]. 1620년(광해군 12) 퇴계 이황을 주향으로 하는 여강서원(廬江書院: 1676년 호계서원으로 바뀌어 사액을 받음)을 건립하면서 종향자인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가운데 누구의 위패를 퇴계의 왼편에 둘지를 두고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애학(厓鶴)’이냐, ‘학애(鶴厓)’냐 하는 위...
-
하회마을 만송정숲 앞 모래사장과 마주보고 있는 부용대의 절경은 세계적인 명소로 꼽힐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부용대 앞 쪽에는 여러 개의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중 옥연정사에서 부용대로 가는 문을 나서면 평평한 바위를 만나는데, 바로 능파대이다. 능파대는 서애 류성룡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병자호란 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 백이숙제(伯夷叔齊)가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려도 듣지 않자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았던 것과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하여 고사리 ‘미(薇)’자를 써서 서미(西薇)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다. 『영가지(永嘉誌)』에는 “서미동...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돌고지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조선 선조 때의 재상으로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대사헌·경상도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도학·문장·덕행·서예로 이름을 떨쳤으며, 저서에 『서애집(西厓集)』·『징비록(懲毖錄)』·『신종록(愼終錄)』...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비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신화·전설·민담을 총칭해서 설화라고 한다. 입을 통해 전승되는 문학으로 구비문학의 범주에 속하며, 쉬운 표현으로 ‘옛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안동 지역은 이야기의 고장이라고 할 만큼 많은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그 동안 전국적으로 설화를 수집한 자료를 시·군별로 비교해 볼 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작품의 설화가 안동에서...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수옥정은 이홍조(李弘祚, 1595~1660)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과 사림들의 공의로 건립하였다. 이홍조는 본관은 한산(漢山)이고, 자는 여곽(汝廓), 호는 수은(睡隱)이다.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해산(海山) 이문영(李文英),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 의병장으...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수은 종택은 이홍조(李弘祚, 1595~1660)를 입향조로 하는 수은공파(睡隱公派, 일명 안동소호리파)의 종택이다. 이홍조는 본관은 한산(漢山)이고, 자는 여곽(汝廓), 호는 수은(睡隱)이다.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해산(海山) 이문영(李文英),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딸이다. 1636...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안동 병산서원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류성룡은 본관이 풍산(豊山)으로, 1564년(명종 19) 사마시를 거쳐 도승지·예조판서·우의정·좌의정 등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시에는 영의정으로 왕을 호종하고, 성곽 수축·화기 제작을 비롯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으며...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재사. 안동 숭실재는 풍산부원군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의 묘제를 위해 지어졌다. 류중영은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부친이며, 중종 때 문신으로 경연관으로서 활약하였다. 안동 숭실재가 위치한 서후면 성곡리 능동의 골짜기는 남향으로 좁직하고 길게 열려 있다. 골짜기의 남쪽 끝은 서후면 소재지와 저전삼거리로 이어지는 2차선의 굽...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충효당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종택으로, 후손과 문하생들이 류성룡의 유덕을 기리는 위하여 지었다. 당호를 ‘충효당(忠孝堂)’이라 한 이유는 류성룡이 평소에 자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기에 이를 받들어 이름 지은 것이다. 류성룡은 임종할 무렵 시 한 수를 지었는데...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증손 류만하(柳萬河)가 충효당에서 분가할 때 지은 집이다. 후에 류만하의 아들 주일재(主一齋) 류후장(柳後章, 1650~1706)이 늘려 지었다고 하는데, 당호는 류후장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5번지에 있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사.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평소 가깝게 지내던 탄홍(誕弘)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류성룡의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대사헌·경상도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사.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빼어난 자연 경관과 민속 전통·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양반촌이다. 하회 원지정사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부친상을 당하자 낙향하여 건립한 정사로, 류성룡이 병이 났을 때 요양하던 곳이기도 하다. 원지(遠志)는 약초의 일종인 소초(小草)...
-
유교의 조상 제사에는 고조부·증조부·조부·부(父)까지의 4대조를 위한 기제(忌祭)를 비롯하여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차례(茶禮)·묘제(墓祭) 등이 있다. 이 중 불천위제사는 종가(宗家)의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 때문에 항간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고 있어야만 종가의 자격을 부여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안동 지역에서는 불천위를 모시고 있는 종가를...
