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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643
한자 白岩農樂
영어음역 Baegam Nongak
영어의미역 Baegam Farmers' Music
이칭/별칭 흰바위농악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물놀이.

[개설]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는 예전부터 마을마다 다양한 양식의 풍물놀이가 연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고유문화 말살정책으로 중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8·15해방 이후 농악이 점차 되살아나면서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진 근대화의 과정에서 백암농악은 다시금 퇴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기능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전성기의 모습을 재현할 수 없게 되었으나,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상쇠로 활동하던 차용성(78세)이 백암농악의 가락과 판제를 기억하고 있어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채록/수집상황]

김장환이 『용인문화』 2006년 여름호에 백암농악을 이끌고 있는 상쇠 차용성차진복 부자를 인터뷰하여 소개하였으며, 2006년에 출간한 『백암면지』에 자세한 사항이 소개되어 있다.

[구성 및 형식]

백암농악은 상쇠, 부쇠, 징, 북, 장고, 법고, 잡색(탈·노인·양반·여자), 영기, 농기 등으로 구성된다. 가락은 열두 채로 준비가락, 세마디가락, 자진가락, 길가락, 두마디가락, 동의삼작, 단체움직임가락, 쩍찌기가락, 춤가락, 열두발상모, 광고가락, 고사가락 등이 있다.

판굿의 순서를 보면, 준비가락(입장-삼채, 휘모리)→인사굿(2열 및 원형)→멍석말이(휘모리)→길가락(7채-진을 푼다)→두마디가락(6채-원형을 만든다)→소고놀이(치배-일렬, 법고-원형)→상쇠놀이→치배놀이→들법고(앞으로 세 발작 나갔다 들어옴) →앉은 법고(법고들의 유희-상법고가 지휘)→좌우치기(우-좌-앞-뒤-원형)→기둥법고놀이(치배와 법고가 교대로 앉고 선다-휘몰이)→가위잽이(삼채 치면서 가위모양-풀면서 원형)→당산벌림(사각형 교대 가위치기)→사퉁백이(4개의 작은 원형)→멍석말이(풀면서 삼채)→인사굿(원형)→행진(광고가락)으로 퇴장한다. 특이한 것은 잡색에 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내용]

백암농악에는 모내기를 마칠 때 하는 대동놀이가 있고, 김매기를 하면서 소리꾼이 논두렁에서 북치며 선소리를 하면 일꾼들이 후렴을 매기는 김매기 소리가 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두레농악대가 다른 농악대를 만나면 점고를 치며 싸움을 걸어 농기싸움을 하는데, 이때는 상대방의 장목을 빼앗은 팀이 이기게 된다.

싸움이 끝나면 두 마을 사람이 어우러져 술과 음식을 먹으며 풍년을 기원하였으며, 이때 두 마을 두레패가 함께 치는 굿을 ‘합굿친다’고 했다. 또 김매기를 마치면 호미씻음굿이라고 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동놀이를 했다.

추석과 설에도 대동놀이를 했는데, 정월 보름에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우환과 액을 막는 지신밟기를 했다. 그외에 군이나 면에서 축제가 있으면 모든 풍물패가 나가서 한데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현황]

백암농악의 맥을 잇고 있는 상쇠 차용성의 풍물은 멀게는 안성남사당패에서 활동한 이원보의 계보에 이어진다. 이원보의 풍물은 김기복, 최웅찬, 남원영에게 계승되었다. 김기복은 안성농악을, 최웅찬은 평택농악을 이끌어 왔다.

남원영은 이필재를 가르쳤고, 이필재는 일죽면 오방에 사는 김익수에게 전수했는데, 차용성이 바로 김익수에게 그 기능을 배운 것이다. 김익수는 처음부터 상쇠를 하지 않고, 열여덟 살 때부터 소고를 배우고 상모를 돌리며 두레패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상쇠를 잡기 시작하였다.

용인에서 전해 오는 비나리는 차용성의 것이 유일한데, 안성 칠장리에 사는 임철기로부터 전수받았다. 당시 같이 배운 사람으로 문병묵이 있었으나 지금은 타계하였다. 지금까지 차용성에게 풍물을 배운 제자들이 상당히 많으며, 이들이 백암농악의 맥을 잇고자 2006년에 ‘흰바위 농악단’을 결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백암농악은 안성남사당패의 가락을 이은 농악으로 지금까지의 계보가 확연하다. 최근에 와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백암농악의 판제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안성농악이나 평택농악은 가락에서는 백암농악과 큰 차이가 없지만 판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앉은 법고가 다르다. 안성과 평택에는 피조리가 있는데 백암에는 법고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또 백암농악에는 잡색 중에 탈이 들어가는데 안성이나 평택에는 없는 등, 판굿을 진행하는 데도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듯 백암농악은 용인 지역 농악의 원형을 이어가고 있으며, 경기 동부 지역 가운데 농악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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