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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369
한자 槿英學院
영어음역 Geunyeong Hagwon
영어의미역 Geunnyeong School
이칭/별칭 석천학원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덕은마을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종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설립연도/일시 1920년대 말
폐교연도/일시 1946년연표보기
설립자 정명근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었던 교육 기관.

[교육목표]

교육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변천]

정명근(鄭明根)은 일제강점기에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포천에 살고 있는 교사 유기헌을 자신의 사랑(舍廊)으로 초빙하여 신식 교육을 시작하였다. 학생 수가 점차 늘어나자 자신의 재산 일부를 투자하고 주민들과 친구 남정헌(南庭憲)의 도움으로 초가 건물을 짓고 정식 학교 교육을 하였다.

사랑에서 처음 교육할 때는 학생 수가 10여 명에 불과했으나 교사를 건립한 후에는 150여 명에 이르렀으며 학교 부지는 2,314㎡, 건물은 2동이었다. 교사는 구언회, 유기헌, 황평주, 임도여 등이었으며 초대 정명근 교장이 취임하였고, 제2대 구언회 교장이 위임하였다. 근영학원(槿英學院)의 ‘근(槿)’자가 무궁화를 의미하여 일제가 교명을 바꾸도록 하자 서류상으로 석천학원이라 하고 실제로는 근영학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교육활동]

일반 보통학교 교육과정과 같이 교육하였으나 일본어 시간에는 우리 국어를 가르치고, 역사 시간에는 국사를 강의하였다. 이때 학생을 교문에 세워 일경이나 백암보통학교 교사가 감독하러 오는 것을 감시하며 교육하였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선죽교 피다리 개성군 선죽교야, 정포은 죽은 지 묻노니 몇 해냐. 아, 충성을 다하자 충성을 다하자”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였고, 연호를 단기 또는 서기를 사용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언니나 형을 따라오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옛날이야기와 무용 등을 가르치는 유치원 교육도 병행하였다.

[교가와 상징물]

(1) 교가

쉼 없는 청미천 동에 흐르고, 변치 않는 조비산 앞에 솟았네.

아름답다 그 경치 근영학원은 무궁화 한복판에 솟았네.

동무야 동무야 어서 모여라 배우자 배우자 배워야 산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3.11 [수정] 남정헌(南庭憲)->남정헌(南庭憲)[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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