-
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장씨는 안동김씨(安東金氏), 안동권씨(安東權氏)와 더불어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의 하나로 시조 장정필(張貞弼) 이후 안동을 근거지로 세거해온 성씨이다. 시조 장정필의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로 원래 당(唐)나라 사람으로 현재의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났다. 9세기 말 경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와서...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겸암선생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겸암선생이라 불리는 류운룡(柳雲龍, 1539~1601)과 서애대감이라 불리는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형제로서, 류운룡이 류성룡의 형이다. 류운룡은 조선 선조(宣祖, 1552~1608) 때의 목사로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庵)이다. 1572년(선조 5)에 전함사별좌를 지냈다. 류성룡의...
-
조선시대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황의 성리학설과 학통을 계승한 영남의 학파.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으로 채택된 성리학은 16세기 후반에 접어들자 사림 세력의 정계 장악과 함께 정치적으로는 동서 분당(東西分黨), 학문적으로는 영남학파(嶺南學派)와 기호학파(畿湖學派)로 분열되었다. 영남학파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퇴계(退溪) 이황(李滉)·남명(南冥) 조식(曺植)에 의해 형성된 학...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유물 전시관. 영모각은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유물을 보관·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류성룡은 조선 선조 때의 재상으로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대사헌·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純信, 1554~1611)과 권율(權慄, 1...
-
하회에는 각종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유교적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유적들은 하회의 집과 서원, 정자 등이 중심을 이루며 유물들은 주로 서애 류성룡이 남긴 것으로 현재 영모각(永慕閣)에 전시되어 있다. 영모각은 1965년 9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6월에 준공한 서애의 유물 전시관으로, 유물을 모두 보존 전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서 1975년에 다시...
-
이익을 시조로 하고 이천과 이영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예안이씨는 조선 초 시조 이익(李翊)의 증손 백곡(栢谷) 이천(李蕆, 1376~1451)이 예안으로 중종 연간에 이익의 6세손 이영(李英)이 풍산에 이거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예안이씨는 전의이씨(全義李氏)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전의이씨 시조 고려개국공신 이도(李棹)의 6세손 이천(李...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암각서. 옥연(玉淵)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던 낙동강 물이 이곳에 이르러 ‘옥같이 맑은 못을 이룬다’ 하여 새긴 글씨이다.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芙蓉臺) 동쪽에 자리한 하회 옥연정사(河回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가로 암각서가 새겨진 바위는 모래사장과 하회 옥연정사...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노래 「쾌지나 칭칭나네」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겸암선생이라 불리는 류운룡(柳雲龍, 1539~1601)과 서애대감이라 불리는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형제로서, 류운룡이 류성룡의 형이다. 류운룡은 조선 선조(宣祖, 1552~1608) 때의 목사로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庵)이다. 1572년(선조 5)...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직계 비속이 없어 외손이 대신 받드는 제사. 외손봉사는 유교적 종법제도에 의한 친손봉사가 확립되기 이전까지 행해지던 제사 잇기의 한 방식이다. 직계 비속의 대가 끊겨 더 이상 친손으로 하여금 제사를 잇게 하지 못할 경우, 딸의 남편이나 자손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고 제사를 지내게 한 풍습이다. 가족은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인류의 탄생...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동산마에 있는 동산을 중심으로 반달처럼 생긴 계단식 밭이 있어 월전(月田, 일명 달밭)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큰마(일명 대촌)는 임진왜란 때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머물렀다고 전해지며, 김학달(金鶴達)과 이여송(李如松)의 원군이 왔을 때 피난민이 모여 300가구 정도의 큰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평(庫坪)은 비교적...
-
조선 중기 안동에서 활동했던 류진이 편찬한 농업 기술서. 류진(柳袗, 1582~1635)은 안동 출신 명재상인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셋째 아들이다. 158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낙향한 부친을 따라와 안동 하회에서 거주하다가, 1618년에는 상주로 옮겨가 살았는데, 이곳은 그의 부친이 일찍이 목사로 재직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생애의 후반기를 보낸 류진은...
-
찹쌀가루 반죽을 쪄서 말린 다음 튀겨 꿀을 바른 뒤 고물을 묻혀낸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향토 음식. 유과(油果)는 한국의 전통적인 과자류의 총칭으로 다른 말로는 유밀과(油密果)라고도 한다. 그러나 안동에서는 특히 기름에 튀겨 부풀린 과자에 고물을 묻힌 것을 유과라 부른다. 이러한 과자는 지역에 따라 산자, 강정, 유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에 쓰인 안동장씨(安東張氏,...
