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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310
한자 敎育運動
영어음역 Gyoyuk Undong
영어의미역 Education Movement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태근

[정의]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벌어졌던 교육 활동.

[개설]

일제강점기 용인에서는 1934년 구성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면서 모든 면에 1개 이상의 학교가 세워졌지만 당시 학령기 아동 중 실제 학교에 다니는 경우는 30%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1920년대부터 지역 유지나 청년회에서 강습소나 야학을 통해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아 가르치는 교육 운동이 전개되었다.

[현황]

1929년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당시 용인군 내 강습소 및 야학은 12개가 있었으며 생도 수는 562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1929년 백암면 옥산마을의 안면호, 안명신, 박한구 등이 서당을 확충하여 옥산학원을 설립하였다.

그 후 학생이 늘자 한상규(韓相摫), 박영근(朴怜根), 박홍근(朴洪根) 등에 의해 초가 4칸의 교사를 지었으며 학생은 150여 명에 이르렀다. 또한 덕은마을의 정명근이 자택에서 교육 활동을 펼치다 1931년 남정헌의 기부금과 마을 사람들의 노력 봉사로 건물을 신축하고 근영학원을 설립하였다.

1930년대에도 교육 운동은 계속되었다. 1934년 250여 개의 야학당이 용인군에 세워졌고 학생 수는 5,000명이 넘었다. 그 중 남사면에는 32개의 야학당이 있었으며 학생 수는 400여 명에 이르렀다. 백암면 석천리 사천청년회의 최기풍 등은 사천야학회를 조직하여 문맹 퇴치 활동을 벌였다. 80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시켰으며, 야학 운영비는 주변에서 제공한 토지 17두락을 공동 경작하여 충당하였다.

원삼면 사암리에서는 오창환에 의해 사전강습소가 1937년에 설립되었으며, 1940년대 초에는 좌항리에도 강습소가 설립되었다. 이동면 덕성리에는 덕성강습소가, 그리고 서리에는 장규원이 설립한 덕명강습소가 있었다.

남사면에도 창리, 완장리, 중간말, 상동에 강습소가 있었으며 모현면에도 일산리와 외개리에 강습소가 있었다. 포곡면에도 삼계리의 도사강습소와 민종식이 설립한 두개울강습소 그리고 안승일이 설립한 영문강습소가 있었다.

구성 중리에서는 윤재룡이 어정마을에 어정강습소를 세웠다. 고림동 임원에는 한최수가 설립한 강습소가 있었으며, 삼가동에도 역시 강습소가 세워졌다. 수지 고기리에도 안봉영에 의해 1920년대부터 1935년까지 강습소가 운영되었다. 양지면 정수리에는 권공영에 의해, 제일리에는 이수영과 이중복에 의해 각각 강습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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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군 내 사립 강습소 및 야학 현황(1929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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