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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무리 줄다리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641
한자 鳳舞里-
영어음역 Bongmu-ri Juldarigi
영어의미역 Tug-of-War in Bongmu-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
집필자 김호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시기 정월 대보름
관련의례/행사 대보름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서 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는 줄다리기.

[개설]

조선 후기 숙종조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봉무리 줄다리기는 놀이를 한 후 줄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가 매년 조금씩 손을 보아 사용하는데, 줄 안에 족제비가 살아서 몇백 년이 되었는데도 쥐가 들지 않아 줄이 삭지 않는다고 한다.

줄과 관련한 금기도 전해 오는데, 여자가 보관되어 있는 줄을 건드려서는 안 되고, 줄다리기를 하는 달에 초상이 나면 다음 달로 미루어서 놀이를 했다.

[놀이도구 및 장소]

봉무리에서는 줄다리기가 끝난 후 줄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기 때문에 줄다리기를 하려면 우선 보관해 놓은 줄을 꺼내어 손을 봐야 한다. 줄을 고치는 데 필요한 짚은 10년 전에는 마을에서 집집마다 거두었지만 지금은 5~10만원 정도 주고 산다.

예전에는 마을 웃마당에서 줄을 손보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노인회장 집 마당에서 하고 있다. 주로 머리 부분과 지네발이라 불리는 곁줄을 고치는데, 곁줄은 오래되면 삭아서 사람이 다치기 때문에 꼭 다시 손을 보아야 한다. 왼새끼로 꼰 세 가닥의 새끼를 엮어 만든 동아줄로 지네발을 줄의 몸통에 묶는다. 현재는 사람도 없고 힘이 들어 동아줄을 두 가닥으로 꼰다고 한다.

줄다리기는 산정동에서 제일 큰 길에서 한다.

[놀이방법]

대보름날 오전 두레풍물을 앞세우고 줄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줄을 내린다. 줄을 내리기 전에 낭대(깃대)를 줄이 보관된 이엉에 기대 놓고 삶은 돼지머리와 통북어, 막걸리를 진설하여 고사를 지낸다.

이때 돼지머리는 북향으로 놓고, 절은 하지 않으며, 상쇠가 고사를 지낸다. 고사가 끝나면 암줄 위에 놓여 있는 숫줄을 먼저 내린 다음 암줄을 내려서 노인회장집으로 가져와 수리를 한다.

수리가 끝나면 줄을 메고 암줄은 위로 돌고 숫줄은 아래로 하여 마을 전체를 돈다. 숫줄이 먼저 돌고 암줄이 나중에 돈다. 줄을 메고 마을을 다 돌면 산정동에서 제일 큰 길에 도착해서 줄을 바닥에 놓는다.

남·북으로 긴 길에서 암줄은 북쪽에, 숫줄은 남쪽에 둔다. 두레가 줄을 돌면서 고사를 지낸 후, 암줄에는 여자들과 장가 안 간 총각 및 어린이들이, 숫줄에는 성인 남자들이 선다.

줄을 어깨에 메고 암줄이 세 번 절하면 숫줄이 한 번 반을 절한다. 암줄과 숫줄을 서로 어르면서 놀다가 숫줄을 암줄 고(구멍)에 넣는다. 이때 비녀목(지레목)을 고(구멍)에 끼우면 암줄과 숫줄이 서로 빠지지 않는다.

두레가 숫줄 쪽부터 줄을 한 바퀴 돈다. 낭대를 중심에다 놓고 두레가 북을 “탕탕탕” 치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징을 세 번 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줄은 세 번을 당기며, 첫번에는 남자가 이기지만 나머지 두 번은 여자가 이긴다. 예전에는 여자가 지면 보리흉년이 난다고 하여 여자가 세 번을 이겼는데, 지금은 남자가 한 번은 이긴다. 예전에는 12시가 넘도록 줄을 당겼지만 지금은 10시 정도면 끝이 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이튿날 아침 줄을 원래의 꺼내 온 자리에 둔다. 이때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줄을 쌓는데, 암줄을 먼저 쌓고 숫줄을 나중에 쌓는다. 이렇게 쌓은 줄 위에 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4단으로 덮고, 그 위에 새끼줄을 대각선으로 감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이렇게 하면 높이가 2.5m 정도에 둘레가 7m 정도 되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팽이를 엎어 놓은 모양의 움집 같기도 하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봉무리 줄다리기는 풍농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민속놀이로서 보통은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달맞이와 우물고사, 지신밟기를 하였다. 달맞이는 달이 떠오를 때쯤 봉배산 꼭대기에서 수수깡이나 짚 등을 가지고 액운을 없앤다.

그리고 두레가 마을의 대동우물에서 우물고사를 지냈는데, 20년 전쯤 상수도가 들어와 대동우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우물고사는 사라졌다. 이후 두레는 집집마다 돌면서 놀아주다가 마지막으로 지신밟기를 한다. 집집에 들어가 낭대(깃대)를 세워 두고 마당→우물고사→장간고사→부엌고사→마당 순서로 놀고 나면 집주인이 마당으로 상을 내온다.

상 위에는 됫박에다 쌀을 놓고 숟가락을 꽂아두거나, 실타래를 두르기도 한다. 실타래는 두레의 상모를 꾸밀 때 쓰이는 것이고, 쌀은 두레를 따라다니는 심부름꾼이 자루에 메고 다닌다. 이렇게 모은 쌀은 이장집이나 반장집에 보관하여 줄다리기 비용 등으로 소용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두레가 집집마다 쌀을 걷으러 다녔으나, 현재는 열흘 전에 마을회의를 통하여 이장이 만 원씩 추렴하고, 따로 기부금 등도 받아서 사용하고 있다.

[현황]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줄다리기도 잘 진행되었고, 줄다리기 보는 재미도 쏠쏠하여 외지인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동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대부분인데다 줄이 워낙 무거워서 예전과 같은 줄다리기의 흥취를 자아내지 못한다. 또한 두레 놀 사람도 없어 두레와 줄다리기를 같이 할 수 있는 형편도 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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