-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공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수천 년 동안...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류성룡 종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과 관련한 문헌과 자료. 류성룡 종손가 문적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국왕을 보위하고 군무를 총괄하여 전란을 극복하면서 자필로 기록한 문헌과 이 시기에 수집한 각종 자료들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0...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 관련 유물과 고문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1566년(명종 21)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다. 또한, 화포 등 각종 무기를 제조하였으며, 성곽을 세울 것을...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 고조부는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증조부는 이효제(李孝濟), 할아버지는 이석관(李碩觀), 아버지는 이태화(李泰和),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딸이다. 고조부 이홍조가 광해군 때 외조부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있는 안동으로 피신해 오면서 그 후손들이...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성여(聖輿), 호는 동암(東巖). 할아버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아버지는 군기시첨정을 지낸 이준(李寯),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훈도 금재(琴梓)의 딸이다. 형은 이안도(李安道)이다.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와의 사이에 이기, 이억(李嶷), 이계 세 아들을 두었다. 둘째 아들 이억이 상계 종가인 형...
-
하회마을은 고려 후기 이후 지금까지 풍산류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하회가 전국 각지에 양반마을로 알려지면서 나아가 명문세가의 마을로, 또는 유교문화의 전형적 마을로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겸암과 서애로부터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겸암과 서애에 얽힌 전설도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전설 속에서 겸암은 한결같이 이인(異人)으로 묘사되어 서애보다 탁월한 인물...
-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여직(汝直), 호는 낙금헌(樂琴軒). 할아버지는 이연(李演), 아버지는 이희안(李希顔),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예범(金禮範)의 딸이다. 양부 이희옹(李希雍)에게 입양되었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과는 내외종(內外從)이었다. 형이 송간(松澗) 이정회(李庭檜)이다. 이정백은 경상도 안동부 주촌리(周村里...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주지(冑之), 호는 망헌(忘軒). 할아버지는 이증(李增), 아버지는 이평(李泙),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군사(郡事) 허추(許樞)의 딸이다. 이주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평소 성품이 조용하고 담박하여 일체의 권세와 이익에 관심이 없었으며 옛 사람처럼 되기 위해 스스로 힘써 노력하였고...
-
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산(漢山). 자는 여곽(汝廓), 호는 수은(睡隱). 할아버지는 이대형(李大馨),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해산(海山) 이문영(李文英),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딸이다. 1595년(선조 28) 10월 17일에 전라도 함열군(咸悅郡, 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경성(京城) 낙선...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임여재 고택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6세손인 류성오(柳聖五)의 아들 임여재(臨汝齋) 류규(柳氵+奎, 1730~1808)의 고택이다. 하회마을관리사무소에서 안동(安東) 양진당(養眞堂)과 충효당(忠孝堂)으로 연결되는 골목길을 따라가면 풍산류씨 입향시조인 전서공 기적...
-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은 효자이자 이인(異人)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겸암은 퇴계가 향리 도산에 서당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고 하는데, 퇴계 또한 그의 학문적 자질과 성실함에 감복하여 총애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부용대 남쪽 기슭에 정사를 지어 학문에 정진할 때 ‘겸암정사(謙巖精舍)’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퇴계였다. 겸암은...
-
서애 류성룡은 겸암 류운룡의 아우로서 임진왜란의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선조 때의 명신이자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학자이다. 21세에 형 겸암과 도산서당을 찾아가 퇴계의 가르침을 받았고, 23세에 사마시(司馬試)의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했으며, 성균관에 입학하던 25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서애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고향의 전원과 독서를...
-
학가산의 수려한 경관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옹천리는 예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장터마을로 유명하다. 장날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물론 원근에서 장꾼들과 주민들이 찾아와서 각종 농산물과 생필품 등을 매매하는 것이지만, 장터에서는 물건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욱더 어느 장이든 가리지 않고 물건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
-
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峯). 증조부는 군수를 지낸 정난원(鄭蘭元), 할아버지는 생원 정광우(鄭光祐), 아버지는 정목번(鄭穆蕃),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홍준(李弘準)의 딸이다. 정유일은 어려서부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이황의 가르침을 듣고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몸소 체...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보(壽甫), 호는 송오(松塢). 할아버지는 정두(鄭枓), 아버지는 양구현감을 지낸 정사성(鄭士誠), 어머니는 남순효(南舜孝)의 딸이다. 정전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사성을 통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
하회마을에서 전통적인 관혼상제 의식이 최근까지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다른 마을에서 흔하게 보기 어려운 불천위(不遷位) 제사 덕분일 수 있다. 불천위 제사란 일반적으로 4대조까지만 올리는 제사의 관례를 깨고 5대조, 6대조가 되어도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위패를 모셔 두고 제사를 올리는 특별한 제사를 말한다. 불천위의 자격은 학문이 탁월하고 많은 인재를 양성한 대학자나 나...
-
사람들은 하회마을이 풍산류씨 집성촌이기에 당연히 종가도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짐작과 다르게 하회마을에는 두 종택(宗宅)이 있다. 바로 겸암파와 서애파의 종택인 양진당과 충효당이 한 마을에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겸암과 서애는 입암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의 장남과 차남으로, 형제가 한 마을에서 종가를 이룬 것이다. 보물 제306호로 지정되...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태몽치마와 서애대감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조선 선조 때의 재상으로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대사헌·경상도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도학·문장·덕행·서예로 이름을 떨쳤으며, 저서에 『서애집(西厓集)』·『징비록(懲毖錄)』·『신종록(愼...
-
하회를 대표하는 인물이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각각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기르기 위해 세운 것이 겸암정사(일명 겸암정)과 옥연정사(일명 옥연정)이다. 겸암정사와 옥연정사는 우뚝 솟은 부용대를 마주보고 자리 잡고 있다. 부용대를 마주보고 왼쪽에 자리 잡은 겸암정사는 낙엽이 진 겨울 한 철을 제외하고 여간해서는 그 모습을...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풍산김씨 정려각(豊山金氏 旌閭閣)은 류홍춘(柳弘春)의 부인 풍산김씨(豊山金氏)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교남지(嶠南誌)』에 “남편(류홍춘)이 관의 곡식을 축냈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욕된 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김씨는 혈서를 써 상경하여 쟁명(錚鳴)을 울리고 진상을...
-
류절을 시조로 하고 류종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풍산류씨는 시조 류절(柳節)의 6세손 류종혜(柳從惠)가 조선 초 하회에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크게 번창한 가문이다. 풍산류씨는 고려 때 호장을 지낸 시조 류절의 증손 류백(柳伯)이 충열왕 때 출사하여 가문을 일으켰고 류절의 6세손 류종혜가 조선 초 공조전서를 지내고 풍산현으로 낙향하여 정착하면...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풍산류씨 가문의 재사. 안동시 풍산읍 수리 50번지[수석길 6-89]에 위치한다. 풍산과 안동 사이 국도에서 풍산읍의 동쪽 경계 부분과 안동시의 서쪽 끝 송야교 부분을 이어주는 길로 들어서면 중간쯤 되는 지점에 수동이 있다. 수동은 풍산들의 서북쪽 한 끝을 호선으로 감싸고 있는 산자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수동마을 뒷산에 서...
-
1649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성일의 문집.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안동의 호계서원과 임천서원에 배향된 인물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의 학통을 이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김성일의 퇴계학맥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에게 전수되었고, 다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李栽),...
-
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홍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한산이씨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0세손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祖, 1595~1666)가 광해군 때 안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한산이씨는 본관은 같으면서 각기 시조를 달리 하는 두 계열이 있는데 안동에 세거하는 한산이씨는 고려 중엽에 호장을 지낸 이윤경(李允卿)을 시...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호계서원은 조선 중기 지방 유림들의 공론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위패를 봉안하고 후학들에게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후 1620년(광해군 12)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다. 현재 이황은 도산서...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반촌(班村) 성씨들의 통혼 관계. 혼반(婚班)은 잦은 혼인을 통해 맺어지는 관계를 일컬으며, 주로 반촌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안동 지역 혼반의 형성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위치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즉 안동·영주·봉화·예천·의성·상주·문경 등과 같이 근접 지역과의 혼인을 ‘향혼(鄕婚)’이라 하여 가장 선호하는 통혼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
하회마을 풍산류씨 문중에서는 3년에 한 번 음력 10월 10일 오전 10시가 되면 회전합사(會奠盒祀)를 지낸다. 회전합사는 음력 10월에 5대조 이상의 묘소를 찾아 제사지내는 시향제(時享祭)와는 성격이 다른데, 내력은 다음과 같다. 조선 중기 겸암(謙唵) 류운룡(柳雲龍)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형제와 두 사람의 아버지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이, 후손들이 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